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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소설가 한강(53)이 한국 작가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동시에 아시아 여성이 노벨상을 받은 건 노벨상 역사 12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소설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서정적 산문”이라고 평하며 노벨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오래전 그녀의 소설 『여수의 사랑』을 읽고 꽤 괜찮은 모교 후배라고 생각은 했으나 이내 잊고 있다가 10여 년이 흐른 후, 『채식주의자』가 문화적 반향을 일으키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다시 그녀의 소설을 읽었다. 그건 뭐랄까, 소설 자체의 매력보다는 (읽기 전이었으니까) 당대의 문화적 이슈에서 멀어지면 지인과의 대화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지극히 속물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읽게 된 것인데, 문제는 그녀의 소..

여름내 작업했던 자서전 발간 사업은 의뢰인과 출판사 간의 이견으로 인해 결국 무산될 것 같다. 의뢰인은 계속 진행하고 싶어 하지만, 다인 윤 대표가 매우 완강하게 작업을 거부하고 있어 진행이 재개될지는 미지수다. 둘 사이에 오고 간 카카오톡 문자를 양쪽으로부터 모두 전해받아 읽고 난 후, 나는 둘 사이의 화해가 더욱 요원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발간 비용에 관한 이견으로 시작됐던 ‘문자 전쟁’은 점점 감정싸움으로 변해 갔고, 결국 의뢰인은 듣기에 따라 인신공격에 해당할 수도 있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했다. 특히 의뢰인의 ‘영세한 출판사’ 운운은 윤 대표의 자존심을 무척 심하게 훼손한 말이었다. 다인은 20년 이상 건실하게 출판 사업을 해온 중견 출판사이고, 그간 국회의원이나 기업인의 자서전, 신..

점심 먹고 운동한 후 2시쯤에 ‘인천평화축제’가 열리는 인천아트플랫폼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살짝 불어 축제를 진행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현장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작년보다 청중이 훨씬 더 많아 보였다. 뭔가 행사도 틀이 잡혀 있었고, 어린이 참가자도 예년보다 많았다. 동분서주하며 행사를 진행하는 민예총 후배들의 표정이 하나 같이 밝았다. 이런 자리 아니면 만나기 힘든 작가회의 후배들, 지역 선후배들, 그리고 자운 누나와 혁재 커플, 홍이와 창호, 용철 형을 비롯한 강화 식구들, 남희 형과 서구 민중의 집 식구들 등등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났다. 5시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교육감도 잠깐 들러 사람들과 인사하고 다른 일정 때문에 ..

이를테면 형제들조차 귀찮아질 때 말이다. 서로를 귀찮게 하려는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형제 사이에 그럴 리가 있겠는가? 오히려 관심이 너무 과해서 귀찮은 거다. 안다. 배부른 소리라는 것을. 하지만 마음이 옹색해졌을 때는 바른 판단을 하기 쉽지 않다. 위로의 말조차 동정으로 들리고, 상대의 웃음조차 위선으로 느껴진다. 말 거는 것도 싫고 마냥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형제 사이도 예외는 아니다. 마음의 병은 그래서 위험한 거다.❙가끔 나는 형제들에게 무척 냉정해진다. 특히 작은누나에게 그렇다. 딱히 누나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것이 아닌데, 누나가 말을 걸면 귀찮게 여긴다. 후배나 지인에게는 싹싹하고 상냥하면서도 오히려 살가워야 할 형제에게 그런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참 못났다. 그래서 누나는 가끔 ..

자서전 의뢰인의 개념 없는 태도로 인해 다인아트 윤 대표의 상처가 깊다. 근무 중에 받은 전화라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윤은 내게 "이 분은 출판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자꾸만 엉뚱한 소리를 해서 미치겠어요" 하며 거의 울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녀의 전화로 나의 오후도 우울해졌다. 퇴근하려다 훈에게 전화했다. 인천집에 오랜만에 들렀다.

