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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예상대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프렌치코트를 닮은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입고 나왔다. 며칠 전에도 똑같이 입고 출근했는데, 그때는 더워서 목과 등에 땀이 송송 뱄는데, 오늘은 오히려 서늘한 기운이 옷 속을 파고들었다. 사무실에서는 집에서 가져온 약간 도톰한 카디건을 입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딱 적당했다. 밀린 일기 쓰고, 회의 하나를 하고 나니 오전이 다 갔다. 점심은 강 특보와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오늘은 닭볶음과 열무된장국이 나왔다. 요즘 교육청이 노사 협상 중이라서 노동 특보 보운 형은 주 3일 근무자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출근해서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더구나 얼마 전 직장 내 갑질을 주장하며 국민신문고에 문제를 제기한 보육 상담사가 갑자기 의식 불명에 빠지는 일이..
종일 많은 비가 내렸다. 내 방 창문을 통해 비가 방 안으로 들이칠 만큼 거세게 내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장한 빗줄기였다. 서둘러 문을 닫고 책상에 튄 빗물을 수건으로 닦아 냈다. 책장 위로도 빗방울이 튀었으나 고약한 느낌보다는 벅찬 느낌이었다. 비는 어둠이 내릴 때까지 내리다 말다 하지 않고 한결같이 내렸다. 소리까지 마음에 닿는 빗줄기를 만나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음악을 듣다가 거실로 나가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앞집 옥상의 찔레나무 덩굴이 빗물과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위로 뻗어나간 넓은 하늘이 어둡게 채색된 채 비를 뿌렸다.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자주 졸았다. 졸다가 자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창문을 열 때마다 가을바람이 ‘이제 더는 여름의 자리란 없..
오늘 부평공원 소나무광장에서는 청소년 평화문학상 백일장(오전 9시부터 12시까지)과 2026 인천평화축제(12시부터 오후 5시까지)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백일장 심사 위원들(나, 소설가 재은, 시인 병국, 인천평화의 소녀상/징용노동자상 10주년 기념 조직위원회 3인 등 총 6인)은 10시까지 행사장에 도착해야 해서 나는 9시 20분쯤 집을 나왔다. 만수역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히 만난 재은 작가와 9시 45분쯤 행사장에 도착했다. 무대 앞에는 접수를 끝낸 학생들이 앉아 백일장 주의 사항을 살펴보고 있었고, 운영본부 천막과 광장 주변의 단체 부스 안에서는 익숙한 얼굴들이 이리저리 오가며 행사 진행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혹시 너무 춥거나 비가 올까 봐 걱정..
다시 여름이 온 것처럼 낮 기온이 꽤 높았다. 후드티를 입고 나왔는데, 출근길에는 괜찮았으나 한낮에는 무척 더웠다. 희한한 날씨의 연속이다. 언제까지 이 ‘희한함’이 이어지려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마땅치 않은 일이다. 여름에 더운 거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가을이 여름처럼 더운 건 용서가 안 된다. 그나마 잘 때 에어컨을 안 켜고 자게 된 건 정말 다행이다. 10월 중순에 에어컨을 켜야만 잠들 수 있었다면 나는 여름과 가을 모두 싸잡아 욕했을 것이다. 오전 업무 보다가 11시 30분쯤 구내식당 가려고 공무원 카드 챙기다가 그의 전화를 받았다. 유 아무개 박사, 똑똑하고 정 많은 성정에도 불구하고 주사가 심해 주변에 함께 술 마셔 줄 친구가 거의 없는 후배 아닌 후배. 그는 나보다 생일이 빠르지만, 족..
평온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모두 바쁜 와중에 나만 한가한 게 아닌지 미안할 정도다. 사실 내가 아니라도 세상은 무척 바쁘고 요란하게 돌아가는 중이다. 구내식당의 메뉴도 만족스럽고, 그래서 집밥 먹는 느낌을 받고 있다. 오늘은 삼겹살 구이와 된장, 각종 채소가 반찬으로 나왔다. 4,500원짜리 식사치고는 과분할 정도다. 뉴스는 좀처럼 보지 않아 각성한 민주 시민의 자격을 스스로 걷어차고 있지만, 정신 건강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가끔 유튜브(뉴스)를 시청하다가 “저런 쓰레기 새끼”라고 욕설하는 보운 때문에 “왜 그래요? 뭔데” 하며 나도 얼떨결에 해당 뉴스 화면을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화면에서 만나는 뉴스는 늘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견강부회, 아전인수, 감언이설, 교언영색, 후안..
