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봄날의 흔한 풍경들 (4-15-화, 맑음) 본문

일상

봄날의 흔한 풍경들 (4-15-화, 맑음)

달빛사랑 2025. 4. 15. 21:14

 

4월 날씨치곤 기온이 낮았다. 대산 하늘은 맑아 가을 하늘 같았다. 점심에 보운 형과 돼지국밥을 먹고 시청 운동장과 주차장 쪽으로 크게 돌며 산책했다. 꽃밭에 가득 올라온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을 만날 때마다 ‘구글 렌즈’로 검색하면서 소녀들처럼 재잘거리며 산책했다. 뒤따라오던 젊은 여직원들이 우릴 보며 미소 지었다. 우리도 그녀들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지난밤의 눈비로 떨어진 벚꽃잎들이 바닥에 붙어 있다 마르면서 날렸다. 떨어진 꽃들 뒤로 새로운 꽃들이 피고 있었다. 

 

오늘 보운 형과 산책하면서 다시금 느낀 거지만, 형은 술 마신 다음날이면 꼭 나에게 “어제 나 실수한 거 없어요?”라고 물어보곤 한다. 사실 음주 당시 나도 취한 생태였거나 내가 보기에 딱히 실수랄 게 없어서, 형이 물어볼 때마다 “아니요, 전혀 없어요”라고 대답하는데, 그러면 형은 “무조건 없다고만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줘요”라며, 내가 마치 형을 배려해서 실수했는데도 그냥 넘어가려 한다고 오해한다. 가끔 '이 형은 주사가 술 마실 당시가 아니라 그 이튿날 나타나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형은 무엇 때문에 전날의 행적에 관해 묻는 걸까? 실수를 확인한 후 행동거지를 조심하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주취 후 나타나는 하나의 증후군일까? 그도 아니면 뭔가 잘못한 것 같긴 한데, 기억은 나지 않아 찜찜해서 그런 걸까? 아마 모두 다일 것이다. 

 

가끔 그 양반이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 혼자 토라질 때가 있긴 하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일어난 가벼운 실수는 술자리에서 풀거나 잊으면 된다. 그걸 일상으로 가져와 계속 생각하며 찜찜해하는 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심각한 실수가 있었다면 형이 물어보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해줬을 것이다. 확실히 소심한 성격은 맞춰주기가 힘이 든다. 나도 꽤 소심한 성격(게다가 A형이다)인데, 형은 나보다 훨씬 소심한 것 같다. 그런 형을 보며 나는 거울 치료 중이다. 그야말로 반면교사인 셈이다.


오후에 고등학생 하나가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주뼛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유를 물으니 고등학교 전학과 관련하여 상담하고 싶다고 했다. 일단 앉으라고 한 후 얘기를 들어보니, 문제가 매우 복잡했다. 즉, 그는 청라에 살고 있으나 학교는 부천의 학력 인정 시설이었다. 그 학생은 학력 인정 시설을 일반고와 동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 본인의 의사만 있으면 언제든지 전학이 가능할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얼마 전 부모님들도 교육청을 방문해 관련 부서에서 그 문제에 관해 상담을 받았던 모양이다. 당연히 담당 부서에서는 난색을 표명했다고 한다.

 

결론이 뻔히 보이는 문제였으나 그 고교생이 아들 같기도 하고, 표정이 너무 절실해 보여, 비서실장을 불러 더 자세히 상담해 주도록 부탁했다. 장시간 상담한 후 비서실장은 명함을 주며 수일 내로 교육부 법령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연락해 주겠다고 했다. 학생의 표정이 들어올 때보다는 많이 환해졌다. 이 학생은 우리가 있는 정책협의실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들어왔다고 했다. 내가 “너 여기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알고 들어왔어?” 하고 물었더니, 그는 수줍게 웃으며 “아니요. '정책협의실'이니 모든 문제를 상담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냥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들어왔어요” 했다.

 

최종적으로 우리의 상담과 조언이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또한 우리가 있는 정책협의실은 그런 학사 문제를 상담하는 곳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학생 민원인의 고민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준 건 사실이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도 읽어야 하고,

불필요한 쇼핑과 음주도 삼가야 하고,

면 요리와 아이스크림 섭취도 줄여야 하고,

품앗이 전시장 방문과 연극 감상도 해야 하고,

정말 할 일도 많고 하지 않아야 일도 많은 4월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