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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둥지냉면을 발견한 건 나에겐 크나큰 행운이다. 청수냉면이나 칠갑농산, 면사랑과 봉피양, 교동식품과 제일제당 등 다양한 회사의 봉지 냉면 제품과 육수들을 먹어봤지만, 최근에 먹어 본 농심의 ‘둥지 냉면’이 가장 맛있다. 그래서 온라인 쇼핑으로 넉넉하게 사놓았다. 물론 입맛은 사람마다 달라서 다른 사람들은 나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 주관적인 입맛으로는 둥지 냉면이 최고다. 일단 면발과 육수 모두 냉면 전문 식당에서 먹는 것과 맛이 그중 비슷하다. 그래서 엊저녁도 오늘 저녁도 둥지 냉면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물론 나는 냉면에 다양한 채소, 이를테면 상추, 숙주, 깻잎, 오이, 사과, 토마토 등 냉장고에 있는 각종 채소와 과일 슬라이스, 달걀을 넣어 먹는다. 그러다 보니 종종 육수가 모자라 칠갑농산의..

대기질은 종일 최악이었다. 나날이 화생방 훈련을 하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비번이었지만, 보운 형이 강화 난정평화교육원으로 1박 2일 출장 간 탓에 사무실을 ‘지키려고’ 출근한 거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마을 교육 담당관인 김 선배는 헤드폰을 쓴 채 뭔가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발을 했는지 머리가 단정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다인아트 윤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엊그제 교정 끝낸 자서전의 저자가 본문 내용에 첨가해 달라며 추가 원고를 보낸 모양이었다. 교정해서 본문에 넣은 후, 재편집해서 윤 대표에게 보냈다. 윤 대표는, 소설집을 내달라며 누군가 가져왔다는 원고지 1,500매 분량의 소설 원고도 내게 보내며 “선생님, 이거 출판해도 되는지 어떤지 한번 읽어봐 주세요. 내가..

천안에 있는 후배가 변산바람꽃과 노루귀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지척의 봄을 사진에 담아 보내준 것이다. 공기질만 좋았다면 공원이라도 찾았을 텐데...... 그러나 봄은 산과 들판, 공원과 거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봄은 내 옷장과 책상, 책꽂이와 창틀에도 있고, 냉장고와 신발장, 테라스의 화초들 위에도 있다. 또한 봄은 내 마음속에도 들어와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고 있다. 이 몽글거리는 떨림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처음 새순을 내미는 꽃나무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그렇다면 이 봄에는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이 느낌, 믿어도 될까? 해마다 이맘때면 봄의 충동질에 마음이 온통 소년처럼 부풀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흘러가 버린 여느 해의 봄처럼, 올봄도 마음만 실컷 부풀..

오늘은 한국작가회의 총회가 있는 날이고, 117번째를 맞는 여성의 날이며, 탄핵 촉구 시민행동의 날이기도 했다. 날씨는 포근하고 맑았다. 친구들은 산에 갔고, 문우들은 총회에 갔으며, 동지들은 집회에 참석했다. 나는 어제 늦은 밤에서부터 오늘 새벽까지 유튜브에서 ‘양자물리학’과 ‘테세우스의 배’에 관한 강의를 듣느라 잠을 못 자서 느지막이 일어났고 종일 피곤했다. 결국 아무 데도 안 가고 집에서 영화나 보고 가끔 운동하고 과식하며 죄스러울 정도로 편안하게 보냈다. 끝내 뉴스는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못했다. 큰 용기(?)를 내서 시청해 보려 했으나, 화면 가득 비열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꼴보기 싫은 악마의 얼굴이 자꾸 나타나 가슴이 턱 막히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려서 이내 뉴스 보기를 포기할 수밖에..

희한하게 금요일만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특히 오늘처럼 봄을 재촉하는 3월의 금요일은 더욱 그렇다. 오래 전화가 없던 사람의 연락을 뜬금없이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친구와 지인을 만나 술을 마셔도 이튿날부터 연이틀 휴일이라 별로 부담이 없다는 것도 금요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다. 이런 날은 내가 한없이 너그러워져서 누구나 내 마음에 들어와도 막지 않는 날이다. 아니 오히려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렇다고 정말 누군가가 내 마음에 들어오거나 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마음의 물결 상태가 그렇다는 말이다. 가끔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고 싶어서 잠긴 빗장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쓴 적이 있다. 그래서 결국 상대의 마음에 들어가 꽃을 심기도 하고, 끝내 열지 못하고 뒤돌아서기도 ..

