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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예상했던 대로 H는 오전에 전화했다. 정확하게 9시 56분, H와 통화했다. H의 첫 질문이 “선배, 어젯밤에 전화하셨어요?”여서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전화 감도가 좋지 않아 왜 그런지 물었더니, “너무 지하라서 그런가 봐요” 했다. 아마도 지하 주차장에서 핸즈프리로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었다. “또 훌쩍 시간이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10월에는 우리 꼭 봐요” 지난번 문자에서도 H는 그렇게 말했다. “본 지 오래되긴 했네. 혁재 엄마 빈소에서 보고 아직이니……” 내가 대답했다. “네, 10월에는 꼭 봐요. 제가 연락드릴게요.” H가 말했다. “그래, 시간 날 때 언제든. 나는 늘 거기에 그렇게 한결같이 있어” 했더니, “네” 하며 H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의 말을 알아들었기 때문인..
낮에는 박 실장이 회의하러 왔다가 사무실에 들렀다. 담배 피우는 그를 위해 옥상에 올라가 가을볕을 쐬었다. 공기는 맑고 볕은 어찌나 따스한지 기분이 상쾌했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니 볕 좋은 것도 모르고 가을을 보내버릴 뻔했다. 후배들과 박 실장이 담배 피우며,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고 있을 때, 나는 일부러 팔을 크게 움직이며 옥상을 서너 바퀴 과장된 걸음걸이로 걸었다. 그러면서 ‘박 실장은 뇌경색으로 병원까지 다녀왔으면서 왜 담배를 못 끊는 걸까’ 생각했다. 10월 날씨치고는 너무 따스해 반소매 차림이었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피우다 남은 담배를 나에게 주며 박 실장이 돌아가고 나는 퇴근 준비를 했다. 사무실을 나오며, 연휴 기간 내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내가 하도 기특해 스스로 ‘오늘쯤은 술 한..
어차피 벌어질 일은 반드시 벌어진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고민한다고 벌어질 일이 유예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한다고 벌어진 일이 없었던 게 되진 않는다. 미리 당겨서 고민한들 맘졸이는 시간만 길어질 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늘 벌어진 일이나 벌어질 일을 ‘다시’ 고민하거나 ‘미리’ 고민했다. 고민이 고민의 꼬리를 물고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형국이었다. 해결되지도 않고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를 고민하느라 내 영혼은 자주 황폐해지고 생활은 구겨진 종이처럼 자주 하찮아졌다. 몇 차례 모진 맘으로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해보았지만, 소심하고 예민한 성정은 개미지옥 같은 고민의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 잡생..
날 부르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 왔으나 받지 않았다. 휴대전화 화면에 뜬, 발신자의 이름만 봐도 왜 전화했는지 알 수 있었다.축제 마지막 날, 술 한잔하자는 전화였을 것이다. 내일이 대체휴일이다 보니, 음주에 무모해진 게 틀림없다. 처음으로 쿠팡이츠로 마라탕을 주문해 봤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먹는다던데먹어 보니 왜 그런지 이해가 됐다. 담백하기도 하고, 얼큰하기도 하고, 구수하기도 하고아무튼 가격이 비싼 거 빼고는 먹을 만했다. 몇 가지 채소를 추가한 가격 16,000원. 일요일이 꼭 토요일 같다. 내일도 휴일이라 그럴 것이다. 고즈넉하고 편안함 밤이다. 재즈 연주가 듣기 참 좋다.
요약 편집된 2편의 영화 유튜브 영상, 20여 편의 동영상과 30여 편의 shorts,30여 곡의 재즈, 2시간의 운동, 6시간의 수면(낮잠 안 잠), 샌드위치 2개(식빵 4쪽), 달걀 2개, 두유 2개, 컵라면 1개, 아이스크림 5스푼, 밥 1공기, 물 1리터, 간장 채소 비빔밤, 포도 2송이,오늘 나를 행복하게 해준 것들. 10월은 악착같이 즐길 생각이다. 그게 계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어제부터 부평풍물대축제가 시작되었다. 번잡한 곳이 싫어 가지 않았다. 후회도 미련도 없다.
엊저녁 음주에도 불구하고 숙취는 없었다. 다리가 저려 잠은 좀 설쳤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컨디션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3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두유 3분의 1을 마신 후 출근 준비했다. 아침 기온은 어제보다 뚝 떨어져 약간 서늘했지만, 땀 많고 더위 타는 나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역으로 가는 길에 만난 통학 중인 문일여고 학생들의 옷차림은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도톰한 후드티를 입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요맘때가 되면 뭘 입어야 할지 늘 고민이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다른 요일보다 30분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옷장 앞에서 뭘 입고 나가야 할지 망설이다가 3분 지각했다. 그래도 내 방을 나가 15분이면 사무실에 도착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대체로 ..
일 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 10월이 시작되었다. 출근길은 선선했고, 하늘은 맑았다. 전형적인 가을의 얼굴이었다. 오전에 교육문화회관에 연락해 다음 주 8일 운영부장과 자치학교 팀장을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출장을 신청했다. 보운 형은 나오지 않아 사무실이 종일 조용했다. 점심은 정책기획 조정관 황보와 함께 먹었다. 그는 현재 오래 함께해 온 선배와 갈등을 겪고 있고, 지난 지자체 선거비 문제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어 스트레스가 이만전이 아닐 텐데도 표정만은 씩씩해 보였다. 식사하면서 안팎으로 외롭고 힘든 그를 위로하고, 최근 내가 겪고 있는 업무상의 곤혹스러움에 관해서도 솔직하게 말하고 조언을 구했다. 그의 스타일 대로 대답은 무척 명료했다. 다행히 그의 대답과 결론은 내 생각과 일치했다. 그냥 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