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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자 부드러운 봄바람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온다. 긴 겨울을 견디느라 닫아두었던 감정들이 그 바람의 촉감 하나에 순식간에 해동된다. 봄밤은 늘 그렇게 나를 무장 해제시킨다.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은데도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낮 동안은 사람들 속에 묻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다가도, 밤이 오면 나도 모르게 마음 한편이 시리다. 봄이 오는 걸 나는 눈으로 먼저 알기보다, 가슴으로 먼저 알아챈다. 낮은 여전히 미세먼지 자주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 분명히 다른 빛깔이 감돌고, 길가의 나무들 끝에서는 희미한 연둣빛이 꿈틀댄다. 하지만 그런 변화보다 더 먼저, 나는 밤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어둠이 덜 외로워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고요한 얼..

주방 청소를 하다가 썩은 감자 뭉치를 발견했다. 표면에 하얀 싹들이 송곳니처럼 박혀 있었다. 손바닥에 올려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썩어가면서도 새 생명을 품은 감자는 마치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 이야기들의 잔해 같았다. 한편, 배달된 라면을 정리하다가 싱크대 찬장 안에서 녹슨 주전자를 꺼냈다. 아랫면에 달라붙은 물때가 마치 옛 해도의 지도 같았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니 차가운 금속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앞치마 포켓 속에 명함이 들어있었다. 어제 무심코 버렸다가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재활용 쓰레기봉투를 뒤져 다시 꺼내 넣어두었던 명함이었다. 이 명함은 버려지진 않았으나 잊힐 게 뻔하다. 하지만 다시 꺼낸 것만으로도, 나는 무언가 도리를 다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장 사이에서 빛바랜 고속버스표가 발견되..

그저께부터 우리 집에서 머물던 큰누나는 밤일을 마치고 집에 들른 작은누나와 다투고 “내가 있으면 모든 사람이 불편해지나 봐”라며 돌아갔다. “그럼, 택시나 잡아 줘” 하는 큰누나에게 작은누나는 “어플 깐 다음 택시 부르면 되잖아. 애야? 그것도 못해?” 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큰누나는 얼굴이 빨개져 현관을 나갔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누나들, 특히 큰누나는 당분간 내 집에 들르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 우리는 서로의 몸이 닿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닿지 않는 게 더 두려워서 안절부절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사소한 다툼으로 마치 낯선 타인들처럼 돌아서고 후회한다. 현실적인 작은누나와 공주처럼 보호받고 싶어 하는 큰누나가 부딪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두 사람은 다툰 후의 어색함을 오래..

■3월 중순에 만난 대설주의보라니 시국이 뒤숭숭하니 날씨도 예사롭지 않다. 그래도 어김없이 봄은 오겠지만, 기지개를 켜다가 갑작스러운 빙설에 놀라 다시 한껏 움츠린 꽃나무 여린 새순의 화들짝 겁먹은 모습이 안쓰럽군요. ■■자신을 섣불리 용서하지 말라는 뜻일 게다아침에 일어나니마당에 서리가 하얗다엊그제 녹았던 진강산 계곡물도지금은 깜짝 놀라다시 부동자세가 되었다죄짓긴 쉬워도용서받긴 이렇게 등 시리구나들녘의 아지랑이가 세상을 다 보듬는다 해도나는 아직 때가 아니다당신의 마음 복판에 쇠말뚝을 박은 죄,불타고 남은 잿더미 앞에서너무 빨리 당신의 이름을 지운 날들을더 많이 울어라는 말씀일 게다아침에 일어나니어제까지 가까워지던 산이오늘은 두어발짝 멀어졌다❚황규관, ‘꽃샘추위’ 전문

아침 10시 30분쯤, 큰누나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너무 어지러워서 쓰러질 것 같으니, 우리 집에 와 있으면 안 되겠느냐는 전화였다. 작은누나에게 먼저 전화했는데 안 받았던 모양이다. 물론 안 될 거야 뭐가 있겠는가. 그저 불편할 뿐이지. 나는 “오세요. 모시러 갈 수는 없으니, 누나가 혼자 오셔야 해요”라고 다소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았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오늘처럼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해서 막상 병원에 모시고 가면 체한 것 같다면서 소화제를 처방하고 링거 한 병 놔주는 게 다였다. 울 엄마는 아흔 넘게 사시면서도 배 아프다고 병원 가자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가 병원 가자고 하면 "이깟 체증으로 무슨 병원이야. 바늘로 따고 죽 먹고 쉬다 보면 낫는다..