민주화센터의 업무가 많아져 새 직원을 뽑게 되었는데, 자문위원 중 한 사람을 반드시 심사위원으로 위촉해야 했던 모양이다. 어제 퇴근길에 급하게 연락받고 오늘 아침 센터에 심사하러 갔다. 처음 사무처장 L의 전화를 받았을 때, 될 수 있으면 나 말고 다른 위원에게 연락해 보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결국 내가 가게 되었다. 하긴, 심사 하루 전에 연락해 오전 2시간 정도를 뺄 수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시간 내기 곤란했을 것이다. 약속 시간(10시)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직원으로부터 심사와 관련한 참고 사항을 브리핑받고, 접수된 지원자들의 신청 서류들을 검토했다. 민주화센터에서 1차로 서류 심사를 진행해 최종 4명만 올려 보냈기 때문에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제 오후부터 오늘 늦은 밤까지, 종일 윤 대표로부터 부탁받은 자서전 교정을 봤다. 원고 대부분이 최근까지 생활정보지에 연재했던 글이어서 기본 교정은 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재창작 수준으로 윤문해야 할 만큼 엉망은 아니었고, 뭐랄까, 글마다 편차가 컸다고 할까. 어떤 건 깔끔한데 또 어떤 건 맞춤법과 띄어쓰기, 호응이 깨진 비문들이 부지기수였다. 원고의 양은 글자 A4 용지 250쪽 분량(크기 10포인트)이었다. 텍스트와 교정자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하루에 꼼꼼하게 읽고 교정할 수 있는 최대치는 70~80쪽이다. 물론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 15시간 이상 교정만 한다면 100쪽까지도 가능하겠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렇게 무리해서 일하진 않는다. 이 자서전의 교정을..

연휴 끝에 느지막이 출근했다. 8시까지도 출근할 생각이 없었으나 집에만 있으면 자꾸만 늘어져 후다닥 세수하고 (머리는 감지 않은 채) 9시쯤 출근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니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내부 통신망 쪽지로 줄줄이 도착해 있었다. 성과급 지급을 위한 작년 업무에 관한 성과보고서 작성과 증빙 자료 제출, 외부에서 온 공문 검토, 다인아트 윤 대표와의 만남 등 출근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성 과보고서 작성은 중등교육과와 교육문화회관 양쪽에 자료 제출을 요구해야 하므로 서둘러야 한다. 담당 직원이 외근을 나가거나 출장을 가게 되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중등교육과 문예 예술교육 담당 장학사는 수년간 나와 함께 업무를 봤기 때문에 내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

8시쯤 일어났다. 생각보다 창밖이 밝지 않았다. 8시가 넘었는데도 어두컴컴했다. 흐린 하늘로 하루는 시작됐다. 그러나 오전이 지나면서 해와 구름이 숨바꼭질했다. 창문을 열었을 때 찬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의 루틴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체 휴일이었지만, 일요일 같았다. 친구 이 아무개의 부친 부고를 받았으나 빈소에는 가지 않고 조의금만 보냈다. 운동을 하면서 영화 유튜버들의 (영화) 요약 영상을 보다가 맘에 드는 영화는 따로 유료 다운로드 사이트에 들어가 다운로드하였다. 캐나다 국민 화가인 모드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내 사랑'은 그전에 본 적이 있는 영화였지만 소장하고 있지 않아 이번에 구매해서 저장해 놓았다. 셀리 호킨스와 에단 호크의 연기는 다시 보아도 압권이었다. 그렇게..

종일 숙취로 빌빌댔다. 보름 만에 마신 술이어서 그런 걸까, 어제 생각보다 많은 술을 마셨다. 은준과 저녁 먹으며 마신 술은 소주 1병 반이었으나, 카페에서 한 병을 더 마셨고, 이후 막걸리를 마셔서 더욱 속이 더부룩했던 것 같다. 주종을 바꾸면 항상 사달이 난다. 그 와중에도 아이스크림을 먹었으니 속이 오죽했겠는가. 라면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밤에는 누나가 사다 준 단팥빵을 두 개나 먹었다. 요즘 먹는 것만 보면 마치 건달이 살을 찌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먹는 폼이다. 기초 대사량이 높은지 어떤지 옛날부터 먹는 양에 비해서는 살이 찌진 않지만, 사실 살이 문제가 아니라 치솟는 혈당이 문제다. 나이 먹어 챙겨줄 사람도 없는데, 이렇게 막가파 식으로 섭식을 조절하지 못하니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