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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늙음’과 예술의 관계성에 관한 지극히 주관적인 낙서 본래부터 명사로 사전에 등재된 ‘젊음’과는 달리 ‘늙음’은 ‘늙다’라는 동사 어간 ‘늙’에 명사형 전성어미 ‘음’이 붙어 만들어진 파생명사(전성명사)이다. 즉, 형태로는 명사지만 뿌리는 동사라는 말이다. 젊음과 늙음, 두 단어의 태생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늙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나이를 많이 먹다. 사람의 경우에는 흔히 중년이 지난 상태가 됨을 이른다’, ‘한창때를 지나 쇠퇴하다’ 등이다. 즉 젊음은 일정한 시기나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라면 늙음은 생명 있는 존재의 필연적 과정이자 늙어버린 상태다. 계절로 따지면 가을 겨울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젊음’의 반대말은 ‘늙음’이지만 ‘늙다’의 반대말은 형용사 ‘젊다’가..

새벽에 잠을 설쳤다. 뒤척이다가 5시쯤 다시 잠이 들었으나 깊은 잠은 아니어서 잠결에도 틀어놓은 유튜브 음악 소리가 귀에 들렸다. 깨어 있던 건 분명 아니었다. 꿈을 꾸었으니까. 다만 그 꿈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서 꿈을 꾸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구별할 수 없었다. 꿈속에서 꿈 밖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꿈 밖에서 꿈속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 이건 꿈속이군’ 하고 손을 더듬으면 머리맡에 있던 휴대전화가 손에 잡혔다. 꿈 밖에서 ‘이제 정말 잠이 들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면 돌아가신 엄마가 거실에 앉아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면서도 머리가 무척 무겁다고 느꼈다. 그렇게 가수면 상태로 잠을 자다가 7시 30분쯤 잠에서 깼다. 자리에 누운 채 매트 위에서 발끝 부딪치기 200회를 하고 두 손을 위로..

전형적인 가을날이었다. 구름은 있었으나 자주 얼굴을 내미는 가을 햇살이 좋았다. 특보들 셋이 오랜만에 구내식당에서 점심 먹고 시청 광장에 가서 운동 삼아 산책했다. 얼굴에 내리쬐는 가을볕이 뜨거웠다. 포장 커피를 들고 중앙공원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 들어왔다. 마음 같아선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산책하다 들어오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울리는 미세먼지 경고 울림에 어쩔 수 없이 일찍 들어와야 했다. 청사의 은행잎들도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머잖아 내가 걷는 길마다 노란 은행잎들이 황금 양탄자처럼 깔리기 시작할 것이다. 아름다운 10월도 이제 얼추 다 갔다. 오후에는 5, 6급 계약직 공무원들의 회의 참석 기록과 업무 성과 기록을 제출하라는 국민의힘 시의회의원의 요청이 있어 해당 자료를 준비하느라..

나는 단독주택에서 3번, 아파트에서 2번, 5개의 집에서 얼추 50년을 살았는데, 내가 살던 그 집들은 행복하게도 모두 남향이었다. 심지어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 잠깐 (은밀하게) 거주하던 집조차 반지하였으나 방위는 분명 남향이었다. 그러다가 쉰 살 즈음에 지인에게 사기당해 여러 풍파를 겪은 후, 한동안 자주 이사 다녀야 했다. 그동안 살던 52평 아파트를 떠나 처음으로 이사한 곳은 살던 동네 근처 빌라였는데, 집은 동향이었지만 앞에 큰 건물과 나무들이 볕을 가려 종일 어두컴컴했다. 다행히 2년 후 이사한 집은 평수가 넓진 않았으나 아파트였고, 동북향이어서 계절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볕이 들었다. 이 아파트에서 2년을 살다가 현재의 집으로 이사했다. 현재 내가 사는 집은 동남향의 단독주택 2층..

환절기라서 그런지 10월 중순을 넘어서며 지인들의 부고가 일주일에 두어 개씩 도착한다. 부고를 받았을 때, 나와의 친소(親疏) 관계에 따라 부의(賻儀) 금액과 빈소 방문 여부를 마음속으로 결정한다. 물론 어떤 부고는 마음으로 애도할 뿐 부의도 빈소 방문도 하지 않는다. 대개 내가 속한 단체의 중앙조직에 보내는 부고에 그런 경우가 많다. 회원 조직에서는 각 회원의 경조사를 타 회원들에게 알리는 게 상사(常事)다. 내가 속한 한국작가회의도 마찬가지다. 인천지회야 자주 만나고 회원끼리 서로 알고 있으므로 경조사에 서로 부조하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전국의 모든 회원을 관리하는 본회에서 보내는 부고 중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낸 부고가 대부분이다. 내가 아무리 정이 많은 사람이더라도 본회에 가입한 모든 회원(2..

