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제26회 부평 풍물 대축제 (10-1-토, 맑음) 본문
4년 만에 부평대로에서 대면으로 열린 풍물대축제는 그야말로 대성황이었다. 그만큼 시민들의 현장과 대면 축제에 관한 갈망이 컸다는 말일 것이다. 오후에 집을 나선 나는 부평역 앞 메인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부터 둘러보기 위해 부평역을 지나쳐 시장역에서 내려 위쪽으로 걸어올라 갔다. 각각의 무대에서는 가족 동반으로 나온 사람들, 연인들, 행사 관계자들, 공연 팀들이 어우러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인파를 뚫고 걸어가다 만난 행사를 기획한 선후배들은 얼굴이 하나같이 상기되어 있었다. 축제 수석 부위원장인 신 모 선배는 나를 만나자마자 대뜸 "역대 최대 인파가 모였다는 군. 50만 명 정도 족히 될 거야" 하며 뿌듯해 했다. 축제기획단장 찬영이 역시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진행 상황을 체크하다가 나를 만나자 "형, 기사 봤어요. 오늘 장난 아니네요." 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간 부평 풍물 축제는 내용보다는 물량으로 승부하려고 한다, 우천과 같은 돌발 상황에 관한 대처가 부족했다, 너무 인맥 중심으로 끼리끼리 뭉쳐 한다, 현장 예술가보다 공무원의 입김이 세게 작용한다 등등 아쉬운 점이 지적되었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아프리카 돼지 열병과 코로나로 인해 취소되었던 축제를 4년 만에 대면으로 치르게 되었으니 축제기획단장 찬영이의 고민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의 뿌듯해 하는 표정을 보며 나도 내심 흐뭇했다. 부평 풍물축제는 단지 부평 만의 행사가 아니라 인천 시민 모두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축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준비 단계부터 잡음이 나오지 않고 즐거워야 하는 법, 이번 축제는 그런 것 같아서 다행이다.
5시쯤에는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말라 잠시 쉴 겸해서 롯데백화점 가는 골목에 있는 막걸리집 '개코네'에 들러 봤는데, 내 예상대로 인천 문화예술판 고참 멤버들 대부분이 대낮부터 모여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확장 이전한 개코네 2층 주차장에는 야시장처럼 접이식 테이블이 가득 놓여 있었고, 음식을 먹거나 술 마시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를 발견한 선후배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흔들거나 내 이름을 불러 댔다. 풍물 하는 후배 김창호가 입구까지 다가와 나를 맞았고 선배들 테이블에 자리를 마련한 후 술잔을 건넸다. 약간 취한 것 같았다. 수홍 형, 남희 형, 종우 형, 순형 형, 범호 형, 준식 형, 호인수 신부 등등이 눈에 들어왔다. 후배 미경이도 약간 발그레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나는 "아니, 축제 구경 해야지, 이렇게 대낮부터 술 마시면 되겠어요?" 하며 웃었더니, 형들은 이구동성으로 "오전부터 와서 축제 구경하다가 오후에 올라온 거야. 그리고 이런 것도 다 축제에 참가하는 방법인 거야" 하며 잔을 건넸다. 거기서 한 시간쯤 술 마시며 선배들과 이야기하다가 개막식 행사가 시작될 때쯤 다시 메인 무대 쪽으로 갔다. 가는 길에 축사를 하기 위해 참석한 교육감을 만났다. 무척 표정이 밝아 보였다.
정확하게 오후 6시, 구민의 날 행사를 겸한 개막제가 시작되었다. 시장, 구청장, 시의회 부의장, 구의회 회장, 교육감, 지역 국회의원 등등의 길고 지루한 환영사와 축사가 30분쯤 이어졌다. 아마도 시민들 중에는 줄줄이 이어지는 축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교육감의 축사 순서가 그나마 앞 부분에 배치된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시민들이 노골적인 짜증을 내기보다는 축사가 끝날 때마다 큰 박수를 보내줬기 때문이다. 이 규모 있는 행사에는 다양한 팀이 초청되어 공연을 펼쳤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내가 좋아하는 퓨전 국악 팀 '공명'의 공연을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가웠다. 마지막 공연자로 록 그룹 '크라잉 넛'이 나왔을 때는 자리를 뜨는 노인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들은 대부분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고막을 찢을 듯이 포효하는 스피커 역시 무대 앞 부분에 있어서 록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소음도 그런 소음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젊은이들은 방방 뛰며 공연을 즐겼지만. 아무튼!
공연이 끝나고 후배 H에게 연락이 왔다. 분명 공연을 보며 방방 뛰었을 것이다. 둘이 부평을 벗어나 구월동 쪽으로 나와서 생맥주를 마시고 헤어졌다. 오늘 후배는 부스를 운영하느라 피곤했을 것이다. 나 역시 걸어다니느라 무척 피곤했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30분, 막걸리가 묻은 바지를 벗어 세탁기에 넣고 후배 창호가 실수로 엎은 도토리묵 양념이 빨갛게 묻은 신발을 빨아 창가에 기대 놓았다. 오늘밤 축제도, 축제를 준비한 사람들도 모두 무탈하고 편안한 밤이 되길 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천절, 많은 비 내리다 (10-3-月, 폭우) (0) | 2022.10.03 |
---|---|
축제 마지막 날, 빗물처럼 흐르다 (10-2-日, 오후부터 많은 비) (0) | 2022.10.02 |
9월의 밤들과 친절했던 바람을 기억하리 (9-30-金, 맑음) (0) | 2022.09.30 |
흔들리는 가을 (9-29-木, 맑음) (0) | 2022.09.29 |
당신, 괜찮은 거지? 물론 나는 괜찮아 (9-28-水, 맑음) (0) | 2022.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