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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비번이었으나 출근해서 빈 사무실을 지켰다. 이번 주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주간이라서 교육청과 지원청, 각급 학교에서 추모 행사들이 많다 보니 청사가 다소 썰렁했다. 물론 나는 번잡한 것보다 썰렁한 걸 좋아한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 있으면 오히려 기가 빨리는, 전형적인 내향형 인간들의 특징이다. 이런 사람이 사랑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가끔 나 자신에게 의문이 든다. 하긴 둘만 있으면 바랄 게 없긴 하지. 점심때, 구내식당에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사무실에 먹을 건 천지였다. 주로 선키스트 음료와 쌀과자, 비스킷 등 스낵들이었지만, 커피나 오렌지 주스와 함께 대여섯 개를 먹으면 포만감이 느껴진다. 오늘은 7~8개를 먹었다. 쌀과자와 쿠키가 작은 크기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점심을 ..

멍청한 통(統)을 권좌에서 끌어내렸지만, 그가 통이었던 시절에 망가뜨려 놓은 사회 제반의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범죄를 저질러 쫓겨난 인간이 마치 억울하게 희생당한 순교자 코스프레를 하며 국론을 분열하고 법질서를 교란하고 있다. 재구속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사방에서 폭로되고 있는 그와 그의 부인인 ‘용산 달기’의 엽기적인 행각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민생은 팽개친 채 혹세무민과 떠내려가는 권력에 기대 정치생명을 연장해 보려는 구차한 행태들을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사이비 목사가 언제부터 국민의힘(여당) 정치인들의 멘토가 되었단 말인가? 그 알량한 표를 위한 지원을 구걸하고 국민을 개나 돼지로 취급하는 볼썽사나운 작태를 연출하는 그들은 과연 자정능력이 ..

다시 4월이 찾아왔습니다. 11년이 지났지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생명이 약동하는 봄날의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곳곳에 피어난 꽃들과, 하늘의 새들과, 우리를 스치고 가는 저 바람과, 모든 사물마저 슬픈 표정으로 침묵하거나 수런거리는, 비탄의 시간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지만 11년 전 별이 된 학생들과 일반인 희생자 마흔다섯 분은 우리가 자신들의 죽음을 마냥 슬퍼하며 비탄의 눈물만 흘리기를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날 우리 곁을 떠난 45명의 일반인 희생자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형제자매였고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성실한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경험한 공포와 고통, 그들의 존재와 희생을 우리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그들의 희생을 잊을 수가..

4월 날씨치곤 기온이 낮았다. 대산 하늘은 맑아 가을 하늘 같았다. 점심에 보운 형과 돼지국밥을 먹고 시청 운동장과 주차장 쪽으로 크게 돌며 산책했다. 꽃밭에 가득 올라온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을 만날 때마다 ‘구글 렌즈’로 검색하면서 소녀들처럼 재잘거리며 산책했다. 뒤따라오던 젊은 여직원들이 우릴 보며 미소 지었다. 우리도 그녀들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지난밤의 눈비로 떨어진 벚꽃잎들이 바닥에 붙어 있다 마르면서 날렸다. 떨어진 꽃들 뒤로 새로운 꽃들이 피고 있었다. 오늘 보운 형과 산책하면서 다시금 느낀 거지만, 형은 술 마신 다음날이면 꼭 나에게 “어제 나 실수한 거 없어요?”라고 물어보곤 한다. 사실 음주 당시 나도 취한 생태였거나 내가 보기에 딱히 실수랄 게 없어서, 형이 물어볼 때마다 “아..

오늘은 홀로 사무실을 지켰다. 두 명의 선배는 모두 출장 중. 비는 종일 내리고, 흐르는 물 위를 바람에 떨어진 꽃들은 둥둥 떠다니고, 청사 복도에는 젖은 우산들이 버섯처럼 피어 있었다. 비서실에 들러 카누 커피를 얻었다. 은영 주무관이 환하게 웃으며 "또 필요한 거 없어요?" 하고 물었다. 그 물음에 담긴 호의가 고마웠다. 휴가에서 돌아온 모 주무관도 "4.16 추모제 원고 잘 받았어요" 하며 일어나서 꾸벅 인사했다. 비서실장은 파티션 아래로 고개를 숙인 채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지난주 교육감의 콜럼비아 출장을 수행하고 돌아온 박 비서도 역시 통화 중이었다. 모두가 빗물처럼 부산했다.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혼자 먹었다. 현미밥에 돼지고기 짜장볶음, 샐러드, 백김치, 총각김치, 달걀 게살국, 거봉 ..

