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현실 (74)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결국 대통령이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일부 친박 의원들과 새누리 당 내함량미달 정치가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였다"느니, "이제 국론 분열의 상황을 추스르고 다시 대통령을 믿고 따르자"느니 말도 안 되는 쉴드를 치고 있지만, 그러나 국민들의 분노와 의구심은 결코 해소되지 않았다. 그..
재활용품으로 급조된 옹색한 보금자리 속에서도 잘 견뎌주고 있는 아이들. 벽란(碧瀾)은 버려진 꽃대에서 잘라 커피케이스에 넣어준 건데, 불평을 하기는커녕 어느 새 뿌리까지 내렸어요. 장미는 지난 주말 민예총 평화축제 때 춤꾼 삼헌이의 소품으로 쓰였던 친구. 꽃들의 언어는 인간..
빈 사무실에 앉아서 강허달림의 노래들을 듣고 있는데, 조금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이미 어둠이 깔리고, 가로등 불빛을 받은 빗물은 은실처럼 아름답다. 피곤하고 쓸쓸한 하루였지만 비 오는 저녁의 고즈넉함이 마음을 다독인다. 이제 저 빗속을 걸어 집으로 가야하는데..
계절이 바뀔 때면 파킨슨병인 어머니의 오른손은 갈피를 잃고, 제멋대로 분주하다. 마치 한 생을 저울질 하는 판관 앞에서 판결을 기다리며 떨고 있는 수인의 손처럼. 그러나 곤충의 고치처럼 움츠러든 저 작은 몸속에 담긴 뜨거운 한 생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저울이 있을까. 점점 작..
그들은 정말 사랑한 걸까. 수많은 대화와 수많은 통화와 수많은 생각들이 그들 앞에 있었지만 상대의 눈빛과 상대의 숨소리와 상대의 손길을 보고 듣고 느껴보지 못한 사랑은 짐승의 마른 뼈처럼 쉽사리 부서졌다. 확신할 수 없었던 혹은 확신을 주지 못한 메마른 시간 속에서도 꽃들은 ..
비산(飛散)하기 전의 민들레 꽃씨 같은 불안한 평화가 이곳에 있어요.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서 어떤 불씨가 ‘이미’이고, 또 어떤 불길이 ‘아직’인지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어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럼에 불구하고, 보이는 상처가 보이지 않는 상처를 위로하며 이렇듯 ..
얼굴을 가린 시간들이 게으름을 가장하며 빠르게 흘러갔다. 고통은 폭죽처럼 우리의 몸속에서 수시로 폭발했고, 미래처럼 불투명한 짙은 먼지가 뿌옇게 몸속을 뚫고 나왔다. 지극히 구체적인 고통 앞에서 희망은 낙첨된 복권처럼 부질없었다. 입 밖으로 고통을 말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
오늘 다시 하나의 기억이 나를 떠났다. 내 삶 속에서 있었으나 나로부터 자유로워진 특정한 시간과 특정한 공간, 그리고 그때 그곳에서 나와 함께 한 사람들, 그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은 이제 내 몫이 아니다. 시간이 몫이고 그 시간 속에 있던 그들의 몫이다. '우리'의 시간과 '그들'의 기억..
가끔 왼쪽 어깨가 시리거나 생생한 꿈의 서슬에 놀라 잠이 깨곤 해요. 그때마다 칫솔질 하다가 잇몸을 건드리듯 갑자기 몰려온 격절감은 명치끝을 뻐근하게 만들곤 하지요. 꿈과 현실은 다르잖아요. 그러나 ‘아직’과 ‘이미’의 경계에서 견딜 수 없는 현기를 느끼면서도 '이 순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