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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가을은 저 혼자 깊어 가는 줄 알겠지만, 가을과 더불어 깊어 가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 소리 내지 않고 깊어 가는 것 중 가을이 최고이긴 하지만, 나무와 풀, 해의 볕과 살, 달의 빛, 화초들의 표정 또한 소리 없이 깊어 간다. 나도 그들과 함께 깊어 가고 싶은 계절이다. 오랜만에 만난 보운 형은 사무실 의자에 기대 자고 있었다. 말을 들어보니 그끄제도 그제도, 어제도 연속해서 많은 술을 마셨다고 한다. 왜 그렇게 마셨느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자꾸만 권해서 먹곤 하는데, 같은 친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친구들이 서로 다른 모임에서 권하다 보니, 친구들은 한 번이지만 이 친구 저 친구 만나야 하는 자신은 여러 번의 술자리가 된다는 것이다. 형이 술을 좋아하니 망정이지 술꾼의 일상은 고약하고 가혹하구나. ..
나흘간의 연휴가 끝나가고 있다. 명절 연휴는 늘 허전함만 가중한다. 그리고 이번 연휴 때만 3건의 부고가 도착했다. 민예총 후배 강 아무개의 빙모상, 작가회의 후배 조 아무개의 모친상, 문화재단 본부장 공 아무개의 부친상, 두 주 전의 청첩들까지 치면 이번 달 경조비로만 50만 원이 나갔다. 하, 이거야 원. 명절 전에 주문했던 상품들, 마우스, 물기 제거 스틱, 의류 향수, 조정인 시인의 시집, 독서대 등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가장 맘에 든 상품은 독서대와 시집. 로지텍 리프트 마우스는 이미 해당 모델을 두 개나 사용하고 있어서 성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로따로 주문했는데, 이렇듯 한꺼번에 도착하니 (약간의 시차는 있었지만) 마치 선물 받는 느낌이다. 연휴가 끝나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다른 한..
인천민예총 선배이자 중견 화백인 도지성 선배의 전시 ‘기억의 윤곽’과 사진작가인 인천 후배 김노천(한국시간예술문화연구소) 소장이 기획한 ‘2026 인천국제현대사진전’을 관람했다. 개인전과 사진전 모두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어 한 곳에서 두 전시를 모두 볼 수 있었다. 도 선배의 시선은 이제 정겨운 골목과 이웃들의 삶의 모습에서 도시의 밤 풍경으로 옮겨간 것 같았다. 그림은 하나같이 대작들이었고 모두 공중에서 바라본 ‘부감’ 이미지였다. 이전 작품보다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한 세계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미술 세계와 창작 방법을 고민하고 펼쳐 보이는 그 열정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진전이 열리는 전시장에 들러 김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사진을 감상했다. 그는 사진전 개막이 임박할 때..
큰누나네 집에서 모기에 뜯기며 밤을 꼬박 세고, 아침 6시 30분쯤 쿠팡에서 배송된 추석 음식 재료와 각종 물품을 집 안으로 들여놓은 후, 큰누나네서 나왔다. 피곤했지만, 아침 공기가 너무 상쾌해서 기분 좋았다. 사실 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낯선 잠자리(소파 위)라서 잠은 안 오고, 잠깐 선잠이라도 들라치면 어김없이 날아와 피를 빠는 모기로 인해 악몽 같은 10시간을 보낸 후라서 더욱 상쾌했을 것이다. 그래서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일부러 집까지 걸어왔다. 삼환 아파트 지나 주택가를 걸어올 때는 기름 냄새, 고기 냄새가 코끝까지 와닿았다. 냄새는 확실히 명절이었다. 집에 돌아와 평소에는 먹지 않던 아침을 먹고, 운동도 하지 않은 채 쓰러져 잤다. 일어났을 때는 12시가 넘어 있었다. 몸이 좀 개운..
오랜만에 늦잠 잤다. 침대에 누워서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 하겠다고 다짐한 일)을 떠올렸다. 늘 그렇지만 연휴가 다가오면 할 일들의 목록을 작성하곤 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늘 머릿속 생각으로 끝났을 뿐 실제로 실천한 적은 별로 없다. 이번에도 그럴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사실 저녁까지는 그런대로 내 머릿속 생각처럼 시간이 흘렀다. 음악을 들었고, 방을 정리했으며, 시집들을 들춰봤다. 하지만 저녁 먹고 운동을 끝낸 후 책상 앞에 앉았을 때, 큰누나로부터 전화가 왔다. 휴대폰 화면에 누나의 전화번호가 떴을 때, 받으면 분명 곤란한 일이 생길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통화했다. 아니나 다를까, 누나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동생, 지금 뭐 해? 혹시 우리 집..
