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봐, 분명 봄이잖아! (3-4-화, 가끔 비) 본문
연휴 끝에 느지막이 출근했다. 8시까지도 출근할 생각이 없었으나 집에만 있으면 자꾸만 늘어져 후다닥 세수하고 (머리는 감지 않은 채) 9시쯤 출근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니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내부 통신망 쪽지로 줄줄이 도착해 있었다. 성과급 지급을 위한 작년 업무에 관한 성과보고서 작성과 증빙 자료 제출, 외부에서 온 공문 검토, 다인아트 윤 대표와의 만남 등 출근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성
과보고서 작성은 중등교육과와 교육문화회관 양쪽에 자료 제출을 요구해야 하므로 서둘러야 한다. 담당 직원이 외근을 나가거나 출장을 가게 되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중등교육과 문예 예술교육 담당 장학사는 수년간 나와 함께 업무를 봤기 때문에 내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려서 그에 해당하는 자료를 보내준다. 교육문화회관의 민 팀장도 마찬가지인데 아쉽게도 이번 3월 인사이동 때 청으로 들어와 올해부터는 다른 팀장에게 부탁해야 했다. 고맙게도 민 팀장이 새 팀장에게 전화를 해주기도 했고, 바뀐 새 팀장인 문모 장학사도 나를 알고 있던 분이라서 수월하게 일을 처리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점심때 찾아온 윤 대표와는 빈민과 장애인 운동을 해온 한모 성공회 신부의 자서전 출판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수3 지구 이화순대를 찾아가 순댓국을 먹었다. 윤 대표는 “오길 잘했네요. 어떻게 이렇게 담백한 맛을 낼 수 있지요?” 하며 만족스러워했다. 한 가지 희한했던 건, (보통을 많이 먹으라는 의도였을까?) 두어 달 전 박 실장, 보운 형과 왔을 때보다 (순댓국) 보통은 천 원을 내리고 특은 천 원을 인상해 각각 12,000원과 16,000원이었다.
식당을 나와서도 비는 추적추적 내렸다. 둘은 다시 청사로 돌아와 내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비서실장을 불러 감(監)의 책 출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단체장들이나 의원들이 책을 내기 시작했다는 건 선거가 임박했다는 말이다. 출판기념회가 가장 합법적인 재정확보 행사이고 지지자들의 결속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마치고 윤 대표가 돌아간 후, 부평으로 식사하러 갔던 보운 형과 약속 때문에 나갔던 김 목사님이 돌아왔고 부탁했던 자료들이 아이스톡으로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퇴근해서 곧장 집으로 왔다. 저녁 먹고 운동할 때 은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근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현장에서 많은 걸 느끼고 있는데 (특히 용접하는 불꽃을 보며 시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 느낌을 시로 옮기기 위해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며 약간 달뜬 목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나는 자전거 위에서 페달을 밟느라 약간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오래 통화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느낌은 반드시 그때그때 수첩에 메모해 둬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야.”라는 의례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사실 마지막 말은 내가 자주 경험한 일이라서 (의례적인 말일지라도) 나 역시 새겨둘 필요가 있는 말이었다. 은준은 “네, 형이 준 작가회의 다이어리에 착실하게 메모해 두고 있어요”라고 대답하고는 이내 화제를 바꿔 계속 통화를 이어가려고 해서, 운동하고 있다고 말한 후 통화를 끝냈다. 뭔가 가슴을 격동시키는 일을 만날 때마다 그걸 나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그의 심정을 모르지 않는다. 50대 후반에 문학청년의 느낌으로 살아가는 후배는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그 행보를 응원한다. 다만 너무 떠벌려서 휘발시키지 말고 소중한 그 느낌과 경험을 내부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서서히 숙성시키는 인내심과 진중함이 아울러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날은 궂었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다. 바람 불어도 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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