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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다 (12-19-목, 맑음) 본문

일상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다 (12-19-목, 맑음)

달빛사랑 2024. 12. 19. 20:47

 

출근을 위해 옷방에 들어가서 옷을 고를 때, 고민했다. 내복을 입을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결국 입고 나왔다. 내복 착용감은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내복은 멋으로 입는 게 아니라 방한을 위해 입는 옷, 확실히 내복을 입으면 추위를 덜 느낀다. 입어 본 사람은 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다리가 사시나무가 되는 걸 막아준다는 것을. 그래서 추운 겨울, 내복의 효용을 느껴본 사람은 이듬해도 또 그 이듬해도 겨울이 되고 찬바람 불면 내복을 찾게 되는 것이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있게 먹듯

 

점심은 이번 교육청 정기 인사에서 (비서실에서) 만수고등학교로 발령 난 박연수 비서와 함께 먹었다. 그녀는 내가 출근하자마자 내 방으로 와서 만수고 발령 사실을 알려주었다. 엊그제 식당에서 만났을 때 이번 인사이동 때 학교로 가게 되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들을 바 있어서 “축하해”라고 말해주려 했는데, 갑자기 내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말없이 어깨만 다독여줄 수밖에 없었다. ‘학교로 가고 싶다고는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청을 떠나기 싫었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잠시 후 눈물을 훔치며 “학교로 발령 난 건 너무 좋은데, 특보님 얼굴 보니 그냥 눈물이 나오네요. 그간 정말 많이 예뻐해 주셨는데……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에요.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울컥하네요.” 하며 젖은 눈으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 그런 거였어? 나는 또……. 그렇지, 그동안 쌓인 정이 얼마인데…… 나도 아쉽고 서운하네” 하고 나도 웃어주었다. 아들 수현이와 동갑인 그녀는 업무 능력도 좋고 심성이 고와서 그간 딸처럼 생각하며 예뻐했는데, 막상 그녀의 발령 소식을 들으니 나도 서운한 마음이 컸다. 회자정리! 아무쪼록 그녀가 이전한 직장에서 더욱 성장, 발전하길 기원한다.

 

일사불란하게 겨울의 시간이 흐른다. 추위도 계절의 한 속성이라면 추위가 감당해야 하는 대자연 속 제 몫의 역할이 분명 있을 것이다. 사소한 돌멩이, 들꽃, 지는 저녁해가 그리는 서쪽 하늘의 붉은 노을조차도. 예순이 넘으니 세상의 모든 게 소중해 보인다. 세상에 아무 의미 없는 존재는 아무 것도 없다.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저마다의 의미는 있을 것이지만, 그 모든 의미들이 궁극에는 생과 멸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하나의 소실점을 향하여 흘러가는 것 같은 착시를 느끼는 내 60대의 겨울이다. 추위조차 사랑스럽다. 내 남은 인생에서 몇 번의 겨울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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