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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출근했을 때, 어젯밤 노사팀 신구(新舊) 팀장 및 직원들과 술자리를 가졌던 보운 형은 의자에 기대 졸고 있다가 나를 보자 게슴츠레한 눈으로 “왔어?” 하고는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내가 “어제 많이 마셨나 봐요?”라고 물었지만, 이어폰 때문인지 무반응이었다. 형은 한 시간가량 그 상태로 잤다. 그리고 깨자마자 “아참! 나, 증명사진 가져왔어.” 하고는 지갑에서 증명사진을 꺼내 내게 주며, “공무원증 신청 좀 해줘” 하고 부탁했다. 일단 형의 증명사진을 카메라로 찍은 후, 나의 메일로 발송했다. 그런 후에 형의 컴퓨터에서 내 메일(다음)을 실행한 후 폰으로 보낸 그 사진을 다운로드하여 형의 컴퓨터에 저장했다. 그리고 업무포털 나이스로 들어가 그 사진을 등록한 후 공무원증 신청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
종일 교육청 내부 통신망인 아이스 톡(Ice talk) 설정과 나이스, 파인에듀 등 업무포털 연결을 위해 시간을 보냈다. 앳된 담당 주무관은 우리(특보)가 채용되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총무과에서 나의 인사 관련 정보가 아직 나의 부서인 정책기획조정관으로 넘어오지 않은 듯했다. 다소 황당했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어제 날짜로 근무가 시작되었고, 공공조직 특유의 복잡한 결제 라인을 고려할 때 그리 늦은 것도 아니다. 그나저나 내가 없는 동안 정보 기획과에서 휴면 컴퓨터라는 이유로 내 컴퓨터를 건드리는 바람에 (뭘 어떻게 건드려 놓았는지 알 수 없지만, ) 업데이트도 안 되고,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자꾸만 렉이 걸려, 결국 내일 1시에 컴퓨터를 포맷하고 모든 프로그램을 새로 설..
지난 4월 의원면직하고 퇴사한 지 5개월 만에 다시 직원이 되어 청에 출근했다. 6년이나 일한 직장이지만, 퇴사하면서 모든 게 초기화되었으므로 급료 산정, 내부 통신망인 아이스 톡(Ice-talk) 등록, 공무원증 발급 등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만 6년간의 경력은 사라지지 않고, 인정되는 시스템인지, 최종 합격하고 총무팀에 제출해야 할 서류 목록에 ‘경력 인정 요청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만약 경력이 인정된다면 급료 산정에 반영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모든 절차가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은 달랑 예산팀 주무관이 와서 부양가족 확인서와 공무원 회비 원천징수 동의서만 받아 갔다. 그래서 오늘은 내부 통신망에 접속할 수 없어 전화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때에는 서..
어느 블로거가 쓴 ‘일요일을 보내는 10가지 방법’이란 글을 읽은 적 있다. 그 글을 쓴 이는 무척 부지런한 사람 같았다. 전시회 관람, 콘서트 가기, 산책, 등산, 음악감상, 영화 보기, 책 읽기 등 주로 몸을 움직이거나 마음을 쓰는 방법들을 소개했는데, 내가 좋아하고 가끔 실천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앉아 있기 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거라면 나도 100개는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를테면 화초에 물 주기, 책장 정리하기, 싱크대 물때 지우기,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 쓰기, 버릴 옷들 추려내기, 신발 빨기, 격조했던 친구나 형제들에게 전화하기, 침대에 눕기 전까지 10번 이상 크게 웃기, 유튜브 보기, 일기 쓰기 등등. 하지만 가끔은 멍하니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거..
아들에게 오랜만에 전화했다. 수화기 너머 아들은 쉰 목소리였다. 어젯밤 회식 끝나고 새벽에 들어온 탓에 그때까지 자다가 잠결에 전화받은 것이다. 아들에게 "자고 있었어? 미안해, 잠 깨워서"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미안하지 않았다. 난 9시 20분쯤 전화했고, 그 시간은 누구나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시간 되면 오늘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오자고 연락했어. 너는 올해 한 번도 안 갔잖아" 전화한 이유를 말했더니, 아들은 기가 막히다는 듯 "지금 가자고? 참 아빠도...... 하루 전에라도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죠. 가자고 하면 내가 안 가겠어요?" 했다. 사실 계획에 없던 전화이긴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즉흥적으로 연락했던 것이다. 이 또한 미안하지 않았다. 아비가 아들에게 전화하는 데 눈치..