4월에는 하늘에 들지 못하고 떠도는 중음신들이 많아서 그런 걸까? 4월의 눈가는 늘 젖어 있다. 어제 세월호 추모문화제가 있던 날, 점심 나절부터 내린 비는 오늘 새벽까지 이어졌다. 우세가 제법 거세기도 했고, 한밤중에는 비가 얼어 진눈깨비로 내렸다. 4월에 만나는 진눈깨비라니, 이것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 비는 잠깐 그쳤다가 종일 오다 말다 했다. 아침에 일어나 속이 쓰려서 라면과 순두부를 넣고 끓여 먹었다. 운동하고 청소한 후, 인터넷 쇼핑으로 포기김치와 갓김치를 주문했다. 오후에는 누나가 탈모 예방에 좋다는 건강보조제와 상추, 깻잎, 풋고추, 방울토마토 등을 사다 주었다.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김치는 너무 쉬어서 돼지고기를 사다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슈퍼에 들렀을 때, 아이스크림과 우유도 함께..

세월호 참사 11주기 추모제는 인천시청 1층 로비에서 진행되었다. 밖에서 진행하다 비가 내려 실내로 들어온 게 아니라 비가 올 거라는 예보에 주최 측에서는 애초부터 시청 현관에 무대를 설치했다. 시작 30분 전쯤 현장에 도착했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큐시트를 손에 들고 분주하게 오가는 은진을 만났다. 이번 행사의 총감독을 맡은 모양이었다. 나를 발견한 은진은 “어, 형, 잘 지냈어요?” 하며 다가와 포옹했다. 작년 여름 만났을 때보다 조금 마른 것 같았다. “정혁이랑 같이 안 왔어?” 하고 내가 묻자 “따로 오긴 했는데, 아마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했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사람들과 인사하고, 참여 프로그램 부스에서 책갈피도 만들고, 만보기로 2분 동안 416걸음을 걷기도 했다. 식이 시작될 때쯤 세월..

날은 따듯했고 미세먼지는 많은 날이었다. 먼지 때문에 산책은 안 했다. 보통 아침을 먹지 않지만, 술 마신 다음 날은 해장을 위해 라면을 먹는다. 오늘 아침에는 라면에 순두부와 깻잎, 양파, 순두부를 넣어 먹었다. 속이 풀리고 기분도 좋아졌다. 운동하고 청소하고 음악 듣다 보니 금방 점심때가 되었다. 점심에는 냉국수를 끓여 먹었다. 소면에 사놓은 냉면 육수를 넣어 먹는 건데, 내가 쓰는 육수는 칠갑 제품이다. 은준은 청수 제품을 강권했는데, 다음에는 청수 냉면을 구매해 볼 생각이다. 오후에는 반바지 차림으로 순댓국집을 다녀왔는데, 전혀 춥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에어컨을 켰다. 저녁 먹고 실내 자전거 위에 앉아 페달을 돌리면서 문득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군. 정말 쏜살같아’..

비가 잠깐 왔으나 이내 그쳤다. 시인의 방에도 봄은 왔는데, 정작 있어야 할 시는 없었다. 시가 없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한때는 내란에 준하는 극단적 정치 상황과 윤의 몰염치한 행보가 내 문학적 게으름의 원인이라고 자기 세뇌했는데, 사실 그건 치사한 변명일 뿐이었다. 그래도 봄은 왔고 꽃은 피었다. 비와 바람이 꽃송이를 떨어뜨려도 연일 꽃들은 팝콘처럼 터졌다. 그리고 아직도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윤은 용산 집무실을 나와 사저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다시 또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긴 했지만, 그래서 더욱 한심하고 코미디 같았다. 마지막까지 팔푼이 짓을 하다니, 그런 점에서는 일관성 있는 사람이다. 저런 팔푼이가 나라를 대표했다니, 국가의 품격은 지금 만신창이가 되었다. 빨리 감옥으로 보내는 게 ..

전날 일찍 잠든 탓에 새벽 2시쯤 잠이 깼다. 꽤 오랜 잔 줄 알았는데, 새벽 두 시라서 당황스러웠다.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을 감상했다. 다소 부드러워지긴 했으나 블랙코미디 속에 담긴 자본주의의 부조리와 현대 사회의 비인간화에 대한 봉준호 감독 특유의 풍자적 비판은 여전했다. 결말은 이전 작품과는 달리 명백하게 행복한 결말! 다만 SF 영화치고는 사건 전개가 다소 늘어지고,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도 너무 많아 조금 산만한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만능과 생명 경시 풍조, 빈부 격차와 계층 간의 갈등, 환경 파괴와 자기 복제 시대의 정체성 문제 등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직면하는 모든 문제를 영화 속에 녹였다. 따라서 관객들의 호불호가 나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