45년 만에 동네 후배를 만났다. 희한하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얼마 전 후배 은준이 신포동에서 사진작가인 내 친구 임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오늘 만난 후배 광규를 처음 보았던 모양이다. 은준은 며칠 후 "엊그제 술자리에서 형 후배를 만났어요. 나보다는 선배인데, 그분이 형을 잘 안다며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하며 광규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번호를 저장해 놨었는데, 오늘 오전 그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화면에 이름이 떠서 전화를 받자마자 "어, 광규야, 오랜만이다" 하고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와, 형님, 이게 몇 년 만입니까? 저 기억나세요?" 하며 감동하는 눈치였다. 사실 얼굴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내 친구 옥규의 친동생이어서 어릴 때 자주..

모처럼 청명했다. 하지만 아침에는 기온이 쑥 내려가서 외투를 걸쳤는데도 한기가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무실에 나와서도 실내가 썰렁해서 난방기를 켰다. 관공서이다 보니 적정 온도 이상에서는 난방하지 않는다. 난방을 해도 18도 이상으로 온도를 올리지 않는다. 그래서 늘 춥다. 게다가 우리 사무실은 북향이다. 남향인 사무실에는 종일 볕이 따듯하게 들어와 11월 말까지도 (한낮에는) 난방기를 가동하지 않아도 견딜 만하다. 하지만 북향 사무실은 처지가 다르다. 그래서 우리 특보실에는 중앙난방용 라디에이터 말고 개별로 통제할 수 있는 냉난방 겸용 에어컨과 선풍기 난로가 따로 있다. 중앙 냉난방이 가동된다 해도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특보들은 여름 26도, 겨울 18도인 관공서 적정 실내 온도로는 더위와 추위를 ..

혈압약과 고지혈 약이 떨어져 오전에 병원과 약국에 들렀다. 혈압은 이번에도 정상 수치(120-80)가 나왔다. 의사도 “혈압 좋네요” 하며 “지난번과 똑같이 처방해 드릴게요” 했다. 체중이 많이 늘었는데도 정상 수치가 나와서 일단 다행이었다. 진료실을 나올 때 의사는 “다음에 오실 때는 공복에 오세요. 혈액검사 한 번 해보게요” 했다. 그러겠다고 대답했으나 다음 달 즈음에 건강검진을 받을 예정이라서 혈액검사를 한 달 만에 또 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즉, 늘 두 달 치를 처방받아 왔으니, 다음 내원일(來院日)은 12월 22일 즈음인데, 의사 말로는 바로 그날 혈액검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11월에 받게 될 정기검진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검사라면 굳이 비슷한 검사를 한 달 사이에 연이어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

시 읽기 좋은 10월, 늘 삶과 시를 일치시키기 위해 분투 중인 목포의 최기종 선배(『만나자』)와 대전의 김희정 시인(『당산』), 그리고 이번에 첫 시집을 낸 정종숙 시인(『춥게 걸었다』) 등 세 분께서 소중한 시집을 보내주셨습니다.❚그동안 최기종 선배와 김희정 시인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민중의 신산한 삶, 그것을 극복해 온 민중의 생명력을 자신들의 시적 주제로 삼아 왔(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번 시집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두 시인의 문학적 고민과 실천에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특히 흔히 미신이라 치부되는 ‘당산’을 '진정한 어른'이 부재한 이 시대에, 우리가 편히 기댈 수 있는 존재로 형상화해 낸 김희정 시인의 이번 '이야기 시'는 흡사 엄마의 무릎 위에서 듣던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게 읽혔습..

종일 구름이 많고 흐렸으며 기온마저 뚝 떨어져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흐린 날, 이를테면 비를 기대하게 만드는 날이 좋다. 사실 더위 타는 나로서는 며칠 되지 않는 가을날에 대해 호불호를 따질 처지가 아니다. 한마디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까지는 가을의 모든 날을 나는 사랑한다. 인사위원회 회의차 전 비서실장 박이 청에 왔다가 회의가 다소 일찍 끝나서 우리 사무실에 들렀다. 그간의 근황을 묻고 대답하다가 다른 날보다 조금 빠르게(11시 40분쯤) 점심 먹으러 나갔다. 오랜만에 교육청 후문에 있는 두부 전문점 ‘삼만시(옛 정가네순두부)’에 갔는데, 어찌나 손님이 많은지 박 실장과 친한 후배 장학사 현기가 예약하지 않았으면 한참 기다리다 먹을 뻔했다. 나와 보운 형, 박 실장과 현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