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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남향집에 얽힌 마음 (10-27-일, 흐림) 본문

일상

남향집에 얽힌 마음 (10-27-일, 흐림)

달빛사랑 2024. 10. 27. 23:46

 

나는 단독주택에서 3번, 아파트에서 2번, 5개의 집에서 얼추 50년을 살았는데, 내가 살던 그 집들은 행복하게도 모두 남향이었다. 심지어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 잠깐 (은밀하게) 거주하던 집조차 반지하였으나 방위는 분명 남향이었다. 그러다가 쉰 살 즈음에 지인에게 사기당해 여러 풍파를 겪은 후, 한동안 자주 이사 다녀야 했다.

 

그동안 살던 52평 아파트를 떠나 처음으로 이사한 곳은 살던 동네 근처 빌라였는데, 집은 동향이었지만 앞에 큰 건물과 나무들이 볕을 가려 종일 어두컴컴했다. 다행히 2년 후 이사한 집은 평수가 넓진 않았으나 아파트였고, 동북향이어서 계절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볕이 들었다. 이 아파트에서 2년을 살다가 현재의 집으로 이사했다.

 

현재 내가 사는 집은 동남향의 단독주택 2층이라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계속 볕이 들긴 하는데, 시간에 따라 볕이 머무는 방(房)은 달라진다. 그래도 사계절, 모든 날 볕을 볼 수 있고 서재로 쓰는 방에도 오후에 한 시간쯤 볕이 머물다 간다. 그래서 집이 어둡지는 않다. 게다가 이곳은 내가 원하면 평생을 살 수 있는 집이다. 비록 월세로 살지만 착하고 배려심 많은 주인은 (나와 엄마처럼 착하고 깔끔한 세입자는 본 적이 없다며) 주변 시세보다 무척 싼데도 6년 동안 월세를 한 푼도 올리지 않았다. 아마도 이 집에서 살다가 집을 장만해서 이사한다면 그것이 내 생의 마지막 이사가 될 것이다. 

 

생전 엄마도 이 집을 무척 좋아하셨다. 거실과 옥상에 화초도 키우시고 자주 테라스 나가 해바라기도 하셨다. 하지만 어쨌든 엄마는 셋집 거실에서 주무시다 운명하셨다. 엄마가 이곳에서 소천하셔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외람되게도 남의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시게 한 건 자식인 나에게는 두고두고 남을 회한이자 불효가 아닐 수 없다. 엄마는 마지막까지 나의 건강과 미래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셨을 거다. 그 기도 안에는 내가 외롭게 살지 않게 해 달라는 것과 편안하게 살 집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 분명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생전 엄마에게는 그것들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를 생각하면 고마우면서도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 모자는 하나님 안에서 영혼으로도 연결되어 있다는 걸 나는 믿기에, 앞으로 멋지고 그럴듯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다. 넓진 않아도 깔끔한 집도 장만할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즐겁게 살 것이다. 그게 하늘에 계신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일 테니까. 그리고 집을 장만하게 되면 꼭 남향집을, 그리고 아파트보다는 아담한 단독주택을 장만할 생각이다. 조그만 정원이 있어, 지금도 내가 보살피고 있는 생전 엄마의 화초들을 심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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