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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공직자 신분이다 보니 그간 정치적 발언을 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제 대통령 후보 정책토론회에서 토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던 무차별적 언어폭력과 유체이탈식 내로남불 폭로에 깜짝 놀랐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후보들의 수준이 저 정도밖에 안 되다니…… 초등학교 반장 후보들만도 못한 일부 함량 미달 후보들이 시전 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국민이 가엽다.

오랜만에 선배 시인인 권이 형이 영종도에서 나왔다. 최근 서너 차례 전화해 식사하자고 했지만, 그때마다 내가 일정이 있어서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엊저녁에 통화를 한 후 간신히 약속을 잡은 것이다. 모처럼 뭍에 나온 김에 후배 병걸이도 함께 보려고 했으나 그는 인터뷰가 잡혀 있어 함께하지 못했다. 11시 30분, 교육청 정문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그 시간에 권이 형이 인천터미널쯤 왔다고 해서 내가 예술회관 쪽으로 내려갔다. 12쯤 예술회관 광장 벤치에 앉아 있는 권이 형을 만났다. 얼추 1년 만이었다. 권이 형은 나이 어린 후배들에게도 항상 존대하는 무척 겸손하고 어진 성품을 지닌 문단 선배다. 특히 형이 시집이 나올 때마다 내가 해설을 써주거나 리뷰를 써서 잡지에 게재하기 했다. 평생 철도 노동자로 ..

오늘도 좋은 날씨였다. 기온은 어제보다 조금 올랐고 미세먼지 상태는 ‘보통’이었다. 하지만 시계(視界)는 어제보다 나빴다. 청사 옥상에서 바라본 문화예술회관과 롯데백화점이 뿌연 박무(薄霧) 속에서 흐릿하게 보였다. 점심은 사무실 선배들과 오랜만에 청사 밖에서 먹었다. 메뉴는 김치찌개, 김 목사님이 선택했다. 사실 출근해서는 (점심 메뉴로) 김치찌개를 자주 먹지 않는다. 집에서도 자주 먹는 음식이라서 가급적 집 밖에서는 다른 걸 먹는 편이다. 하지만 얼마 전 점심때, 김치찌개 먹으러 가자는 김 목사님의 제안에 내가 “김치찌개 말고 돼지국밥 먹으러 가면 안 될까요?”라고 역제안했고, 보운 형도 동의해 돼지국밥을 먹었던 터라서 오늘은 거절할 수 없었다. 오전 10시쯤, 옥상에 올라가 지난주 섬에 들어갔던 후배..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햇살이 어찌나 좋은지 꼭 긴 겨울 끝에 만난 봄햇살 같았다. 산에도 가고 싶고, 공원에도 가고 싶고, 아니면 동네라도 한 바퀴 돌다 오고 싶었다. 하지만 외출 대신 집 안 청소하고 겨우내 덮었던 이불을 비롯한 침구들을 세탁했다. 세탁 마친 빨래들은 늘 실내 건조대에 널어 왔는데, 오늘은 부피 큰 이부자리여서 테라스의 빨랫줄에 내다 널었다. 볕이 얼마나 좋은지 탈수된 이불과 담요는 두어 시간 만에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볕이 암만 좋아도 미세먼지 많은 날에는 빨래를 밖에 널지 못한다. 오늘은 미세먼지 없어서 빨래하기는 물론이고 산책과 등산하기에도 좋은 날이었다. 오후 두 시쯤 바싹 마른 이불과 침대보, 담요를 걷고, 실내 건조 중이던 빨래들 중 바지와 수건들도 밖에 내다 걸었다. ..

선거를 앞둔 세상의 잡설과 비어들을 멀리하고 흐린 여름 하늘을 자주 바라보았다. 구름이 하늘에 그림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었다.세상은 시끄러워도 하늘은 찌푸린 얼굴조차 아름다웠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라서 문을 자주 열어 환기했다. 오늘도 한때 비가 왔지만, 많은 양은 아니었다. 종일 후배들에게 전화가 왔다. 식사 준비 중이거나 식사 중일 때여서 받지 않았다. 흐린 주말,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냥 그렇고 그런 평범한 주말이었다. 대체로 평일 비번 때 루틴을 그대로 유지했다. 밥 먹고, 운동하고, 유튜브 보고, 책 읽거나 영화 보고, 그러다 졸리면 낮잠 자고, 일어나 뉴스 보고, 저녁 먹고, 운동하고, 자주 테라스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건너편 메밀냉면 집으로 드나드는 손님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들어오곤..

