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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축제 마지막 날, 빗물처럼 흐르다 (10-2-日, 오후부터 많은 비) 본문

일상

축제 마지막 날, 빗물처럼 흐르다 (10-2-日, 오후부터 많은 비)

달빛사랑 2022. 10. 2. 00:58

 

안타깝게도 폐막식은 빗속에서 치르게 되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좀 더 인상적인 축제의 마지막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을 텐데, 무척 아쉬웠다.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들고 폐막식을 끝까지 지켜본 시민들이 경건해 보이기조차 했다. 나는 비가 거세지면서 곧바로 ‘개코네’로 올라갔는데, 역시 오늘도 여기저기 익숙한 얼굴들이 불콰해진 얼굴로 나를 맞았다. 나는 후배 D가 있는 자리에 가서 술을 마셨다. 자리에 앉자마자 동혁이 술이 떨어졌다고 볼멘소리를 하기에 2만 원을 수홍 형에게 건네주고 안주와 막걸리 세 병을 주문했다. 나를 발견한 서너 명의 선배가 내 자리로 와서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분들은 이미 많이 취해 있어서 대화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나를 반겨준 건 고마웠으나 내심 그만 마시고 자리를 떠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9시쯤, 후배 D의 아내가 신포동 ‘흐르는 물’에서 기다린다는 전화를 걸어와, 할 수 없이 둘이서 택시를 타고 신포동으로 향했다. ‘흐르는 물’에 도착했을 때, D의 아내 J와 처제 두 명이 함께 있었고, 사장인 안 모는 전작이 있었는지 게슴츠레한 눈으로 다가와 인사를 했다. 취한 게 분명했지만, 그는 우리가 원하는 노래를 틀어주기 시작했다. 나는 ‘갈 수 없는 고향’을 들었다.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나의 애창곡을 알고 있었기에 알아서 틀어주었다. 도착하고 30분쯤 지났을까 어린 처제들은 D에게 노래방에 가자고 졸라댔고, 나 때문에 곤란해진 D는 “이 근처에는 노래방이 없어” 하며 내 눈치를 봤다. 자기가 굳이 강권해서 나를 데려왔는데, 처제들은 노래방을 가자고 하니 곤란하긴 했을 것이다. 내가 노래방에 따라갈 리는 만무했으니까. 아무튼 뻘쭘해진 건 나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래, 오랜만에 만났으니 간만에 다같이 노래방에 가서 즐겁게 놀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레코드판을 고르고 있는 사장 쪽으로 옮겨 앉았다. 안 사장은 내 앞으로 재떨이를 밀어놓으며 “담배 피워도 돼요. 계봉 씨!” 했다. 고마웠다. 잠시 후, D부부와 처제 두 명은 노래방을 가느라 ‘흐르는 물’을 나갔고, 나도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곧바로 일어났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술 마시다 D의 아내 J가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이었지만, 어쩌겠는가. 과연 택시가 잡힐까 고민하며 거리로 나섰다. 비 내린 신포동 밤길이 너무 아름다워 그나마 황망한 마음이 완화되었다. 여기저기 카페와 바에서 내리는 빗물을 바라보며 술 마시는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밤도 내리는 비로 인해 조금 더 아름다워졌을 게 분명하다. 약간 감상적인 마음으로 택시를 잡기 위해 큰길로 나왔을 때, 아, 감동적인 상황! 그때까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막차가 끊기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도착 3분 전! 택시를 탔다면 2만 원 가까이 요금이 나왔을 테지만, 버스를 타면 1,250원만 내면 된다. 집까지 오는 40분 남짓한 시간, 김민기와 양희은의 노래를 들으며 왔다. 차창 밖으로는 여전히 빗줄기가 거셌다. 신포동 ‘흐르는 물’을 우연찮게 찾았다가 정말 흐르는 물처럼 집까지 흘러왔다. 비가 아니었다면 다소 피곤한 귀갓길이 되었을 텐데, 그리 피곤하거나 짜증스럽지 않았다. 순전히 비 때문이다. 집에 도착할 때쯤 H에게 “저는 오늘 비가 거세질 때쯤 일찍 집에 왔어요.”라고 문자가 왔다. “그랬구나. 오늘도 빗속에서 고생했어. 푹 쉬어”하고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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