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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아침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 흡사 가을날의 아침 같았다. 게다가 요 며칠 공기도 좋아 마스크 없이 다닐 수 있어 더욱 좋다. 이 좋은 날에 내가 아는 사람들은 잘 지내고들 있는지 모르겠네. 자운 누나는 몸이 안 좋다고 하던데 괜찮아지셨나. J 시인은 예상보다 강한 폭발력을 지닌 자신의 시가 불러온 후폭풍을 알고 있을까. 유탄에 맞은 허다한 동료들의 상태는 어떤지도 궁금하네. H는 얼마나 바쁘기에 전화 한 통 없는 거지. 혁재는 잘 지내고 있는 건가? 고교 동창 영만은 아직도 나를 미워하고 있을까? 나 어려울 때 돈을 꿔준 학수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확장 이전한 동생의 학원은 운영이 어떤지 궁금하군. 지난번 내가 잠잘 때 우리 집에 들렀던 큰누나와 매형은, 방 안에서 TV 소리는 들리는데 아무런 인기..

사진작가 서(徐) 아무개와 다인아트 윤 대표가 교육청에 들렀다. 둘 다 콩국수를 매우 좋아한다기에 시청 앞 ‘명인 콩국수’에 가서 콩국수를 먹었다. 올해 들어 처음 먹는 콩국수였다. 명불허전, 역시 맛있었다. 다른 집과는 달리 크림 수프처럼 곱게 갈린 콩국물이 이 집의 특징이다. 작년에 들렀을 때는 가격이 11,000원이었는데, 그새 2천 원이 올라 오늘 계산하는 데 보니 13,000원이었다. 맛은 있지만 가성비를 따질 때는 그리 추천할 만한 집은 아니다. 콩물이 진하고 맛있긴 하지만 국수 한 그릇에 13,000원은 과하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후배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그거에 만족하기로 했다.❚ 식당을 나와서 단골 찻집에 들러 커피와 차를 마셨다. 이 집은 코스별로 다양한 차가 나오는 차 맛집이라서 오래전..

어제 뷔페에서 과식했고, 모래내시장에서는 치킨과 맥주를 먹고 마셨으며, 집에서는 너구리 2개를 끓여 먹은 후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까지 했으니, 열량 폭탄들을 몸속에 들이부은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체중을 쟀더니 하루 사이에 2kg이 늘었다. 비상이다. 6월은 감량에 신경 써야 할 듯하다. 일단 아이스크림을 다시 끊고, 라면과 국수를 줄여야 한다. 술 마시고 해장으로 면을 먹는 오랜 습관을 떨쳐버릴 수 없다면 술 마시는 횟수를 줄여야 한다. 이번 달에 69kg까지 감량하는 게 목표다.❚오후에 장(張)이 전화해 막걸리 마시자고 했다. 거절하기 어려웠던 게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 유(柳) 아무개 화백과 만나기로 했다는 거다. 잠시 망설였으나 감량하기로 결심한 첫날부터 리듬을 깨면 안 될 일이라서 정중하게 거절했..

친한 벗 희열의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전철 안에서 친구 호형과 경인 부부를 만나서 함께 갔다. 송도에 있는 결혼식장 ‘메리빌리아’는 서너 달 전 친구 병설의 딸이 결혼한 곳이어서 낯설지 않았다. 식장에 도착하니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밴댕이 기홍이와 선수, 병설, 영철, 용창, 은종, 현석, 득희, 승길, 찬만 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과 함께 온 아내들은 그녀들끼리 따로 모여 혼주인 희열 부부가 하객들과 인사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호형이 내외와 나, 그리고 몇몇 친구들은 결혼식장에는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뷔페로 내려갔다. 술 마시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호형은 상 위에 소주병을 늘어놨다. 아내들은 입구 쪽에 따로 자리를 잡았다. 모종의 일로 사이가 나빠진 친구 녀석들은 서로 멀찍이 따로 앉..

며칠 전 윤은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했다. 자멸의 길을 스스로 앞당기고 있는 중이다. 불과 재임 2년 동안 민생의 피폐는 말할 것도 없고 국격을 떨어뜨려 국민의 가슴에 울분을 심어준 일이 한두 건이 아니다. 야당은 야당대로 알량한 기득권 사수에 혈안이 되어 있고, 정부와 여당은 '저 지경'이니 국민은 희망 없는 한숨과 분노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에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을까? 비리와 엽기적인 행각이 파도 파도 끝없이 화수분처럼 불거져 나온다. ❚5월은 정말 숨 가쁘게 보냈다. 화가 나서 숨 가빴고, 어처구니없어서 숨 가빴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때문에 숨이 가빴다. 가장 아름다운 달 5월을 온통 한숨과 분노로 보낸 것 같다. 게다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지만, 오..

