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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지척에 봄이 있다. 나도 봄처럼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 김 목사님과 보운 형은 “와, 날이 많이 풀렸네.” 했다. 나는 여전히 바람이 차가워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낀 채였다. 식사하고 나와서는 슬며시 목도리와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서늘한 바람이 목을 통해 등줄기로 스며들었지만, 상쾌했다. 김 목사님은 청사에 도착할 때까지 외투를 벗어 손에 들고 걸었다. 다음 주쯤에는 청사의 나무들이 새순을 내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퇴근해서 지하철 정거장 내려갈 때까지 누군가를 불러내 술 한잔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집에 왔다. 일찍 퇴근한 김에 미용실에 들렀는데,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언젠가 사장으로부터 겨울에는 연료비가 아까워 손님이 없으면 일찍 문을 닫는다는 말..

새벽녘에 많은 꿈을 꾸었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나쁜 꿈은 잠이 깨서도 자꾸만 생각나 맘을 불편하게 하는데 기억에서 지워진 걸 보면 그리 흉하지 않은 개꿈이었던 모양이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지 못하고 30분쯤 미적거리다가 일어났다. 이런 날은 아침인데도 눈꺼풀이 무겁다. 탄수화물 섭취가 많아진 탓일 것이다. 오전에 할 일(이라고 해봐야 청소와 빨래, 운동, 가끔 채소 사러 나갔다 오는 것) 끝내고 점심에는 어제 사 온 닭을 꺼내 백숙을 끓였다. 주일 예배 마치고 혹시 누나들이 들를지 몰라 두 마리를 다 끓였는데, 누나가 오지 않아 저녁때도 백숙을 먹었다. 점심에는 한 마리를 얼추 먹었는데, 저녁에는 도저히 힘들어서 결국 남은 건 팩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했다. 정말이지 백숙만큼 쉽고 간편한 요리가..

요즘 술도 잘 안 마시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다 보니 점점 히키코모리가 돼가는 것 같다. 최소한의 식사와 운동을 하고, SNS로 세상과 소통하고, 영화나 유튜브로 오락을 삼는 폐쇄형 인간이 된 것 같다. 오늘, 산우회 친구들은 계양산에 모여 시산제를 올렸고, 의협심 넘치는 동료들은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으며, 나의 가수 혁재는 내게 연락도 없이 카페 ‘산’에서 산이라는 후배와 양주를 마셨다. 사장인 성식이가 페북에 올려 알게 되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혁재가 외출해도 될 정도로 어머니의 상태가 호전된 듯싶어서 반가웠다. 그게 아니라 어머니의 상태는 지금도 안 좋은데 단지 술 마시고 싶어서 외출한 것이라면 앞으로 그를 무척 한심하게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와의 이별은 그런 방식으로 준비해서는 안 ..

오늘은 동생의 생일이라 형제들이 함께 점심 먹었다. 그냥 넘어가기 아쉽다며 큰누나가 마련한 자리였다. 사실 나는 요즘 모든 게 귀찮아져서 가족들끼리도 부모님 기일 말고는 오늘처럼 모이는 게 부담스럽다. 반면 큰누나는 요즘 들어 부쩍 자잘한 모임들을 만든다. 매형 생전에는 집순이였던 누나가 그런 건 마음이 허전하기 때문이겠지만, 그것 또한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해서 귀찮아도 별다른 불만 없이 모임에 참석하곤 한다. 약속 장소인 버섯 불고기와 샤부샤부 전문 식당은 남동구청 앞이라 걸어서 갔다. 가는 길에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딸기 크림 케이크를 동생에게 선물했다. 동생네 가족은 카이스트 박사과정인 큰 조카만 빼고 세 식구가 다 왔다. 식사가 나오기 전, 지난달에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온 동생 내..

가끔 복권을 산다. 아니 복권이 나를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번번이 복권의 유혹에 속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럴 줄 알았어’ 하고 생각해 구매하지 않았더니 복권은 ‘나를 사는 사람은 꿈을 사는 거야. 일주일간 부푼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잖아?’라며 제법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웠다. 꿈을 돈 주고도 살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성의가 가상해 가끔 다시 복권을 사기 시작했다. 당연히! 내가 ‘산 꿈’은 별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래도 복권의 말대로 잠시나마 마음이 부풀기는 하더라. 정치도 연애도 재미없다. 콘텐츠 장사치가 돼버린 몇몇 시인들의 시집을 들척거리다 그만두었다. 나만큼이나 재미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짐승과 물신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며 나는 그저 판타지나 SF영화에 위로받고 있을 뿐..

