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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주방 청소를 하다가 썩은 감자 뭉치를 발견했다. 표면에 하얀 싹들이 송곳니처럼 박혀 있었다. 손바닥에 올려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썩어가면서도 새 생명을 품은 감자는 마치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 이야기들의 잔해 같았다. 한편, 배달된 라면을 정리하다가 싱크대 찬장 안에서 녹슨 주전자를 꺼냈다. 아랫면에 달라붙은 물때가 마치 옛 해도의 지도 같았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니 차가운 금속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앞치마 포켓 속에 명함이 들어있었다. 어제 무심코 버렸다가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재활용 쓰레기봉투를 뒤져 다시 꺼내 넣어두었던 명함이었다. 이 명함은 버려지진 않았으나 잊힐 게 뻔하다. 하지만 다시 꺼낸 것만으로도, 나는 무언가 도리를 다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장 사이에서 빛바랜 고속버스표가 발견되..
일상
2025. 3. 20. 2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