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5/04 (10)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전날 일찍 잠든 탓에 새벽 2시쯤 잠이 깼다. 꽤 오랜 잔 줄 알았는데, 새벽 두 시라서 당황스러웠다.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을 감상했다. 다소 부드러워지긴 했으나 블랙코미디 속에 담긴 자본주의의 부조리와 현대 사회의 비인간화에 대한 봉준호 감독 특유의 풍자적 비판은 여전했다. 결말은 이전 작품과는 달리 명백하게 행복한 결말! 다만 SF 영화치고는 사건 전개가 다소 늘어지고,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도 너무 많아 조금 산만한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만능과 생명 경시 풍조, 빈부 격차와 계층 간의 갈등, 환경 파괴와 자기 복제 시대의 정체성 문제 등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직면하는 모든 문제를 영화 속에 녹였다. 따라서 관객들의 호불호가 나뉠 듯하다..

전 세계가 멍청이 트럼프의 폭주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함량이 한참 모자라는 인물에게 천조국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안겨주니, 이건 뭐 폭주 기관차와 다를 게 없다. 극단적 백인우월주의자인 그는 관세 전쟁을 일으켜 전 세계 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고, 외국인 체류자들을 강제 추방하여 그들을 안전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어 인권단체들로부터 지탄받고 있으며, 온갖 쇼맨십으로 정치를 희화화해 가까웠던 우방들은 서서히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이런 트럼프의 대책 없는 독주가 계속될 경우, 반사회주의 유럽 벨트와 아시아 벨트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트럼프가 허튼짓할수록 중국의 시진핑이 미소를 짓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시진핑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다. 자본주의 연대가 내부 총질로 인해 느슨해지고 있..

오랜만에 날이 참 좋았다. 전형적인 봄날씨였다. 청사 주변의 백목련들이 큼지막한 꽃송이를 마구 내밀고 있었고, 시청 앞 화단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양한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손가락 염증 치료받으러 병원 가는 길, 지난주보다 더욱 파릇해진 꽃나무 새순들을 보면서 이제 꽃샘도 더는 없고 먼지도 없는, 그런 봄날만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일 년 중 며칠 안 되는 봄마저 잃고 싶지 않다. 의사는 내 손가락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아직 절제할 단계는 아니라며 약(항생제) 처방만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종일 통증에 시달렸다. 일단 약을 먹고 내일까지 견뎌보겠지만, 암만해도 그냥 수술받고 나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전문가가 알아서 판단했겠지만, 왠지 모르게 다시 병원을 방..

지난밤 음주 탓에 늦게 일어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깼다. 숙취가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방에 가서 우유를 한 잔 먹는 순간 구토가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른 때 같았으면 오히려 우유가 쓰린 속을 달래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침대에 누워있을 때는 몰랐는데, 일어나서 걷다 보니 약간 어질어질하기도 했다. 화장실에 가서 토하고 온 후, 꿀물을 타서 마셨더니 속이 차분해졌다. 미세먼지가 보통 수준이라고 해서 창문을 열고 잠깐 환기했다. 시원한 아침 바람이 무척이나 상쾌했다. 침대에 누운 채로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다가 다시 잠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확실히 몸이 개운해졌다. 허기가 느껴져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식탁에 앉아서 TV 뉴스를 보며 느긋하게 밥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며칠 사이에 집안의 화초들이 더욱 화사해진 것 같다. 실상 봄이 깊어지니 당연한 일이겠으나, 사람은 본디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법이니, 내 마음이 밝아졌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종일 보지 않던 뉴스를 시청했다. 방송마다 탄핵 인용 소식과 광장의 환호성을 전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부아가 치밀어 보지 못했던 정치 뉴스들을 맘 편하게 볼 수 있게 돼 고맙고도 감격스러웠다. 저쪽 사람들은 마찬가지 이유로 뉴스 보기가 괴롭겠지. 한편으론 괘씸하고 고소한 생각도 들긴 하지만, 같은 나라 국민이 서로 적대적 관계가 되어 증오와 저주를 퍼붓는 살풍경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윤이 저지를 일 중에 가장 나쁜 일이 국민을 양분시킨 것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과제는 찢기고 갈라진 국민의..

“이상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청구인의 나머지 주장에 대하여 더 나아가 살피지 않더라도, 피청구인의 이 사건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써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에 해당한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게 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 (……) 그러므로 피청구인(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 멍청이 통(統)인 윤은 마침내 파면되었다. 12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 거리에 모여 민주주의 회복과 윤의 퇴진을 외쳐왔던 시민들이 결국 승리한 것이다. 헌재의..

내일 오전 11시, 윤의 탄핵 재판이 열린다. 시민의 행복과 나라의 운명이 달린 이번 재판에서 윤은 분명 파면되리라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헌재의 ‘허튼짓’이 불안해서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밤이다. 민주주의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인민의 끊임없는 투쟁과 노력, 고민과 성찰 속에서 늘 새롭게 완성되는 것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하루하루다. 최근까지도 만나고 부딪치는 모든 상황과 시간이 때로는 버겁고 또 때로는 벅찼던 게 사실이다. 정신적 트라우마와 불면으로 지새워야 했던 120여 일이 넘는 밤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오랜 믿음과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 사수와 독재자 타도를 외친 수많은 인민의 함성..

날은 아침부터 흐렸다. 휴대전화 AI 빅스비를 통해 날씨를 물었더니 오후 4시쯤에 비가 온다고 예보했다. 아침부터 살짝 설렜다. 최근에 뜬금없이 몇 차례 눈발을 날렸으나 비다운 비는 오지 않았다. 비번이라서 집에서 쉬거나 오후에 출근할 생각이었다. 아침 운동 끝내고 쉬고 있을 때, 이름도 귀여운 비서실 모나미 비서가 전화했다. 4.16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추모제에서 낭독할 감(監)의 추모사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아, 벌써 1년이 지나고 다시 4월이 왔구나’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세월이 빠르기도 빠른 거지만, 올해로 11주기 되는 참사와 관련해서 여전히 그날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 있는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아니 사과는커녕 유족과 희생자들의 죽음을..

4월이 시작되고 봄은 다시 기운을 차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 자운 누나가 준 앞치마 2개를 세탁기에 넣고 우유를 데워 마시며 컴퓨터를 켰다. 여전히 세상은 어수선했고 쓸모없는 말들은 나쁜 먼지처럼 세상에 가득했다. 그리고 갑자기 속보를 알리는 팝업이 떴다. 여당의 유력 정치인이 비서와의 추문으로 결국 자살했다는 소식과, 별다른 이유 없이 오래 침묵해 온 헌재가 이번 주 금요일, 윤의 탄핵을 인용할 거라는 소식이었다. 물론 ‘탄핵 인용’은 내 소망이 반영된 표현이지만, 헌재 재판관들이 상식이 있다면 윤의 탄핵 인용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탄핵과 별개로 내란 범죄와 관련한 형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윤은 자신의 아내가 저지른 추잡한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사사로이 군을 이용하여 국회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