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분류 전체보기 (5662)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셀로판지를 덧댄 것처럼 아침부터 하늘은 극적으로 흐려 있었다. 출근할 때까지는 비는 없었다. 점심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서 하늘은 더욱 어두컴컴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며 ‘날만 잔뜩 흐리고 비는 안 오네요. 시원하게 내렸으면 좋겠는데’라며 혼잣말할 때, 마치 내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비 내리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강해 보이는 굵은 소낙비였다. 내 눈높이보다 높은 북쪽 창문으로는 하늘의 표정만 읽을 수 있을 뿐 거리의 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복도로 나가 창가에 서니, 우산 쓴 행인들이 마치 물 위를 떠가는 동그란 동심원들 같았다. 잠시 세상은 빗속에서 흐릿했고 비를 품고 있던 하늘은 묵시의 표정으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지극히 아름다워 보였다. 요 며칠 불면에..

예보대로 오후 5시까지는 날씨가 쾌청했고, 5시가 지나면서 날이 흐려지고 비 내리기 시작했다. 점심 이후까지도 날씨가 화창해서 혹시 혁재와 은수에게 연락이 올까 봐 작가회의 임시총회에도 불참한 채 전화를 기다렸지만, 저녁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약간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들도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 이해하기로 했다.❙다만 더는 그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후배 창길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창길에게 전화했더니 그는 때마침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가 있었다. 창길은 내가 “오디오 나를 사람과 승합차 수준의 큰 차가 필요한데, 혹시 네가 수고해 줄 수 있겠어? 일당 줄게”라고 했더니, “일당은 무슨,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 주세요” 하며 시원하게 대답해 주었다. 고마웠다. 다음 주쯤 적당한 시간을 잡아 오..

오늘은 한낮의 기온이 30도까지 올라 매우 더웠다. 특히 옥상이 있는 단독주택 우리 집의 실내는 아파트보다 훨씬 덥다. 그런데 채소 가게 가려고 집 밖으로 나왔더니, 웬걸, 볕이 뜨겁긴 했지만, 바람이 솔솔 불어 집안처럼 덥게 느껴지진 않았다. 초여름에는 집안보다 밖이 시원하고, 초겨울에는 집안보다 밖이 따듯하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단독주택은 대개가 그렇다. 우리 집에서도 내 방이 유독 덥다. 3면이 (남쪽 면, 동쪽 면, 옥상인 윗면) 햇볕에 달궈지기 때문일 것이다. 한여름에는 사우나처럼 달궈졌다가 이튿날 아침 무렵에야 비로소 식는다. 옥상 있는 단독주택은 열대야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밤 9시쯤 혁재가 전화했다. 수화기 너머로 재즈 음악 소리가 들렸고, 간간이 사장인 성식의 웃음소리..

작가회의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회장은 회장대로 이사들은 이사대로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고, 내밀하게 주고받은 메시지까지 필터 없이 토론방에 오픈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모든 사태는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지만, 이번 사태는 회장의 책임이 크다는 게 다수 회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회장이 자기 얼굴에 침 뱉기 식의 이 치졸한 폭로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회원들의 이견을 조율하고 갈등을 봉합해야 할 회장이 분열과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그는 여전히 이번 사태가 자신과 타 문학단체(인천 문인협회) 집행부 간의 격의 없는 대화를, 당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언 그 자체만을 문제 삼아 곡해한 사무처장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며 억울해하고 있다. 물론..

치과 치료받고 오다 우리 집에 들른 큰누나와 근처에 있는 중국집 ‘전가복’에서 함께 식사했다. 작은누나는 짜장면 큰누나는 볶음밥 나는 흰색 짬뽕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중식이었다. 요즘 누나들과 자주 만난다.❚얼마 전, 작은누나와 대화 중에 내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기가 빨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져. 그냥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아”라고 말했더니, 작은누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거 무척 안 좋은 습관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폐쇄적인 인간으로 변하게 될 텐데……”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모든 사람을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가족들을 불편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장 힘이 되어야 할 가족에게서 불편함을 느끼다니, 이건 무조건 나에게 문제..

자주 가는 고깃집인 ‘양촌리’에서 누나들과 함께 점심 먹었다. 작은누나와 함께 식당에 도착하니 아침부터 인하대병원에 들러 (건강검진 결과에 관해) 주치의와 상담하고 온 큰누나가 먼저 와 있었다. 자리에 앉으며 작은누나가 “다 괜찮대? 의사가 뭐래?”라고 묻자, 큰누나는 체념인지 달관인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오랫동안 쇼그렌 증후군과 류머티즘 등 각종 질환을 앓아온 큰누나에게는 새로운 증상이 하나 추가되는 게 그리 낯설지 않은 모양이었다. 불면 날아갈 듯 깡마른 누나의 빗장뼈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큰누나네 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했다. 그리고 매형이 쓰던 캐논 카메라 EOS 600D와 각종 렌즈 세트, 그리고 음악 CD를 큰누나로부터 받아왔다. 그러잖아도 ..

오늘은 6월 민주항쟁 38주년 기념일이다. 20대 중반에 겪었던 항쟁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한데, 어언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최루탄에 맞아 숨진 후배 한열이가 살아 있다면 얼추 환갑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겠네. 세월 참 얄밉게 빠르다. 그 여름, 최루 가수 매캐한 가두를 누비벼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던 나의 동료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여전히 민주주의와 양심, 인권과 정의의 가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 혹시 세월의 풍파 속에서 그 모든 가치들은 채소의 시든 꼭지처럼 버려진 건 아닐까? 나의 동료들 중, 누군가는 정치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누군가는 여전히 노동자와 더불어 형극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변절하여 자신의 신념을 부정하며 살고 있다. 사실 신..

본격적인 여름으로 들어섰다. 오늘부터 청사 건물에도 냉방이 시작되었다. 살짝만 걸어도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나로서는 괴로운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대통령이 바뀌고 사회 전반에 사정과 쇄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국민 모두를 만족시킨 것 아니지만, 절반 이상의 국민은 새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나 또한 그의 정치, 사법, 검찰 개혁이 반드시 성공하길 응원한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 심리 때문일까, 주식 시장이 며칠째 호황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 중 코칩 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가가 상승했고, 특히 카카오의 경우는 15% 가까이 급증해 잠시 VI(Volatility Interruption, 변동성 완화 장치)가 발동되기도 했다. 간이 작은 나는 지난주에 약간의 이익(..

이발했다.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서 손거울로 뒷머리를 비춰보니 맘에 들었다. 이발한 첫날부터 (머리가) 마음에 들기는 쉽지 않다. 며칠간 머리카락이 자라야 자연스러워진다. 파마가 아직은 덜 풀려서 가운데 머리카락이 볼륨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다행이다. 정수리 부분에 모발 이식도 생각해 봤는데, 비용보다도 시간을 내기 어려워 포기했다.❙제로 콜라가 생각보다 먹을 만하다. 갑자기 더워진 오늘, 두 캔이나 마셨다. 인공감미료를 사용해 칼로리도 낮아 비만 걱정은 안 해도 된다니 다행이다. 나는 얼음에 희석해서 먹으니 더 낮을 게 아닌가. 사실 나는 비만보다 혈당이 걱정이다. 그런데 설탕이 없는 음료이니 혈당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매우 유혹적인 음료다. 분명 이렇게 장점만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아직은 잘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