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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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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 전후, 너무도 힘들게 몇 개의 고비를 넘었다. 모멸과 위악의 시간은 생각보다 견고했다. 혼자 힘으로 넘은 건 아니다. 운(運)과 우연, 타인의 도움이 컸다. 희한하게 종종 좋은 운이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내게 왔다. 그때마다 나는 그것을 종교적으로 해석했다. 이를테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야훼 이레’, 즉, ‘하나님께서 미리 알고 예비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희미했던 믿음의 불이 잠깐 환해졌다. 그럴 때는 내가 사랑하던 주변 사람들조차 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자(使者)들로 보였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여전히 믿고 있지만, 이후로도 여러 번 나는 예의 그 ‘야훼이레’를 경험했다. 그때마다 ‘고마운 일이지만 왜 나 같은 사람에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보다 훨씬 성실한 사람들이 쓰러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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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지 않는 날이어서 내 방식대로 하루를 소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보름을 챙기지도 못했고, 큰누나가 감기에 걸려 한동안 문밖출입을 안 한 탓에 형제들끼리 만난 지 오래되었다며, 오후에 누나들이 청국장과 차돌박이 서너 팩을 사 들고 집에 왔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그때 막 한숨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여서 그녀들의 방문이 약간 귀찮았다. 게다가 노크하긴 했지만 똑똑 두 번 두드린 후 내 방문을 벌컥 열고서는 "동생, 고기 사 왔어. 같이 저녁 먹자"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다행히 잠 기운이 완전히 달아난 게 아니어서 얼른 이불을 끌어당기며 "난 알아서 먹을 테니 누나들끼리 맛있게 먹어요" 하고 돌아누웠다. "먹을 때 같이 먹자"라고 한번 더 권했지만, 내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지금은 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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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행복한가? 음……, 물론 행복했지. 잠깐 ‘했지’라고? 이렇게 말하면 마치 지금은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들리잖아. 그건 사실이 아니야. 행복의 조건이 뭐냐에 따라서 대답은 달라지겠지만, 한 시절이 절대적으로 행복하거나 불행할 수는 없어. 과거가 행복했다면 지금보다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는 것과 사랑하는 엄마가 곁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사랑에 관한 대책 없는 열정이 그때는 있었다는 거야. 속맘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품고 상상하기만 해도 행복했던 시절이었으니까. 물론 돌아갈 수는 없지. 갑자기 쓸쓸해지네. 사실 나는 과거든 현재든 나를 둘러싼 상황과, 그 상황을 조성한 세상이 시비 걸지만 않으면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을 거야. 근데 과거든 현재든 늘 세상과 사람이 나를 그냥 내버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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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필요하다. 하루를 꾸려가는 방식에서부터 (가족을 포함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식습관(반찬의 간, 면류 취향 등)이나 음주와 수면 방식(기상과 취침 시간 포함), SNS, 운동, 반찬의 간 등 모든 면에서! 다만 한 가지, 나쁜 습관이어서 (좋게) 바꾸거나 버리고 싶은 것도 있지만, 운동처럼 딱히 나쁘지는 않아도 재미없어서 (삶의 활기를 위해) 변화를 주고 싶은 습관들도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운동들은 너무 단조롭다. 그런데 이 모든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라든가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삶의 본질적인 물음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건, 사람, 사물에 관한 틀에 박힌 생각을 변화시키는 게 무엇보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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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혁재와 은준을 만나 제법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 일단 내가 퇴근해서 도착했을 때는 이미 둘이 막걸리를 다섯 병이나 마신 상태였다. 물론 둘 다 주량들이 세서 그 정도로는 취하진 않았다. 늘 가는 단골 포장마차에는 오늘따라 먹을 만한 안주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바깥양반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와야 해산물을 가져와 파는 곳인데 오늘은 바람이 세서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회로 먹을 수 있는 안주는 없었고 마른 해물과 매운탕거리들만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가오리찜을 먹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무척 담백하고 맛있었다. 