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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노동 특보 보운 형이 적극 추천한 전라도 밥집에서 오랜만에 집밥다운 집밥을 먹었다. 지난번 P실장과 셋이서 들렀다가 정기 휴일이라 그냥 돌아와야 했던 집이다. 12시쯤 들렀는데 다행히 빈자리가 있었다. 반찬의 가짓수가 많은데도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음식의 간도 내 입맛에 맞았다. 특히 공깃밥도 흰쌀밥이 아니라 잡곡밥이어서 좋았다. 갈치도 넉넉하게 나와서 배불리 먹었다. 밥값이 싼 것은 아니었지만 음식의 가짓수와 생선 단가를 생각하면 가성비 있는 식당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식당이라서 오히려 좋았다. 집에서는 식사 후 설거지하자마자 식후 운동으로 자전거를 30분 타곤 하는데, 청에서는 식후에 할 수 있는 운동이 걷기밖에 없다. '전라도 밥상'까지는 걸어서 20..
귀화(歸化), 뿌리 '내릴' 사람들이 낯선 타지에서 온전히 뿌리 '내린' 사람들이 되길 바라며 주말, 도든에 들어(入) 후배 평한과 그의 작품을 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공복 혈당을 재고(98) 키위와 딸기, 방울토마토와 블루베리, 니코타 치즈를 먹었다. 아무리 과일이라 하더라도 어젯저녁 이후 12시간 만에 음식을 먹었으니 16시간 공복은 유지하지 못했다. 허기 때문에 먹은 건 아니다. 혈당 관리에 자신감도 붙고, 또한 과일의 영양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앞으로는 간헐적 단식을 융통성 있게 유지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해서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야식을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량 효과는 충분히 보고 있으니 이제는 단식 그 자체보다 균형 있는 영양 섭취에 주안점을 둬야겠다. 혈당은 약간의 오차는 있었으나 공복 ..
"영국 시인 T.S.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습니다. 4월은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과 재생의 계절이지만, 작고 연약한 씨앗이 겨울의 단단한 땅을 밟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잔인하고 힘든’ 계절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 구절을 정신적 메마름, 믿음의 상실, 재생(再生)이 거부된 죽음을 의미하는 ‘황무지’ 위에, 희망의 씨앗을 싹트게 하려면 껍질을 뚫고 나오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역설로 읽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4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4.3, 4.19, 4.16 등 애꿎은 희생들이 많았던 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0년 4월 19일, 학생들은 목숨을 걸고 희망과 재생의 시간을 열어젖혔습니다. 그들은 독재와 탄압이라는 ‘저..
불쾌한 기시감, 검열과 배제의 망령들 문계봉(시인)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핵심 가치이다. 특히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예술 창작은 존립할 수 없다. 자유를 억눌린 채 강요된 이념을 표현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 생경한 선동이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이념과 세계관을 예술적 표현으로 일관되게 구현하는 것은 선동이 아니라 예술적 실천이다. 따라서 예술 표현은 예술가의 수만큼 다양한 경향이 있을 수 있다. 이때 각각의 경향은 서로 다른 상대의 경향을 비판할 수 있지만 비난해서는 안 된다. 한 작품의 미덕을 평가하는 데 있어 그 예술작품 속에 담긴 역사의식에 주목할 수도 있고 해당 작품의 미학적 측면에 주목할 수도 있다. 또한 작품의 사..
그날, 그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도시를 할퀴고 간 다음 날 아침, 나는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23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라앉은 추모식 현장에는 많은 희생자가 나온 전날의 참사로 인해 한층 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고 있었다. 참석자들의 헌화가 끝난 후, 검은 양복 차림의 교육감이 추모사를 했고, 유가족 중 한 명이 나와 비장한 목소리로 조시를 낭독했다. 뒤이어 나온 유가족 대표는 간밤에 벌어진 ‘10.29 참사’를 언급하며 23년 전 희생된 57명의 학생을 추모하는 동시에 정보공개가 원활하지 않은 행정의 난맥을 결연한 목소리로 지적해 나갔다. 그러나 정작 추모식 내내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제단의 오른쪽에 세워져 있던 ‘엄마’라는 리본이 매달린 근조 화환이었다. 23년 전 희생..
위드-코로나(with-corona)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니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선언이야 기왕에 이루어졌지만, 치명률, 위중함의 정도, 감염자 숫자 등 고려할 여러 사항이 있다 보니 말뿐인 선언에 그쳤던 게 사실이다. 최근에서야 오미크론 코로나 증상이 심한 감기 수준이라는 사실이 경험으로 확인되면서 방역 당국이나 시민들이나 다소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주인의 한숨만 가득했던 음식점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마지막 봄꽃을 즐기려는 상춘객들로 유원지가 북새통으로 이루고 있다. 완전히 이긴 것은 아니고 패배한 것도 아닌, 그야말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미한 증상의 변종으로 변이가 이루어진 코로나에 고마운 마음이 들 지경이다. 솔직히 말해서 현대 과학의 힘으로 변종의 성격을 규정한..
그 동안 생각보다 '실력' 발휘를 못해 왔던 (애초부터 없던 건지, 있는데도 발휘하지 못한 건지, 아님 발휘할 생각이 없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부와 여당은 얼마나 고마울까. 지지율이 바닥을 칠 때쯤이면 이렇듯 알아서 뻘짓 해주는 자발적 X맨, 혹은 현실부적응자들이 하나둘씩 앞..
지난 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뒤 전 세계로 확산된,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으로 인해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바이러스 발생 초기 정부는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창궐 당시 학습된 경험과 이후 확보..
때가 되면 가야할 것은 순순히 자리를 비워주고 와야 할 것은 겸손하게 빈자리를 채우는 자연의 이 같은 순환은 늘 정확하고 빈틈이 없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러한 자연의 순환에 자신의 보폭을 맞추며 기꺼이 순응하고 미련 없이 양보하는 삶을 삽니다. 저 들판의 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