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그리움의 연쇄 반응 (9-26-月, 맑음) 본문
길가의 나무와 익숙한 거리의 풍경, 흐르는 구름과 새벽의 미명(微明), 거실 화초가 떨군 시든 꽃들, 지인이 보낸 산사의 풍경, 펼친 책장 사이에서 발견한 마른 꽃잎, 친구의 부재중 전화 알림, 유행 지난 유행가, 늘 다니는 전철역 출구의 첫 번째 계단, 승강기에 붙은 안내문, 엄마가 사용하던 흰색 컵, 소파 시트의 벨크로 테이프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들, 카페의 문을 열자 포르르 빠져나온 익숙한 커피 향, 새로 발견한 친구의 주름살, 바지 주머니 속의 동전, 앞집 노인의 기침 소리, 곁을 주지 않는 고양이의 하품, 목이 고장 난 선풍기, 밥이 될 때 들리는 밥솥의 소리, 간헐적인 냉장고의 끄르륵 소리, 이름을 알고 있는 크림 빵의 감촉, 빙그레 아이스크림의 친숙한 맛, 라면이 끓기 기다리는 4분간의 정적, 삶은 달걀을 벗길 때, 교회당 첨탑에 걸린 저녁 해, 바다가 보이는 벤치,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의 앙상한 발목, 도수가 맞지 않는 오래전의 안경, 오른손 장지의 굽은 각도, 무릎에 난 상처, 용각산의 매캐한 냄새, 시효 지난 여권의 사진, 방치된 엽서, 엄마의 슬리퍼, 녹슨 메달, 버려진 클립 하나, 팥이 가득한 붕어빵, 산에서 주운 장갑, 숨이 죽은 시트, 어금니 빠진 자리 위를 훑고 가는 혀의 감촉, ‘과꽃, 나뭇잎 배, 반달, 오빠 생각’과 같은 동요들, 식당이나 술집에서 수저를 놓아주던 그녀의 손의 동선…… 그리움을 향한 고독한 질주 혹은 연쇄 반응의 기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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