한낮에는 날이 맑았는데, 오후가 되면서 점점 흐려지더니 저녁 무렵에는 비가 내렸다. 여름을 향해 달리는 비답다고 느꼈다. 그게(‘여름을 향해 달린다는 것’) 어떤 느낌(혹은 의미)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테라스에서 비를 보는 순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최근 나는 특정한 현상에 관한 나의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겠다. ‘사소한 모든 것까지 설명이 필요한 세상에서 평생 살아왔는데도 그렇다는 건 내 삶에 모종의 변화가 찾아온 탓일 것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오전에 채소 사러 갈 때는 날이 좋았다. 살짝 더웠지만,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 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 바람은 초여름 밤비(night rain)의 전초병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저녁에 비의 본대(本隊)를 몰고 이곳에 다시 왔을 때 나는 알았다. ..

점심 먹고 돌아오니 낯선 분 두 분이 사무실 앞에 서 있었다. 그분들은 얼마 전 내가 교정과 윤문하고 다인아트에서 출간한 수필집의 주인공 한모 신부 내외였다. 드디어 책이 출간된 모양이었다. 그분들은 내가 이름을 밝히자 표정이 환해지며 "아, 문 선생님이세요? 글을 너무 깔끔하게 잘 다듬어주셨어요. 고맙습니다"라며 웃었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막 출간한 책을 꺼내 직접 서명한 후 내게 건넸다. 교육감에게도 직접 전해주고 싶어 했으나 오늘은 결재와 상담 일정이 저녁까지 꽉 차 있어 도저히 시간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내일부터 1박 2일, 시도교육감 회의 참석하러 출장 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맘으로 비서실에 전화했더니 여비서들은 "죄송해요, 특보님, 오늘은 일정이 너무 타이티 해서 중간에 손님 만..

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씨가 구월동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들 구경하러 갔나, 점심시간 청사 근처 식당들은 다른 때보다 무척 한산했다. 유튜브 여러 채널에서 그의 유세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었는데, 화면상으로는 제법 많은 시민이 운집한 것으로 보였다. 아직 이재명 씨는 유세 현장인 구월동 로데오거리에 나타나기 전이었다. 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현장의 한 시민은 ‘이재명 씨가 인천 계양구 국회의원이므로 그의 원적지(원래 고향)와 상관없이 인천의 인물이 대선후보가 된 것이니,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결국 그것은 인천의 자랑이 될 것’이라며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글쎄……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게 어찌하여 내가 사랑하는 인천의 자랑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선거판에서는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무슨 말인들 못 할까?..

헤드폰을 샀다. 이미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 이어폰을 3개나 (삼성 버즈 2 프로, 애플의 아이팟 2세대, 아이팟 프로) 가지고 있는데도 굳이 헤드폰을 구매한 이유는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어서다. (솔직히 허영심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예전에 소니 유선 헤드폰을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삼성, 젠하이저, 아이리버, 파나소닉 등 다양한 이어폰을 사용해 봤지만, 그 어느 이어폰도 헤드폰 음질을 이기지는 못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다양한 기술을 접목해 완벽한 노이즈 캔슬링과 경탄할 만한 음질을 구현한 헤드폰이 많이 나와서 그 어느 때보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디자인 또한 요즘 젊은 세대의 기호에 맞게 예쁘게 나와서 지금은 헤드폰이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나는 ..

인간의 존엄과 문화적 역량을 보장하고, 도시의 문화유산과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며 출범한 ‘인문도시연구소’는 앞으로 인천과 도시에 관한 인문학적 연구와 연구방법론 체계화, 인천과 도시에 대한 정보·연구 성과 축적과 공유, 도시 인문학자와 관련 연구기관과의 협력 등을 주요 추진 사업으로 제시했다. 인문도시연구소는 또한 발족 선언문을 통해 산업화, 세계화 속에서 확장된 현대 도시는 시민들의 삶의 소외, 불평등, 환경 파괴, 문화 훼손, 지역 불균형, 문화행정의 관료화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는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생태주의, 인문주의의 새로운 가치연대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연구소 측은 창의적 문화생태계를 구축하는 실천 방법으로 ①형식적 민주주의를 깊은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