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제일시장 곱창집에 가다 (3-16-일, 살짝 비 오고 맑음) 본문
휴일 오후, 무료함을 질겅질겅 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 후배 은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주안 제일시장 안에 가성비 끝내주는 갈빗집을 발견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하고, 집에는 딱히 먹을 만한 반찬도 없어서 그의 너스레를 믿고 일단 갈빗집에 가보기로 했다. 6시, 시민공원역에서 은준을 만나 지하도를 통해 제일시장까지 걸어갔다. 지하도가 끝나는 곳에서 출구로 나가니 바로 시장 입구였다.
제일시장은 오래전 노동운동하던 시절, 단체 사무실이 근처에 있어서 동료들과 식사하고 술 마시러 자주 들렀던 곳이다. 그러나 이후 활동 무대가 부평과 구월동으로 바뀌고 집도 만수 3지구여서 제일시장에 들를 일이 거의 없었다. 곱창볶음과 순댓국이 먹고 싶을 때는 대개 집에서 가까운 모래내 시장으로 가곤 했기 때문에 오늘 이곳을 방문한 건 얼추 20여 년 만이다. 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때 그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올라 잠시 감회에 젖었다.
그러나 시장 안으로 들어갈수록 뭔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물론 일요일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적막감이 느껴지는 인적 없는 골목을 걸어가자니 괜히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렇게 약간 스산해진 마음으로 은준이 말한 갈빗집을 찾아갔는데, 이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업소가 쉬는 날이었다. 은준은 몹시 당황해하며, "아 이거 참, 알아보고 오는 건데..... 그럼 어디로 갈까요?" 하며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할 수 없잖아. 이왕 제일시장에 왔으니 오랜만에 곱창이나 먹지 뭐. 인터넷에 검색해 봐라. 어디가 좋은지" 했더니, 은준은 휴대폰을 꺼내 검색해 본 후, "바로 저기네요."하며 손가락으로 한 식당을 가리켰다. '맛조은 곱창'이란 이름의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가려던 갈빗집에서 멀지 않았다. 방송에도 자주 나왔었는지 식당 앞에는 출현했던 방송국과 프로그램 이름이 적힌 현수막들이 눈에 잘 띄게 걸려있었다.
소주를 마실 거라서 볶음이 아닌 전골 중자를 주문했다. 가격은 3만 원이었고 양은 둘이 먹기 괜찮았다. 전골이 나오기 전 서비스 안주로 백곱창볶음을 조금 주었는데, 맛이 담백했다. 메인 안주로 나온 곱창전골도 괜찮았지만, 그렇다고 줄 서서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저녁시간이라서 그런지 곱창 손님들보다 순댓국을 먹는 손님들이 많았다. 먹어 보진 않았지만, 그냥 보기에는 무척 푸짐하고 맛있어 보였다.
그렇게 곱창전골을 안주로 소주 3병을 나눠 마시며, 그의 시 쓰기와 사랑 얘기를 들어주다가 9시쯤 귀가했다. 집에서 전철 타고 20분이면 도착하니 앞으로 가끔 제일시장에 가볼 생각이다. 은준이 말한 그 가성비 높다는 갈빗집도 들러 봐야 할 테고.
그나저나 오늘 날씨를 너무 만만하게 보고 가볍게 입고 나갔다가 추워서 혼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꽃샘추위는 찾아왔다.
오랜만에 술 마시고 들어와 라면 먹었다.
한동안 끊었던 버릇인데, 다시 도질까 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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