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겨울이 끝나기 전, 반드시! (12-17-화, 흐렸다 맑음) 본문

일상

겨울이 끝나기 전, 반드시! (12-17-화, 흐렸다 맑음)

달빛사랑 2024. 12. 17. 22:48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만만한 날씨였다. 집에서 나오기 전 내복을 입을지 말지 잠깐 고민했다. 거리로 나왔을 때 ‘안 입고 나오길 잘했군’ 하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춥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철 안에서는 잠깐 등에 땀이 났다. 바람은 제법 불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선풍기를 틀어 땀을 식혔다. 그러나 오늘 회의 참석을 위해 청사를 방문한 전 비서실장 박과 함께 점심 먹으러 밖으로 나왔을 때,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깜짝 놀랐다. 바짓단 아래로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후드티와 경량 오리털 잠바를 입은 상체는 견딜 만했다. 문제는 아래였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같이 걷던 보운 형과 박 실장도 두꺼운 옷차림이었지만 몸을 웅크렸다. 내가 이를 부딪치며 “출근할 때보다 확실히 추워졌는데요” 했더니, 옆에 있던 김 목사가 “내일은 영하 8도까지 내려간다네요” 했다. 나는 속으로 ‘이제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려나 보군. 우리가 더욱 견고해지는 시간이야'라고 생각했다.

 

 

점심은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김 목사의 제안대로 단골 식당 '탕가네 생고기 김치찌개'에서 먹었다. 이곳은 두툼한 생돈욕을 접시에 따로 내어준다. 고기의 질과 양을 직접 확인하고 넣어 먹으라는 의도일 것이다. 라면 사리도 무한 리필된다. 예전에는 달걀 프라이를 주었는데, 요즘에는 달걀조림만 주어 아쉽다. 무엇보다 김치맛이 좋다. 좋은 고기에 맛있는 김치, 그러니 김치찌개 맛이 좋을 수밖에. 밥값은 김 목사가 계산했다. 우리가 들어오고 10여 분쯤 지나서 인천시 미술협회 회장이었던 서 모 선배가 어떤 여성과 함께 들어왔는데, 그들은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소주 한 병을 시켜서 반주로 마셨다. 내가 먼저 보고 인사했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자리까지 와서 일행들에게 인사하고 갔다. 춥고 바람 부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김치찌개가 앞에 있다면 소주를 마시는 건 날씨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지극히 당연한 처사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근무만 아니었다면 나도 낮술 한잔하고 싶은 그런 날씨였다. 보운 형과 김 목사는 어제 과음한 탓인지 건더기는 안 먹고 찌개 국물만 연신 떠먹었다. 둘 다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담소했다. 박은 얼마 전 길병원에 들러 뇌경색 상태를 진단하기 위한 MRI 촬영과 혈액 검사를 마쳤다고 한다. 그가 1년 6개월 전에 비서실장을 그만두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뇌경색 증상 때문이었다. 이후 발 빠른 대처와 집중 치료 덕에 많이 완화되어 지금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요즘 다시 (아프기 전처럼)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곤 해 만날 때마다 내가 지청구를 해대곤 한다. 일단 혈색은 무척 좋아 보였다. 눈빛도 초롱초롱해지고 목소리에도 힘이 있었다. 내가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카페에서는 대체로 건강과 가족, 손자 손녀들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끝에서는 우리가 맞이할 마지막 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럴 때는 모두 비감한 표정이 되곤 했다. 나이 탓일 것이다.

 

날은 추워졌지만, 뭔가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찬바람에 귀와 볼은 시려도 눈빛만큼은 형형함을 잃지 않고, 가슴의 격동도 지키고 싶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우리가 이뤄야 할 모종의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작은 힘들이 모이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그 일을 위해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추위는 가끔 우리를 긴장시키고 내면을 강고하게 무장하도록 강제한다. 부조리가 두꺼운 망토를 드리우고, 구축(驅逐)하고 발본해야 할 반민주적 인사들이 횡행하는 현실 속에서는, ‘겨울’은 단순히 계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암울한 해당 현실에 관한 상징이자 비유이다. 그렇다면 봄도 마찬가지일 터다. 겨울이 끝나기 전 저 어둠의 세력들을 몰아내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새봄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