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흔들리는 가을 (9-29-木, 맑음) 본문
흔들림은 사랑이거나 혹은 그리움의 다른 얼굴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거나 마음이 기우는 것을 그리움이거나 사랑 말고 달리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이 가을 당신의 마음은 누구를 향해 흔들리고 있습니까?
비서실장 박은 어제의 숙취로 아침부터 고생했다.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얼굴은 부어 있었다. 3층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부서에서 올라오는 각종 업무 요청 사항을 확인하느라 그는 정말 초인적인 힘으로 하루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다. 몸이 열 개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사명감이 그에게 이토록 가혹한 현실을 견디도록 하는 걸까 잠깐 생각했다. 나는 다만 그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함께 담배를 피워주는 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된다고 그는 종종 내게 말한다. 점심 때, 내 방에 들른 그는 "오늘은 구내 식당 말고 나가서 먹지요. 해장국이나 냉면이나." 하고 말했다. 나 역시 해장국이 먹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어 그와 함께 '양평 해장국'에 들러 장터 국밥을 먹었다. 땀을 연신 흘리며 해장국을 먹고 난 그는 "이제야 속이 좀 풀리네요." 했다. 내 속이 풀린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식당을 나와 쇼핑센터(홈플러스) 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바람이 기분 좋게 살갗을 스쳤다. 한낮에는 여전히 볕이 뜨겁다. 우리가 앉은 벤치 앞으로 걷기를 무척 싫어하는 프렌치 불독과 목줄을 잡고 있는 여성 견주가 지나갔다. 뒤뚱거리는 개의 뒷모습과 완강하게 버티는 녀석을 끌고 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주인 여성의 표정을 보며 박과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견주인 여성도 우릴 보며 웃었다. 잠시 가을 하늘 위로 모종의 정보를 공유한 사람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처에 헬스클럽이 있는지 몸에 붙는 운동복 차림의 여성들이 자주 지나갔다. 모자를 눌러쓰고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든 그녀들의 걸음거리가 무척 경쾌해 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것을 보며 웃음을 짓는 일이 이토록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것은 아마도 서로를 향해 기울어진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 기울기를 확인할 때 서로의 일상은 즐거워진다. 아무것도 아지 않아도 무엇인가가 이루어지는 작은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 엄마를 잃은 상훈이가 삼우제를 마친 오늘 연락해 왔다. 저녁에는 상훈이와 만나 그의 사모곡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엄마를 잃은 마음, 그 황량함과 허전함을 잘 알고 있다. 상훈은 나보다 더 애틋한 엄마와의 서사가 존재하기에 그의 외로움과 상실감은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시간 말고는 약이 없다. 그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은 7시 30분, 이제 청사를 나가 그에게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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