어제 퇴근 후, 저녁 먹고 있을 때 후배 인아가 전화했다. 휴대전화 화면에 그녀의 이름이 떴지만, 식사 중이라서 받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두 번째 전화도 받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끝낸 후 비로소 인아에게 답신 전화했다. "아, 조금 일찍 전화할 걸" 하며, 인아는 정○와 갈매기에 들렀다며 그녀를 바꿔주었다. 정○는 몇 마디 안부를 안부를 묻더니, “형, 바쁘세요? 보고 싶은데, 혹시 나오실 수 없어요?” 하고 물었다. 인아와 통화할 때만 해도 외출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정○까지 그렇게 말하니 거절하기 어려웠다. 일단 귀가하면 웬만해선 다시 외출하지 않기로 소문 난 나였지만, 딱히 바쁜 일도 없었고, 무엇보다 노동운동을 함께했던 후배들의 요청이어서 결국 카카오택시를 불..
아침에 일어났을 때 빗소리가 들렸다. 늘 눈이 떠지는, 아주 고약스러운 시간인 6시에 깼지만, 그렇다고 빗소리에 잠이 깬 건 아니었다. 비는 새벽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테라스에 고인 물의 양이나 거리가 젖은 상태, 하늘의 빛깔, 양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의 양을 보니 비는 추적추적 내린 것이 아니라 주룩주룩 내린 모양이었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왔을 때, 비는 잠시 그쳤다. (완전히 그친 건 아니고, 간간이 한두 방울 떨어졌지만) 휴대전화를 꺼내 예보를 확인했다. 예보에 의하면 비는 오전에 그치고 오후부터는 날이 갤 거라고 했다. 우산을 챙겨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놓고 나왔다. 시청역에 내렸을 때는 다시 (옷 젖을 정도로) 비가 왔으나 (교육청은) 지하도를 나오자마자 바로 청사 별관이어서 장대비가 아니라..
날씨만큼은 확실히 가을이야. 불만 없어. 가끔 낙엽을 만나기도 하고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바람도 너무 좋아. 재즈를 틀어놓으면 음악의 선율이 온몸을 감싸는 거 같아. 가을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인 거지. 하지만 뭐 그런 거 있잖아. 확실한 한 방! 올 가을은 그런 게 없어. 벌써 10월, 하고도 중순을 지나는데, 뭔가 불쾌하지 않게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가을만의 카리스마가 없다고나 할까. 심지어 한낮의 풍광은 자주 여름이야. 생각해 봐. 도대체 10월 중순의 한낮 기온이 27도라니 말이 돼? 이건 순전히 가을이 (성격이) 물러서 그런 거 같아. 이미 자리를 비워줬어야 하는 여름이지만,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면, 심한 소리라도 한마디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이게 뭐야. 제 몫의 자리, 제 몫의 색깔, ..
다른 건 모르겠고, 오늘 오후 2시쯤부터 5시까지 무려 3시간 동안 긴 낮잠 잤다. 일어났을 때 어찌나 개운하던지, 늦은 밤 혹은 내일 이른 새벽까지 불면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조차 잠시 잊었을 만큼 개운한 오수(午睡)였다. 요 며칠 불면으로 인해 절대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종일 피곤하고 눈꺼풀이 내내 무거웠다. 그런데 오늘 한 번의 낮잠으로 부족한 잠이 많이 벌충되었다. 낮잠이 건강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제대로 못 챙기는 밤잠의 부족분을 이렇게 낮잠으로라도 챙기는 건 그리 나쁠 것 같지 않다. 물론 긴 시간 낮잠을 자면 그것이 숙면을 방해하고 불면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당장 피곤해 죽겠는데, 불확실한 숙면을 바라며 확실한 피로 극복 ..
요 며칠 무리했더니 코감기가 찾아왔다. 기침은 안 나오지만, 코가 헐어 딱지가 생기고 숨 쉴 때마다 불쾌했다. 서랍과 냉장고를 뒤져 콧물 나올 때 먹는 캡슐 약 4알과 목감기에 먹는 액상 약 2개를 찾아냈다. 식사 후 약을 먹은 후, 식염수를 이용해 코 세척을 했다. 왼쪽 콧구멍에서 시커먼 피딱지가 쏟아져나왔다. 얼마나 시원한지,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통쾌했다. 여름이 가기를 더디 하니 공연히 나만 피곤하고 짜증스러운 코감기가 찾아왔다. 미련 많은 여름 탓이다. 아니다. 제 모습 가꾸기에 게으른 가을 탓이다.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다 보니 괜스레 계절에 심통 부린다. 여름과 가을이 무슨 죄가 있다고. 감기 왔는데도 냉면 먹고 아이스크림 먹은 나는 책임 없나? 공원에나 갈까 하다가 잠을 택했다. 문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