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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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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나는 확실히 11월에 관해 선입관이 있는 게 분명해. 이를테면 11월은 가을보다는 겨울에 속한 달 같다는) 따듯했다. 한낮은 기온이 23도까지 올라갔으니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고 해야겠네. 산책하기 좋은 날이었지. 등산족들에게는 정말 좋은 날씨였어. 골프 라운딩하러 간 내 친구들에게도 좋은 날이고. 나 같이 며칠째 집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에게도 기분 좋은 날인 건 분명해. 하늘을 보면서 어디로든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막 솟아났거든. 아니면 대공원 호숫가를 산책하다가 아는 친구나 후배를 불러 소래산 입구의 만의골에 가서 파전에 막걸리라도 마실까도 생각했고. 물론 생각뿐이었어. 여행은 늘 생각뿐이고, 공원 산책도 입고 갈 옷이 없다는 핑계로 생각만 하다가 그만두기 일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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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가을은 완강할 것이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아니 떠날 수 없는 것들은 시간 앞에서 완강하다. 남은 가을이 거리와 들판, 산 중의 푸른 잎들을 노랗고 빨갛게 색칠하고 최후로 대지가 그 색들을 다시 불러 모을 때까지 11월의 입술은 토라진 아이처럼 굳게 다물어져 있을 것이다. 어느 새벽엔가 서리는 11월의 방심을 틈타 하얗게 이곳을 찾을 것이고, 풀풀 눈발 날리며 겨울은 손님처럼 우리 앞에 서게 되겠지. 하지만 여전히 가을은 이곳에 있고, 나는 이제 막 겨울의 척후를 옷자락에 품은 미틈달 11월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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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누나들과 점심 먹고 근처 큰누나댁에 들러 생전 매형이 입던 콤비와 청바지, 티셔츠, 신발 등을 받아왔다. 두어 달 전쯤에도 티와 양말을 잔뜩 받아왔는데 이번에도 커다란 쇼핑백에 가득 들어찰 만큼 많이 받아왔다. 같이 간 작은누나도 큰누나의 신발과 옷들을 받았다. 대개가 구매하고 보니 치수가 맞지 않아 방치했던 신발과 옷들이었다. 누나는 이것저것 옷을 입어보며 “이거 내가 입을게” 하고 골라놓는 나를 보며 “고마워. 매형 옷을 기분 좋게 입어줘서. 다른 사람들은 고인의 옷을 입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너 아니었으면 다 버렸을 거야.” 하며 아득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당연한 게 아니야? 멀쩡한 걸 왜 버려” 하며 웃긴 했지만, 큰누나의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오늘은 어제 가져온 옷과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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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과 예술의 관계성에 관한 지극히 주관적인 낙서 본래부터 명사로 사전에 등재된 ‘젊음’과는 달리 ‘늙음’은 ‘늙다’라는 동사 어간 ‘늙’에 명사형 전성어미 ‘음’이 붙어 만들어진 파생명사(전성명사)이다. 즉, 형태로는 명사지만 뿌리는 동사라는 말이다. 젊음과 늙음, 두 단어의 태생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늙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나이를 많이 먹다. 사람의 경우에는 흔히 중년이 지난 상태가 됨을 이른다’, ‘한창때를 지나 쇠퇴하다’ 등이다. 즉 젊음은 일정한 시기나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라면 늙음은 생명 있는 존재의 필연적 과정이자 늙어버린 상태다. 계절로 따지면 가을 겨울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젊음’의 반대말은 ‘늙음’이지만 ‘늙다’의 반대말은 형용사 ‘젊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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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을 설쳤다. 뒤척이다가 5시쯤 다시 잠이 들었으나 깊은 잠은 아니어서 잠결에도 틀어놓은 유튜브 음악 소리가 귀에 들렸다. 깨어 있던 건 분명 아니었다. 꿈을 꾸었으니까. 다만 그 꿈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서 꿈을 꾸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구별할 수 없었다. 꿈속에서 꿈 밖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꿈 밖에서 꿈속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 이건 꿈속이군’ 하고 손을 더듬으면 머리맡에 있던 휴대전화가 손에 잡혔다. 꿈 밖에서 ‘이제 정말 잠이 들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면 돌아가신 엄마가 거실에 앉아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면서도 머리가 무척 무겁다고 느꼈다. 그렇게 가수면 상태로 잠을 자다가 7시 30분쯤 잠에서 깼다. 