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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오전 9시쯤 기온은 이미 30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역시나 오전 10시쯤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테라스 화초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안쓰러워서 물을 흠뻑 뿌려주었다. 집 앞 아스팔트 도로 위에 물을 뿌리면 ‘푸시식!’ 하고 김이 날 것 같았다. 점심에는 어제 장 봐온 콩국으로 콩국수를 해 먹었다. 식사 후, 1시간 동안 자전거 타고, 아버지 25주기 추모예배 자료를 준비하고 있을 때, 은준이 전화했다. 오랜만에 갈매기에서 막걸리 한잔하자며 살살 꼬드겼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의 꼬드김은 무척 집요하다. 내가 거절할 것을 대비한 멘트까지 단계별로 준비해 놓을 정도다. 사실 요즘 체중 조절 때문에 가급적 1주 1회 음주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마음먹자마자 은준이 전화한 것이다. 결국 6시쯤 은준을 만나러 갈매..

연일 폭염 관련한 안전문자가 도착하고 있다. 슈퍼에 가기 위해 잠깐 외출했다 돌아와도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안전문자가 아니더라도 밖에 나가는 게 겁 날 정도로 푹푹 찌는 날씨지만, 그래도 채소가 떨어져 어쩔 수 없이 핸드 카트를 끌고 단골 가게에 들렀는데, 오 마이 갓!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도착했더니 휴가 중이란다. 할 수 없이 주공아파트 상가 다드림할인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확실히 단골 채소 가게에 비해 모든 게 비쌌다. 싱싱하지 않은 청경채가 300원이나 비쌌다. 단골 가게에 비해 양이 적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오이와 깻잎, 청경채, 부추, 양배추, 숙주, 콩나물, 가지, 콩국물, 두부, 어묵, 순대, 곰탕국물 팩 5개 등을 구매했다. 점심에는 곰탕 국물에 순대를 잘라 넣어 순댓국을..

8월이 시작되었다. 여름의 한복판, 나에게는 통과하기 쉽지 않은 폭염(暴炎)의 계절이지만, 그러나 8월은 또 내가 태어난 달이기도 하고 아버지가 하늘에 드신(入) 달이기도 하다. 8월 3일, 그 혹독한 더위 속에서 나를 낳으신 엄마도 그해 여름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래서 자신은 1월 중에서도 가장 추운 날, 하늘에 드신 걸까? 이제 며칠 후 나는 형제들과 함께 가족 묘역을 찾아 아버지께 인사하고 올 예정이다. 올 8월 8일이 아버지 돌아가신 지 25주기 되는 날이다. 참 세월도 빠르다. 생전 생신은 음력 7월 8일이었으니, 그때도 한여름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 생신에 마음을 담은 선물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기억이 하얀 것은, 설령 했다 해도 ..

술 한잔하고 와서 그랬던 걸까, 지난밤에 숙면했다. 아침, 유튜브 인문학 강좌 소리에 잠이 깼지만, 이미 충분하게 잠을 잤기 때문인지 피곤하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혈압약을 챙겨 먹고 공복 혈당을 쟀다. 108, 정상치를 벗어났으나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확실히 잠을 많이 자고 나면 혈당 수치가 높지 않다. 이불과 매트 커버를 테라스로 들고나가 탁탁 털었다. 출근하는 사람들 몇몇이 보였다. 단백질을 물에 타서 한 컵 마시고 올림픽 경기 결과 모음 영상을 보면서 실내 자전거를 1시간 탔다. 에어컨을 끄고 운동했더니 금방 온몸에 땀이 났다. 책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오전을 보내다 조금 이른 점심을 먹었다. 쉬는 날이었으나 낮잠을 자게 될까 봐 사무실에 나갔다. 박 비서가 나를 보더니 반색을 하면..

큰누나와 작은누나 모두 코로나에 걸려 며칠간 두 사람은 큰누나 집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먼저 걸린 사람은 작은누나였고, 그녀의 감염 소식에 진단키트 사다가 검사해 본 결과 큰누나도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사실 피곤한 작은누나는 코로나를 핑계로 자기 집에서 쉬려고 하다가 "어차피 나도 걸렸으니 우리 집에 와 줘라" 하는 큰누나의 부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매형 없는 빈 집에서 혼자 지내기가 두려웠을 큰누나에게 코로나 감염은, 흡사 울고 싶을 때 절묘하게 뺨 때려준 격이었다. "언니네 가고 있어." 출근하기 위해 전철역으로 가고 있을 때 작은누나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피곤함이 느껴졌다. 그녀도 심약한 언니를 챙기느라 심신이 많이 지쳐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형제가 ..