서너 달, 정확히는 6월부터 8월까지 두 달 동안 완벽하게 놀았다. 쉬거나 충전한 게 아니라 그야말로 늙은 개의 오후처럼 늘어져서 무기력하게 놀았다. 대개는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보며 키득거리며 하루를 보냈고, 가끔 지인과 술 마시고, 느지막이 일어나 해장라면을 먹으며 하루를 열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날이 너무 더웠고, 심리적으로는 마치 무거운 돌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막연한 불안감이 자주 엄습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원인을 특정하지 못하겠다. 한 가지가 아니라서 더욱 그럴 것이다. 불안감은 다양한 층위에서 시작되고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어 내게로 왔다.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는데도 지레 불안해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닌데도 마치 내 책임처럼 느껴져 뭔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는데, ..
오전에 교육감실에서 임명장을 받았다. 세 번째 임명장이고, 청에서 받는 마지막 임명장이 될 것이다. 보좌관은 교육감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임명식 세 번 중에 오늘 가장 많은 사람이 교육감실에 모였다. 공공기관의 임명식은 공식 행사라지만, 식이라고 해봐야 주무관이 임명장의 내용을 읽고 교육감이 신규 특보에게 임명장을 건네며 악수하고 사진 찍는 게 다다.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5분 내외다. 식이 끝나고 총무과로 내려가 공무원 등록부를 작성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와 책상을 정리한 후 집에 돌아왔다. 점심은 집에서 먹었다. 저녁에는 부평에서 선배들(부평문화원 원장 신동욱 선배와 선광 갤러리 관장이었던 순형 형, 그리고 수홍 형 등)와 술 마셨다. 마포주먹고기에서 1차를 했고, 2차로 역..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운동하고 혈압약과 당뇨 약을 처방받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 9시(병원 문 열 때)에 맞춰서 갔는데 24시간 투석하는 병원이라 그런지 이미 서너 명의 방문객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순서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 혈압을 재고 손끝을 따 혈당을 확인했다. 다행히 혈압은 지극히 정상이었고, 혈당 수치는 120이었다. 주치의는 나에게 두 달 후에 다시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말했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1층 약국으로 내려가 처방받은 약과 식염수 한 병을 사서 집에 왔다. 오후 2시 40분쯤 보운 형에게 전화가 왔다. 접수할 때만 해도 목요일에나 받아볼 수 있을 거라던 신체검사 결과가 이미 나와 있더라며 자신은 지금 센터에 들러 결과지를 받아오겠다고 했다. 언제 전화해 본 건지, 원. ..
오전에 집주인을 만나 임대차계약서를 다시 작성했다. 주인 사내는 내가 그의 집에 들를 때마다 좀처럼 켜지 않는 에어컨을 켜주고는 하는데, 그게 고맙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그렇다. 물론 고마울 때가 더 많다. 집안 대소사의 결정권은 그의 아내에게 있고, 임대료도 그의 부인 계좌로 입금된다. 나는 그가 아내의 지청구에 반박하거나 대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완벽하게(?) 잡혀사는 이유가 아내에게 뭔가 책잡힌 게 있어서인지, 충청도 아저씨 종특인 유순한 성정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나에게 무척 고지식하면서도 착한 주인이다. 내가 파란만장한 어둠의 한 때를 치명적인 상처 없이 통과할 수 있었던 건 주인 사내와 같은 착한 이웃들과 나의 형제들, 그리고 하나님의 보살핌 때문이다. 아, 하나 ..
오전 1시에 잠이 들어 4시에 깼다. 음악을 틀어놓고 다시 자 보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낭패였다. 오늘은 채용 신체검사 하는 날이어서 컨디션 조절이 필요했다. 눈만 감고 침대에 누운 채 길고 지루한 잡생각들을 머릿속으로 불러왔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시청했다. 뉴스는 보지 않았다. 잠 못 자서 몸 상태는 이미 엉망인데, 새벽부터 마음까지 다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늘 힘든, 불면의 모진 시간을 견디다 보니 어느덧 7시를 지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이 시간쯤 각종 약을 먹었을 테지만, 오늘은 검사 때문에 먹지 않았다. 당연히 물도 마시지 않았다. 신체검사는 최근 숭의동에서 구월동으로 신축 이전한 한국건강관리협회 인천지부에서 받았다.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