충격적이었다. 새벽 2시 30분에 잠이 깼다. 전날 11시 30쯤 잠자리에 들었으니 세 시간쯤 자다가 잠이 깬 것이다. 머리맡에 있는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을 때의 그 절망감이란........ 새벽 4시도 아니고 2시 반이라니....... 그렇게 깨면 좀처럼 다시 잠들 수 없다. 유튜브 영상을 켜놓거나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있다가, 불현듯 선잠이라도 드는 날은 무척 행복한 날이다. 그러나 오늘은 만사휴의(萬事休矣)였다. 그래도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되지 않는 가수면 상태가 몇 차례 찾아오긴 했다. 그 꿈속에서 엔믹스 설윤과 팔짱 끼고 길을 가다가 사람들을 만나 인사했다. 설윤과 함께 걷다니, 그게 어떻게 현실이겠나. 아마도 엔믹스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자동 재생되다가, 잠 못 자고 뒤척이는 나를 ..
9월 햇볕 같지 않은 뜨거운 볕이 쨍쨍 내리쬔 하루였다. 가을보다는 늦여름 느낌이 든 그런 하루였다. 사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 근 일주일째 날씨가 이렇다. 곡식과 과일은 실하게 영글고 있을 것이다. 점심에는 소통협력실 직원들과 삼계탕을 먹었다. 원래는 청에 들어올 때부터 알고 지낸 시민 소통 팀장 주 아무개와 우리 사무실 세 명만 (나, 보운 형, 강 특보) 조촐하게 식사하려고 했는데, (3주 전에 잡아놓은 약속이었다) 우리가 만난다는 소식을 들은 (이번에 새로 온) 담당관이 자신도 우리에게 인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판이 커졌다. 결국 나, 보운 형, 강 특보, 소통협력실의 담당관 권 아무개와 특보 윤 목사, 주 팀장, 대변인 상훈 등 7명이 함께 식사했다. 식당을 나와 Tea time을..
다시 청에 들어온지 3주째에 접어들었다. 시간은 무덤덤하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무덤덤하지 않고, 뭔가 개운찮은 느낌이 떠나질 않는다. 이런 느낌이 든 건 청에 들어오기 전부터다. 선거가 끝나고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함께 일했던 동료와 조직을 고발한 정치 건달들이 있었다. 그런 정치꾼들이 어떻게 캠프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로 인해 당시 캠프에서 일했던 동료들이 줄줄이 경찰서에 불려 가 조사받고 있다. 또한 함량 미달 친구 하나가 특보로 들어와 나와 함께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큰 포부를 품고 들어온 청에서 이런 우울한 소식을 자꾸만 접하다 보니,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주변 상황과는 상관없이 나에게..
지지난 주 며칠은 가을 날씨답게 선선하더니 요 며칠은 내내 더웠다. 그나마 아침에는 제법 가을 분위기가 났다. 오전 내내 거실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아시안게임을 시청했다. 점심에는 엊저녁 (누나가 사다준) 먹다 남은 족발을 이용해 김치찌개를 끓였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돈고츠 김치찌개라고 해야 하나. 어제 먹을 때는 몰랐는데, 점심에 찌개 끓이려고 열어 보니 생각보다 콜라겐이 붙어 있는 살코기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나이 들어 양이 준 모양이다. 오후에는 영화 을 보다가, 정말 오랜만에 (다시 출근하고 처음으로) 길게 낮잠 잤다. 세 시간은 족히 잔 거 같다. 덕분에 묵은 피로가 가셨다. 무거웠던 눈꺼풀도 가벼워졌다. 점심을 넉넉하게 먹은 탓인지, 저녁은 당기지 않아 두유 2개와 아이스크림 열 ..
집돌이가 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에서 나가지 않는다. 가끔 선배나 후배들이 술 마시자고 전화할 때, 그래서 갈등한다. 술 마시는 일도 ‘특별한 일’에 포함되는 일인지 애매하긴 하지만, 설사 사소하더라도 사회적 동물로서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 하는 행동이 있긴 하다. 다만 이전에는 내 쪽에서 연락하는 일이 많았다면 요즘은 대개 연락받는 쪽이 되었다. 어제만 해도 수홍 형은 약간 취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했다. “어디서 술 마시고 있어?”라고 그는 물었고, 나는 “오늘은 집에 있어요”라고 대답했는데, 만약 내가 어딘가에서 술 마시고 있었다면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2차 하러 왔을 게 분명하다. 또 이전의 나였다면 “형은 어디 있는데요?” 묻고는 시간 불문하고 그 자리로 술 마시러 나갔을 것이다. 나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