자리에 누운 채 매트 위에서 발끝 부딪치기 200회를 하고 두 손을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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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가을날이었다. 구름은 있었으나 자주 얼굴을 내미는 가을 햇살이 좋았다. 특보들 셋이 오랜만에 구내식당에서 점심 먹고 시청 광장에 가서 운동 삼아 산책했다. 얼굴에 내리쬐는 가을볕이 뜨거웠다. 포장 커피를 들고 중앙공원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 들어왔다. 마음 같아선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산책하다 들어오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울리는 미세먼지 경고 울림에 어쩔 수 없이 일찍 들어와야 했다. 청사의 은행잎들도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머잖아 내가 걷는 길마다 노란 은행잎들이 황금 양탄자처럼 깔리기 시작할 것이다. 아름다운 10월도 이제 얼추 다 갔다. 오후에는 5, 6급 계약직 공무원들의 회의 참석 기록과 업무 성과 기록을 제출하라는 국민의힘 시의회의원의 요청이 있어 해당 자료를 준비하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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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독주택에서 3번, 아파트에서 2번, 5개의 집에서 얼추 50년을 살았는데, 내가 살던 그 집들은 행복하게도 모두 남향이었다. 심지어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 잠깐 (은밀하게) 거주하던 집조차 반지하였으나 방위는 분명 남향이었다. 그러다가 쉰 살 즈음에 지인에게 사기당해 여러 풍파를 겪은 후, 한동안 자주 이사 다녀야 했다. 그동안 살던 52평 아파트를 떠나 처음으로 이사한 곳은 살던 동네 근처 빌라였는데, 집은 동향이었지만 앞에 큰 건물과 나무들이 볕을 가려 종일 어두컴컴했다. 다행히 2년 후 이사한 집은 평수가 넓진 않았으나 아파트였고, 동북향이어서 계절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볕이 들었다. 이 아파트에서 2년을 살다가 현재의 집으로 이사했다. 현재 내가 사는 집은 동남향의 단독주택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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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라서 그런지 10월 중순을 넘어서며 지인들의 부고가 일주일에 두어 개씩 도착한다. 부고를 받았을 때, 나와의 친소(親疏) 관계에 따라 부의(賻儀) 금액과 빈소 방문 여부를 마음속으로 결정한다. 물론 어떤 부고는 마음으로 애도할 뿐 부의도 빈소 방문도 하지 않는다. 대개 내가 속한 단체의 중앙조직에 보내는 부고에 그런 경우가 많다. 회원 조직에서는 각 회원의 경조사를 타 회원들에게 알리는 게 상사(常事)다. 내가 속한 한국작가회의도 마찬가지다. 인천지회야 자주 만나고 회원끼리 서로 알고 있으므로 경조사에 서로 부조하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전국의 모든 회원을 관리하는 본회에서 보내는 부고 중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낸 부고가 대부분이다. 내가 아무리 정이 많은 사람이더라도 본회에 가입한 모든 회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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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만에 동네 후배를 만났다. 희한하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얼마 전 후배 은준이 신포동에서 사진작가인 내 친구 임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오늘 만난 후배 광규를 처음 보았던 모양이다. 은준은 며칠 후 "엊그제 술자리에서 형 후배를 만났어요. 나보다는 선배인데, 그분이 형을 잘 안다며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하며 광규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번호를 저장해 놨었는데, 오늘 오전 그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화면에 이름이 떠서 전화를 받자마자 "어, 광규야, 오랜만이다" 하고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와, 형님, 이게 몇 년 만입니까? 저 기억나세요?" 하며 감동하는 눈치였다. 사실 얼굴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내 친구 옥규의 친동생이어서 어릴 때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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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청명했다. 하지만 아침에는 기온이 쑥 내려가서 외투를 걸쳤는데도 한기가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무실에 나와서도 실내가 썰렁해서 난방기를 켰다. 관공서이다 보니 적정 온도 이상에서는 난방하지 않는다. 난방을 해도 18도 이상으로 온도를 올리지 않는다. 그래서 늘 춥다. 게다가 우리 사무실은 북향이다. 남향인 사무실에는 종일 볕이 따듯하게 들어와 11월 말까지도 (한낮에는) 난방기를 가동하지 않아도 견딜 만하다. 하지만 북향 사무실은 처지가 다르다. 그래서 우리 특보실에는 중앙난방용 라디에이터 말고 개별로 통제할 수 있는 냉난방 겸용 에어컨과 선풍기 난로가 따로 있다. 중앙 냉난방이 가동된다 해도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특보들은 여름 26도, 겨울 18도인 관공서 적정 실내 온도로는 더위와 추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