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연민과 불편함의 경계에서 (3-17-월, 맑음) 본문

일상

연민과 불편함의 경계에서 (3-17-월, 맑음)

달빛사랑 2025. 3. 17. 23:40

 

아침 10시 30분쯤, 큰누나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너무 어지러워서 쓰러질 것 같으니, 우리 집에 와 있으면 안 되겠느냐는 전화였다. 작은누나에게 먼저 전화했는데 안 받았던 모양이다. 물론 안 될 거야 뭐가 있겠는가. 그저 불편할 뿐이지. 나는 “오세요. 모시러 갈 수는 없으니, 누나가 혼자 오셔야 해요”라고 다소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았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오늘처럼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해서 막상 병원에 모시고 가면 체한 것 같다면서 소화제를 처방하고 링거 한 병 놔주는 게 다였다. 울 엄마는 아흔 넘게 사시면서도 배 아프다고 병원 가자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가 병원 가자고 하면 "이깟 체증으로 무슨 병원이야. 바늘로 따고 죽 먹고 쉬다 보면 낫는다"라고 말씀하셨다. 모녀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아무튼 혼자 오라는 내 말에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은 누나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증상이 완화되어서 쉬고 있는 건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전화를 끊고 누나는 말 잘 듣는 막내를 집으로 오라고 해서 기어코 함께 병원으로 링거를 맞으러 간 것이었다. 11시 40분쯤 작은누나가 집에 왔다. 나는 누나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예정에 없던) 오후 출근을 핑계로 집을 나왔다.

그렇게 막 ‘인쌩맥주’ 앞을 지날 때, 저 앞에서 헌팅캡을 쓰고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는 동생을 보았다. “누나 모시고 병원 갔다며?” 물었더니 “예, 근데 링거 맞는 시간이 두 시간이나 걸린대요. 그래서 형님 댁에서 쉬다 가려고요” 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학원을 운영하는 동생도 오후부터는 수업하러 가야 했다. 착한 막내는 바쁜 와중에도 큰누나 연락을 받자마자 곧장 달려왔을 것이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후 3시쯤 , 작은누나가 카카오톡으로 “언니 먹을 죽 사다 놨어. 난 조금 있다가 출근해야 해”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큰누나는 링거를 다 맞은 후, 자기 집으로 안 가고 우리 집으로 온 모양이었다. “저녁에는 내가 있을게. 애썼어요” 하고 답장을 보내놓고, 퇴근하자마자 큰누나가 걱정되어 곧바로 귀가했다. 집에 도착하니 누나는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빼꼼 문을 열고 “왔어?” 했다.

매형이 작고한 후 큰누나는 아기가 되었다. 아니 원래부터 철부지였다. 자신이 불편하면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투정부터 부렸다. 또한 시간 불문하고 자신이 필요할 때면 상대의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와달라고 죽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형제들은 할 수 없이 그녀의 '응석'을 받아주어야 했다.

 

식사하고 난 후, 누나가 쉬고 있는 방문을 열고, “좀 괜찮아요? 이렇게 자꾸 아파서 어떡해. 정밀 검사를 한번 해봐요. 그리고 자꾸 까라지면 애들 집에 가서 좀 쉬다 오면 어때요? 했다. 누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듣고 있었지만, 내심 서운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운해도 어쩔 수 없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쉽지 않은 간병을 형제들이 매번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기 일이 있는 작은누나나 막내도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너무 힘들어할 게 분명하다. 그래서 한 번쯤은 우리의 속마음을 큰누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안쓰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연민과 불편함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하는 일은 고약하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건 두려워하면서도 형제들이 불편해하는 건 생각하지 않는 건 무척 이기적인 생각인 건 확실하다. 큰누나가 그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만약 앞으로 또 이러한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내가 조카들에게 연락할 생각이다. 큰누나는 (현재로서는) 혼자 살기에는 너무 약한 사람이니, 자식들인 너희가 자주 방문하고 꼼꼼하게 챙기라고 말이다. 나와 이모(작은누나)도 60대 노인들이라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