비번이었지만 출근했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식물성 멜라토닌을 섭취하기 시작한 후 극단적 불면은 겪고 있지 않다. 여전히 텔레비전을 켜놓고 잠이 들기 때문에 수면의 질은 형편없다. 그래도 꼬박 밤을 새우고 충혈된 눈으로 아침을 맞지는 않는다. 12시쯤 잠자리에 들어 빠르면 5시, 늦으면 6~7시 사이에 잠이 깨니 8시간 숙면은 언감생심이지만 그래도 하루 활동하는 데 지장 없을 정도로 최소한의 수면은 취하고 있는 셈이다. 고마운 일이다. 출근길은 어제만큼 차가웠다. 2월 중하순의 날씨치고는 사나웠다. 예보에 의하면 토요일쯤 되어서야 날이 풀린다고 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만큼도 춥지 않다면 그게 어디 겨울인가? 본래 늦겨울과 이른 봄의 꽃샘추위가 맹렬하다. 본래 밀려서 떠나는 ..

쉰 살 전후, 너무도 힘들게 몇 개의 고비를 넘었다. 모멸과 위악의 시간은 생각보다 견고했다. 혼자 힘으로 넘은 건 아니다. 운(運)과 우연, 타인의 도움이 컸다. 희한하게 종종 좋은 운이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내게 왔다. 그때마다 나는 그것을 종교적으로 해석했다. 이를테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야훼 이레’, 즉, ‘하나님께서 미리 알고 예비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희미했던 믿음의 불이 잠깐 환해졌다. 그럴 때는 내가 사랑하던 주변 사람들조차 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자(使者)들로 보였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여전히 믿고 있지만, 이후로도 여러 번 나는 예의 그 ‘야훼이레’를 경험했다. 그때마다 ‘고마운 일이지만 왜 나 같은 사람에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보다 훨씬 성실한 사람들이 쓰러지거..

출근하지 않는 날이어서 내 방식대로 하루를 소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보름을 챙기지도 못했고, 큰누나가 감기에 걸려 한동안 문밖출입을 안 한 탓에 형제들끼리 만난 지 오래되었다며, 오후에 누나들이 청국장과 차돌박이 서너 팩을 사 들고 집에 왔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그때 막 한숨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여서 그녀들의 방문이 약간 귀찮았다. 게다가 노크하긴 했지만 똑똑 두 번 두드린 후 내 방문을 벌컥 열고서는 "동생, 고기 사 왔어. 같이 저녁 먹자"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다행히 잠 기운이 완전히 달아난 게 아니어서 얼른 이불을 끌어당기며 "난 알아서 먹을 테니 누나들끼리 맛있게 먹어요" 하고 돌아누웠다. "먹을 때 같이 먹자"라고 한번 더 권했지만, 내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지금은 잘래..

난 행복한가? 음……, 물론 행복했지. 잠깐 ‘했지’라고? 이렇게 말하면 마치 지금은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들리잖아. 그건 사실이 아니야. 행복의 조건이 뭐냐에 따라서 대답은 달라지겠지만, 한 시절이 절대적으로 행복하거나 불행할 수는 없어. 과거가 행복했다면 지금보다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는 것과 사랑하는 엄마가 곁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사랑에 관한 대책 없는 열정이 그때는 있었다는 거야. 속맘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품고 상상하기만 해도 행복했던 시절이었으니까. 물론 돌아갈 수는 없지. 갑자기 쓸쓸해지네. 사실 나는 과거든 현재든 나를 둘러싼 상황과, 그 상황을 조성한 세상이 시비 걸지만 않으면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을 거야. 근데 과거든 현재든 늘 세상과 사람이 나를 그냥 내버려 ..

변화가 필요하다. 하루를 꾸려가는 방식에서부터 (가족을 포함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식습관(반찬의 간, 면류 취향 등)이나 음주와 수면 방식(기상과 취침 시간 포함), SNS, 운동, 반찬의 간 등 모든 면에서! 다만 한 가지, 나쁜 습관이어서 (좋게) 바꾸거나 버리고 싶은 것도 있지만, 운동처럼 딱히 나쁘지는 않아도 재미없어서 (삶의 활기를 위해) 변화를 주고 싶은 습관들도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운동들은 너무 단조롭다. 그런데 이 모든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라든가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삶의 본질적인 물음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건, 사람, 사물에 관한 틀에 박힌 생각을 변화시키는 게 무엇보다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