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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다시 불면이 찾아왔다. 엄밀히 말하면 잠을 아예 못 자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취침 시간인 밤 9시에서 12시 사이에 잠을 못 자는 것이니, '수면 리듬 왜곡 증후군'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물론 낮잠을 자기도 하지만, 그전에는 낮잠 자도 11시만 넘으면 꾸벅꾸벅 졸았는데, 최근에는 자정 지나 새벽까지도 잠들지 못한다. 그렇다고 딱히 피곤하지도 않다. 체력이 좋아진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일단 술에 취해 잠드는 일이 잦아진 탓도 있고, 낮에 잠을 너무 '맛있게' 오래 자는 탓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절대 수면량(시간)은 보통사람과 비슷하지만, 자야 할 시간에 효율적으로 잠자는 다른 사람과 달리 나는 조각잠을 자는 것이다. 운동을 더욱 강도 높게 하든가, 집에 있..

일어났다가 또 잤다. 최종적으로 ‘벌떡’ 일어나 매트리스를 정리한 건 10시, 테라스에 나가 이불과 요 커버를 탈탈 털고 청소기를 돌렸다. 자는 사이 작은누나가 가져다 놓은 브리츠 소형 오디오를 책상에 설치하고 음악을 들었다. 덩치는 작았지만, 소리가 짱짱했다. CD는 PC에 연결해서 듣는 것보다 훨씬 음질이 좋았다. 오래간만에 음악감상 길게 했다.❚늦게 일어난 탓에 오늘은 낮잠도 자지 않았다. 웬일인지 피곤하지도 않았다. 하긴 어제 12시 조금 안 돼 잠이 들어서 오늘 아침 7시에 눈 떴다가는 이내 다시 자서 10시에 일어났으니, 잠깐 설친 시간 빼더라도 얼추 9시간은 잔 거다. 피곤할 리가 없는 거지. 어제 냉면과 라면, 저녁에는 목살까지 먹었으므로 오늘은 열량 조절을 위해 점심과 저녁 모두 채소를 ..

종일 많은 비가 내렸다. 예보에 의하면 아랫녘에서 시작된 장마가 북상 중이라고 한다. 인천 및 수도권에 장마전선이 닿기까지는 일주일쯤 걸릴 듯하다. 다음 주 목요일에서 토요일 사이에는 아마 이곳에도 비가 닿겠지. 내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시간이다. 나는 머리를 깎아야겠어. 단정한 모습으로 비를 만나고 싶어. 큰 우산을 쓰고 찰방찰방 빗길을 걸어야지. 화가인 재석이의 그림책 작업을 위해 화요일에는 계산동에 가야 하고, 수요일에는 시민연대 일일주점에 매상 올려주러 가야 해. 다음 주도 무척 바쁘군. 하지만 목요일에는 많은 비가 올 것 같군. 그래서 즐겁다.저녁에는 누나들과 큰 매형을 만나 함께 식사했다. 작은누나가 조직한 식사 자리다. 오디오 전문가인 큰 매형이 작은누나의 낡은 오디오 시스템을 턴테이블부터 ..

저녁에는 인천 노동문화일꾼들의 구술집 출간기념회에 참석했다. 행사가 열리는 민예총 복합문화공간 해시에 들렀을 때,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이를테면 은진, 창곤, 혜영, 철원, 병걸, 승미, 귀영, 선주, 기수, 진현, 광애, 봉호 형 등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들거나 다가와 포옹했다. 특히 서울 사는 후배 은진이는 그녀의 엄마 빈소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으니 얼추 6년은 된 것 같다. 20살 시절에 만나서 이제 60대가 되었으니, 은진이와는 40년을 만나온 셈이다. 늘 치열하면서도 찌들지 않고 여유롭게 미소 짓는 그녀를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오늘 보니 너무 말랐더라. 학생 때부터 마르긴 했지만, 안쓰러웠다.❚이번 아카이브 사업(인터뷰와 구술 기록, 책 발간 등)을 기획한 건 항상 부지..

해마다 이맘때면 비를 기다린다.한 곳에 오래 붙박여 살지 못해이 마을에 내린 나의 뿌리는 깊지 않고이곳의 시간은 떠날 때를 알려준 적 없으나가진 것 없어 둥둥 떠다니기에 익숙한 나의 몸은의식하지 않아도 비의 때만큼은 정확히 안다.비의 때가 되었음을 몸이 기억한다.온몸의 세포는 식물의 물관처럼 긴장하고언제라도 빗물에 녹아들 수 있도록 풀어진다.내가 푸딩처럼 말랑말랑 해지는 때내가 가장 유순하고 너그러워지는 때.종일 집에서 먹고 자고 운동하고 유튜브 보며 지낸 하루.