오늘도 또 부고가 왔다. 췌장암에 걸려 항암 치료받던 외사촌누나 남편이 잠자다가 운명했다. 이미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지만, 안타깝다. 이 매형도 지난주에 돌아가신 내 큰 매형과 나이가 같다. 한국 나이로 71세, 죽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들이다. 혹독한 여름이다. 가지는 못하고 조의금만 송금했다. 그동안 너무 선택장애를 겪었다. 인정 때문에 하기 싫은 일들을 거절하지 못했다. 상대가 상처받는 게 싫어 나 자신에게 상처 입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 운동하다가 문득 그런 내가 싫고 한심해 보여 마음의 부담으로 자리 잡고 있던 몇 가지 일정을 모두 전화해서 취소하거나 거절했다. 먼저 목요일이 마감인 K일보 칼럼을 이번 달은 건너뛰겠다고 주필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화요일 1시로 예정되어 ..

연세문학회 선배인 김응교 형의 모친께서 소천하셨다. 부고장에 적힌 모친의 연세는 100세, 부고를 대신해서 페이스북에 올린 형의 글에 의하면 임종도 주무시듯 평화롭게 맞으셨다고 한다. 목사의 사모로서 평생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일 것이다. 울 엄마도 그랬으니까. 지극한 기도가 기적처럼 신에 의해 받아들여졌을 때의 그 신비함이란....... 엄마의 지극하고 간절한 기도 속에는 늘 내가 있었다는 건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형 모친의 기도 속에도 형이 늘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식을 위해 헌신해 온 이 땅의 모든 어머니는 하나님이 그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조카는 오늘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해 무탈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에 관해 교인들과 목사님께 감사..

떠난 사람이 의도치 않게 구겨 놓은 일상은 생각보다 쉽게 평소처럼 돌아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해가 뜨고 지고, 가끔 소나기 내렸다. 며칠 입맛이 없었으나 다시 입맛이 돌아왔고, 의지박약을 탓하면서 먹던 라면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정크 푸드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식사 후 운동하고, 책을 읽거나 영상 보는 일도 애초의 루틴을 회복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유튜브 인문학 강좌를 찾아보다가 알고리즘에 뜬 러시아 문학과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요약, 설명하는 영상을 만났고, 우연찮게 율브린너 주연의 영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시청하게 되었다. 그러자 문득 오래전에 완독 못한 이 작품을 올여름에 다시 읽고 싶어졌다..

오늘 2시, 승화원을 찾은 조카는 아버지의 새 보금자리를 구했다며 연락해 왔다. 보금자리 주소는 '인천가족공원 별빛당 3층 31번 중간 5층'이었다. 중간 5층(다섯 번째 칸)이면 높지도 낮지도 않아 가족들이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추모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자리를 얻은 것이다. 하루 늦게 들어가길 잘했다고 매형도 만족할 것 같다. 이제 엄마와 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마다 들를 곳이 한 군데 더 생겼다. 현재 별빛당에는 내 친구들과 친구 부모님도 많이 입주해 있다. 매형은 이곳에서 누나가 자신의 곁으로 갈 때까지 머물다가 누나가 마침내 자신과 만나게 될 때, 온양에 있는 크고 화려한 가족 묘역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매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남편을 만나러 다닐 엄마(나의 누나)를 배려한 조..

6시 30분, 작은누나와 택시 타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밤샘한 조카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식사하고 있었다. 7시에는 만수중앙감리교회 상조회가 빈소에 도착, 담임목사 주재하에 발인예배를 올렸다. 전자피아노 소리에 맞춰 교인들이 부르는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찬송가 소리가 빈소 안에 공명을 만들었다. 7시 30분, 영구차와 유해를 실을 리무진이 도착했다. 여섯 명의 조카 친구들이 관을 리무진으로 운구했다. 운전사는 그 순간 영정과 관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고, 유족들은 큰소리로 오열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목사님이 기도했고, 유족들은 모두 차에 올랐다. 8시 조금 넘어 승화원에 도착한 영구차 안에서 젊은 목사는 '화장 예배'를 집전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승화원 앞 주차장에는 유족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