종일 흐렸다. 비는 올 듯 올 듯하면서도 내리지 않다가 점심 지나 오후 1시쯤 질금거리는 소나기로 내렸다. 오전 10시 30분쯤, 누나들이 예배 마치고 교회 근처 갈비탕집에서 밥 먹자고 전화했을 때, 나는 우산을 챙겨 들고나갔다. 집을 나서기 전, AI 비서에게 날씨를 물었을 때 오전 11시쯤에 비가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누나는 “흐리기만 하고 비 안 올 거 같은데, 웬 우산? 비도 안 오는데 우산 들고 다니는 거, 늙은 거 티 내는 거래”라며 웃었다. 금방 비가 올 듯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지만, 밥 먹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비는 안 왔다. 가끔 기상청 예보나 AI 비서인 빅스비도 틀릴 때가 있기는 하다. 오늘이 그런 날이려니 했는데, 1시쯤 비가 왔다. 예보를 믿고 빨랫줄에 널려던 소파 커버..

가끔 옛날 생각나서 마음이 푹 가라앉을 때가 있다. 가령 드라마나 영화에서 청춘남녀가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거나 현실의 장벽을 깨부수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왜 그 시절에 저 드라마나 영화 속 젊은이들처럼 내 앞에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물론 그 당시의 나 역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야 내가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영화나 드라마 속 사랑은 본래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실제 나의 사랑과 영화 속 사랑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겠지만, 나이 들면 합리적 사고의 틈을 비집고 자꾸만 말도 안 되는 상상이 꼬리를 잇는다. 아마 늙어가는 것에 대한 ..

어제 일찍 잠을 잤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아침이 상쾌했다. 매트에 누운 상태에서 발끝 부딪치기를 200회 하고, 눈가를 마사지했다. 일어나자마자 공복 혈당을 측정해 보니 생각보다 수치(106)가 높지 않았다. 물론 늘 기준치인 100을 넘지만, 나이를 고려하면 걱정할 만큼 높은 수치는 아니었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매트 커버를 테라스에 나가 탁탁 털어다 놓고 청소기로 매트를 청소했다. 아침 운동을 1시간 하고, 옷장의 후드티들을 모두 빨아 널었다. 티셔츠 하나에서 곰팡이를 발견해서 빨기로 한 건데, 빠는 김에 한 번 이상 입었던 티셔츠들은 모두 빨았다. 그리고 채소가게에 들러 양배추와 콩나물, 숙주, 가지를 샀고, 안쪽 매대에 있던 도토리묵과 두부 2모를 샀다. 가게 가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도 쾌청..

하늘이 열린 날인 개천절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건국을 경축하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인 동시에, 문화민족으로서 새롭게 태어난 것을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 명절이다. 개천절이란 명칭은 1909년 대종교에서 비롯한다. 특정 종교가 언급될 때마다 발끈하는 기독교가 대종교에 의해 시작된 개천절 행사에 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개천절 행사가 처음 시작된 일제강점기에는 이것이 단순한 종교행사에 그친 게 아니라 나라 잃은 국민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애국 애족적 행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까지는 비서실에서 감(監) 님의 개천절 축하 메시지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하곤 했는데, 올해에는 별말이 없는 걸 보면 이전에 써주었던 자료를 참고하려는 모양이다. 아무튼 직장인들에..

아침에 일어나 깜짝 놀랐다.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거실에 나와 실내 온도를 보니 24도였다. 에어컨을 켜고 자지 않았는데도 새벽에 몸이 으스스해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잠결에도 ‘어,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기분 좋게 낯선걸’ 하고 생각했다. 적어도 오늘 아침은 완연한 가을이었다. 충분히 잔 도 아닌데 아침이 상쾌했다. 특히 어젯밤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도 공복혈당 측정값이 생각보다 낮게 나와 기분이 좋았다. 정원의 감나무에 쳐진 거미줄에도 송골송골 이슬이 맺혔더라. 출근길에 만난 근처 문일여고 학생들과 행인들도 모두 후드티를 입었거나 도톰한 가을옷을 입고 있었다. 나처럼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나도 반소매이긴 하지만 겉옷 속에 티 하나를 더 껴입었고 하의도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