어제 퇴근 무렵 문학동에 있는 혁재와 연락이 되어 신포동 ‘굴따세’에서 만났다. 갈매기에서 보려다가 어차피 혁재는 만석동 작업실에서 잘 것이고, 오랜만에 자운 누나도 볼 겸해서 신포동에서 보기로 한 것이다. ‘굴따세’는 굴보쌈으로 유명한 식당이지만, 굴이 나오지 않는 철이라서 홍어삼합 대(大) 자를 시켜서 막걸리와 함께 먹었다. 양도, 맛도 만족스러웠다. 가격(53,000원)이 다소 있는 편이었지만, 양을 생각하면 비싼 게 아니었다. 셋이 먹기에 푸짐했다. 막걸리는 6병을 마셨으니 한 사람당 2병씩 마신 셈이다. 안주가 좋아서 그런지 취하지도 않았다. 앞으로 신포동에서 술 마실 일이 있으면 자주 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계산할 생각하고 안주를 고른 건데, 내가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미안하게도..

한 달 만에 치과를 방문했다. 임플란트 시술 이후 불편한 점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날이다.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다. 시술 이전, 편하게 음식을 씹을 수 있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어금니를 식립 했으니 불편한 점보다는 편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원장에게도 그런 말을 했더니, 원장은 웃었다. 하지만 음식을 씹을 때, 오른쪽 어금니가 왼쪽보다 약간 올라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거나, 아랫니와 윗니가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문제, 시술받았던 레진이 떨어진 것 등에 관해서는 모두 말했다. 원장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모든 불편 사항을 해결해 주었다. 이제 3개월 후에 치과에 들르면 된다.최근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아트센터 나비의 노소영 관장 부부의 ..

쉬는 날이라서 아침 운동 마치기 전까지 집에서 쉴 생각이었는데, 샤워하고 났더니 마음이 바뀌었다. 출근했더니, 노동특보 보운 형은 외근 중이었고 김 목사만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쉬는 날인데) 웬일이에요?” 했다. 설명하기 귀찮아서 “집이 너무 더워서요” 했더니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점심때에도 보운 형은 들어오지 않았고, 김 목사는 약속 있다며 외출해서 결국 비서실 김 사무관에게 (밥 같이 먹자고) 연락했는데, 그 역시 회의 중이었다. 혼자 식당 가기 싫어서 집에서 먹고 왔다. 냉면을 먹으려다가 누나가 김치찌개를 끓여놓아서 밥 먹고 나왔다. ❚ 6월 중순 날씨치고는 생각보다 덥지 않은 날씨였다. 사실 오후 땡볕은 경험하지 못한 터라서 한낮의 더위가 얼마나 맹렬한지 아직은 ..

나만 한가하고 모두가 분주하다. 글 쓰는 후배들은 열심히 창작하고 부지런히 시집을 출간하고, 대지의 벌레와 풀과 나무와 하늘을 나는 새들과, 공장의 기계와 거리의 사람들과 하찮은 저 구름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 모리배들조차 숨 가쁘게 분주한데 나만 너무도 한가하다. 죄스럽게 한가하고 민망하게 한가하다. 일이 없어 한가한 게 아니라 고민 없어 한가하다. 고민이 없을 리 없는 삶인데 고민하지 않는 건 삶을 대충, 건성건성 사는 것이거나 해결할 수 없는 고민, 이미 질곡이 된 고민이 무서워 회피하는 것이겠지. 그건 명백한 게으름이다. 아니면 질긴 무기력증에 중독되었거나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겠지. 달콤한 유혹은 대가가 크다. 유혹에 빠져 달콤함을 탐닉할 때, 나의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분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땅이 젖지 않았다면 비 왔는지 몰랐을 거다. 그래서 그랬을까, 새벽녘에 서늘한 바람이 기분 좋게 방안을 휘돌았던 걸 기억한다. 예상했던 대로 아침에 속이 더부룩했다. 냉면을 먹을까 하다가 각종 채소(청경채, 버섯, 숙주, 양파, 파, 마늘)와 계란을 넣고 곰탕면을 끓여 먹었다. 속이 편해졌다. 점심에는 비빔국수를 먹었다. 면으로 두 끼를 해결한 셈이다. 탄수화물을 과도하게 먹었음에도 집에 있던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술 마신 다음 날의 이런 루틴은 아주 고약하다. 고약한 걸 알면서도 중독자처럼 끊어내질 못한다. 먹을까 말까 갈등할 때는 수만 가지의 변명 거리가 막 떠오른다. 할 수 없이 평소보다 자전거 운동 시간을 한 시간 늘렸다. 섭취한 열량에 비하면 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