후배 J가 새로운 시집을 냈다. 그런데 시집에 실린 한 편의 시가 걷잡을 수 없는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긍정적인 파란이면 좋았겠지만, 누군가가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파란이라서 주변의 문우들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J는 앞서 말한 그 '한 편의 시'를 통해 사후 미투(Me Too)를 한 것이다. 그 대상은 문단, 특히 인천 문단의 문우들이라면 몇 구절만 읽어봐도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는 유명 시인이다. 18년 전, 그가 뇌경색으로 우리 곁을 떠났을 때, 동료들은 그를 기리며 부평의 한 공원에 그의 시비를 세웠으며, 몇 년 후에는 그의 문학상을 만들었다. 게다가 그는 열사로 추대되어 매년 열사추모제 때면 기억 속에서 불현듯 호명된다. 나 역시 생전의 그와 얽힌 추억이 많은 사이였고, 화..

세탁기가 멈췄다. 전원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서비스센터에 전화했더니 이번 주 금요일에나 기사가 방문할 수 있다고 했다. 탈수 과정에서 전원이 나가 자동으로 잠긴 뚜껑도 열 수 없어 이불과 옷가지들은 세탁기 안에 방치된 채 이틀을 지내야 한다. 사람도 사물도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다 보면 이곳저곳 고장 나게 마련이다. 나보다 훨씬 분주하게 살아온 세탁기가 이제까지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게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세탁기가 멈췄을 때, 세탁기 자제에게는 별로 짜증 나지 않았다. 오히려 빨래가 담긴 상태로 멈춘 세탁기를 이틀 후에나 고쳐줄 수 있다는 더딘 서비스에 짜증 났을 뿐이다. 하긴 요즘 에어컨 서비스 철이기 때문에 서비스 신청이 몰려들 때이긴 하다. 아무튼 무료 서비스 기간이 지나서 출장비와 ..

오랜만에 박 비서실장을 만나 점심 먹었다. 전날 과음한 보운 형이 자꾸만 콩국수를 먹고 싶다고 해서 그러기로 했는데 얘기하고 운전하다 식당을 지나쳤다. 그때 내가 “형, 해장하고 싶어 그러는 거죠? 그렇다면 메밀냉면 어때요?” 했더니, 박 실장도 보운 형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번 후배들과 들렀던 우리 집 근처의 메밀냉면 전문점 ‘미소야’를 찾아갔다. 손님이 많아 번호표를 뽑고 잠시 기다렸다. 10분쯤 기다리니 자리가 났다. 두 사람 모두 맛을 보더니 무척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곳으로 안내한 나도 뿌듯했다. 보운 형은 자신의 면 절반쯤을 나에게 주고 큰 그릇의 육수가 바닥이 날 때까지 자신은 시원한 육수만 마셨다. 식당을 나와 우리 집 앞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청사로 돌아왔다. 카페에서 차..

어제 비 내린 후라서 그런지 하늘도 사물도 깨끗하다. 석천사거리역 4번 출구 나와서 만난 데이지꽃.웃는 듯한 꽃들이 너무 예뻐서 한참 바라봤다.새로운 한 주는 기분 좋은 일로만 가득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오전부터 전화해서 술 먹자고 채근하던 은준은 오후에도 또 전화해 막걸리 타령을 늘어놨다. 사실 점심때부터 비가 내려 나도 술 생각이 솔솔 났지만 억지로 참고 있었는데...... 웬수 같은 놈. 결국 녀석의 성화를 못 이기고 나가서 캔 맥주 6개를 사들고 들어왔다. 맥주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맥주를 사 온 이유는, 다른 술을 마시면 발동이 걸려 많이 마시게 되지만, 맥주는 한 캔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맥주 또한 엄연한 술이다 보니 알코올에 대한 욕망을 약간이나마 희석해 주기 때문이다. 캔 하나를 비우고 낮잠을 자려할 때 은준은 또 전화해서 수봉산에서 만나자거나 제물포 백령냉면에서 만나자고 성화였다. 나는 할 수 없이 "그곳까지는 못 가고 우리 동네로 오면 막걸리 한잔할게" 하고 절충안을 제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