휴일 오후, 무료함을 질겅질겅 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 후배 은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주안 제일시장 안에 가성비 끝내주는 갈빗집을 발견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하고, 집에는 딱히 먹을 만한 반찬도 없어서 그의 너스레를 믿고 일단 갈빗집에 가보기로 했다. 6시, 시민공원역에서 은준을 만나 지하도를 통해 제일시장까지 걸어갔다. 지하도가 끝나는 곳에서 출구로 나가니 바로 시장 입구였다. 제일시장은 오래전 노동운동하던 시절, 단체 사무실이 근처에 있어서 동료들과 식사하고 술 마시러 자주 들렀던 곳이다. 그러나 이후 활동 무대가 부평과 구월동으로 바뀌고 집도 만수 3지구여서 제일시장에 들를 일이 거의 없었다. 곱창볶음과 순댓국이 먹고 싶을 때는 대개 집에서 가까운 모래내..

나의 주말은 너무 평온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나는 나의 평온함의 근거와 정체를 의심하기 때문에 오늘 같은 평온함이 나에게는 오히려 불편하다. 마치 내 몫이 아닌 행복을 임시로 맡아두었거나 공짜로 누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라 공원에라도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울 앞에서 몇 차례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 관뒀다. 집 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일부러 할 일을 찾아서 했다. 재활용 쓰레기봉투를 꽉꽉 눌러놓거나 서가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서랍장의 양말을 손 볼 게 없는지 찾아보다가 그만두고 채소를 사러 가게에 다녀왔다. 날이 너무 좋아 긴팔 패딩을 벗고 조끼 패딩을 입고 외출했는데 전혀 춥지 않았다. 봄기운이 완연했다. 가혹한 정치와 탐욕의 화신들만 아니었다면 참 아름..

점심때, 함께 밥 먹자고 누나들이 전화했지만 거절했다. 공기도 안 좋고, 나가기도 귀찮았으며, 그때 나도 점심 먹으려고 냉동실에 얼려놓았던 된장찌개를 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나들은 결국 저녁에 족발 대(大) 자를 사들고 집에 왔다. 심심했던 큰누나가 작은누나를 부추겼을 것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좋아하는 족발을 곁들인 저녁을 누나들과 함께 먹었다. 큰누나는 달랑 고기 서너 점을 먹더니 "나는 됐어. 그냥 너네들이랑 같이 식사하는 게 좋은 거지, 많이는 못 먹어. 이 만큼이 정량이야" 하며 젓가락을 놓았다가, "그래도 몇 점 더 드셔" 하는 작은누나의 말을 듣고는 내가 끓여놓았던 된장찌개에 밥 3분의 1 공기를 더 먹었다. 결국 작은누나와 나는 "남겼다 먹으면 맛없어. 다 먹어야 해"라고, 누가..

원래는 내일 윤의 탄핵에 대한 헌재의 재판 결과가 나올 예정이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오늘 밤, 선고 전 마지막 촛불집회를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인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월동 로데오 거리에서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민주주의 회복의 염원을 모아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간절함 때문인지 다른 때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집회에 참석했다. 그동안 공직자라는 신분 때문에 집회 현장에 자주 나가지는 못했지만, 오늘은 나도 현장에 참석해서 사람들과 함께했다. 하지만 최근 헌재는 윤 말고도 다른 인사들의 탄핵 재판도 진행하고 있어 일정이 너무 빡빡하고, 무엇보다 윤 탄핵 재판의 경우, 통일된 의견이 만들어지지 않는지 선고가 일단 다음 주로 연기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는 다시 또 피 말..

전 비서실장 H가 마련하는 오찬 자리에는 이번에 처음 참석했다. 나 빼고 네 명(H, 김목, 소통협력실 윤, 마을교육팀 김, 보운 형)은 그간 자주 만나왔다. 그때마다 보운 형은 나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만, 나는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H가 직접 전화해 참석을 종용했다. 워낙 사람 좋고 유순한 H의 제의라서 이번에는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빠지면 일부러 피한다고 오해할 것 같았다. 점심시간, 소통협력실 윤의 차를 타고 H의 사무실로 가서 담소를 나누다가 다시 구월동 민예총 근처 김치찌개 잘하는 식당('맛소리')으로 이동했다. 만나면 늘 이곳으로 식사하러 왔던 모양인지, 우리가 들어가자 사장이 아는 체했고, 일행들도 자연스럽게 맞장구치며 인사했다. 우리는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