회가 먹고 싶었으나 가오리찜과 시금칫국도 안주로서는 괜찮았다. 하지만 혁재가 어머니 저녁을 챙겨줘야 해서 일단 6시에 그 집을 나와 (혁재는 집에 가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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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인천 민주화센터 자문위원회 회의에 다녀왔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여는 회의라서 그런지 평소와는 다르게 자문위원 10명이 모두 참석했다. 24년도 사업 결과 보고와 신년에 새로 추가된 사업 계획을 심의했다. 확실히 사람이 많다 보니 의견도 많았다. 의견 중에서 방통대 유 교수가 제안한 장노년층 민주 인권 교육에 관해 크게 공감했다. 은퇴 후 현직에서 물러난 60대들은 갑작스러운 무직 생활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고, 골프나 음주, 등산 등 단순 취미생활만으로 자신의 남을 삶을 소진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많다. 나야 현재도 일하고 있고 나의 ‘주특기’ 자체가 문학과 예술이기에 특별히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본 적은 없지만, 고위공직자 출신이거나 대기업 임원이었던 내 친구들은 한결같이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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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 정월 대보름이었지만 아침부터 눈발이 날렸다. 휴대전화에도 '대설주의보' 안전문자가 떴다. '도대체 얼마나 오려고' 하는 마음으로 창문을 여니 실제로 눈송이들이 펄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에는 드문드문 눈이 쌓여 있었지만 하늘의 색깔이나 눈송이의 크기를 고려할 때 대설이 될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안전과 관련한 문자는 백 번 너스레를 떨어도 지나친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열 번의 예보 중 아홉 번이 틀려도 남은 한 번의 예보가 치명적인 재해를 막을 수 있게 해 주었다면 예보의 존재 의의는 확실한 것이다) 그저 빙판길 운전이나 낙상 조심하라는 문자면 됐을 텐데, 대설주의보를 내린 건 억지스러워 보였다. 아, 물론 인천 말고 다른 지역에서는 예보처럼 진짜 대설이 내렸는지 알 수 없다. 아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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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현 시인의 시집 『바람은 너를 세워 놓고 휘파람』(파란, 2024)을 읽고 난 후의 (지극히 주관적인) 제 느낌은 ‘조금 비켜서서 세상에 말 걸기’와 ‘나는 당신과 내가 무척 닮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랑하고 연민합니다’였습니다. '조금 비켜서서'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고 연민하는 이유는 수줍기 때문일 수도 있고, 겁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고, 순수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그 모든 것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사춘기 시절 짝사랑 상대를 대하는 소녀(소년)처럼 누구보다 절실하고 진지한 마음이지만 대놓고 고백하지는 못하고 일기장에 그 사랑을 소중하게 기록하는 애틋한 마음 같은, 그런 시들. 나는 황정현 시인의 시들을 '그렇게' 읽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비롯한 현실의 안타까운 죽음과 비현실적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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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모 초상이 났을 때, 마음을 보태줘 고맙다며 비서실 주모 비서관이 점심을 샀다. 교육청 부서 회식 때 자주 가는 해남수산에서 주 비서관, 특보 3명, 전 비서실장 박까지 5명이 회 정식을 먹었다. 평소에 비해 과한 수준으로 점심을 먹은 것이다. 다만 오늘따라 홀서빙하는 직원이 한 명밖에 없어서 코스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이 제때 나오지 않아 대접하는 주 비서관을 자주 민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회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정도의 ‘덜걱거림’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생선회는 모두 싱싱했으나 해산물은 다른 때보다 오늘 덜 싱싱했다. 특히 가리비와 멍게가 그랬고, 해삼도 꼬들꼬들함이 덜했다. 오늘 만난 박 실장은 살이 약간 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역시 오늘도 손자 손녀들의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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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제처럼 추웠지만 또 어제보다는 약간 풀린 것 같기도 한 그런 날이었다. 끼니마다 먹는 오이와 깻잎, 고추가 떨어져 오전에 채소 가게 다녀왔다. 간 김에 오이, 고추, 깻잎 외에도 콩나물, 숙주, 청경채, 상추, 알배기 배추 2개, 파래, 두부 3모, 계획에 없던 애호박을 샀는데, 집에 돌아와 짐을 풀다 보니 정작 사려고 했던 무는 깜빡 잊고 못 샀다. 남자 사장이 “한 개 1,500원인데 두 개에 2,000원에 드릴게요.” 하는 품목이 많다 보니 정신없었다. 20,000원 남짓 장을 봤는데도 쇼핑카트가 꽉 찼다. 다만 오이는 작은 거 6개에 3,000원이나 했다. 너무 비쌌다. 사장은 다른 집에서는 5개 포장인데 한 개를 더 넣었다며 생색냈지만, 오늘도 오이 매대 앞에서 살지 말지 한참 망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