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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새로운 다짐을 하며 한 해를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덟 번째 달을 보내고 아홉 번째 달을 맞았다. 딱히 이루어지는 건 별로 없어도 새로운 해와 달이 시작될 때면 늘 소망을 담은 몇 가지 다짐을 해왔습니다. 그렇듯 매번 하는 다짐이 밥 먹은 뒤의 트림처럼 하찮게 여겨진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습관처럼 반복되는 다짐이라도 뭔가 새로운 순간, 새롭게 시작하는 해와 달 앞에선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당연히 나는 9월 앞에서 또 다짐을 반복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지출을 줄이고, 술을 덜 마시고, 누군가를 절대 미워하지 않겠다는 그런 다짐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아, 체중은 빼고) 부풀어 보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래서 그리운 ‘그 사람’과의 만남에 부풀고, 책과 영화와 음악..

늘 그렇지만 여름은 숨 가쁘다. 그래도 8월은 저무는 여름의 등줄기가 살짝살짝 보이는 달이어서 애증이 깊은 달이다. 이번 8월은 경제적으로 많이 손해 본 달이고, 체력적으로도 많이 손해 본 달이며, 정신적으로는 서너 가지 위로받은 달이다. 성취한 것도 있고, 곤란한(곤란하기보다는 귀찮은) 몇 가지 숙제를 완수하기도 했다. 인정에 얽매여 늘 개운찮은 마음으로 수행하던 어떤 일은 과감하게 그만두었고 까탈스러운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수필집 윤문 건도 완성해서 출판사에 넘겼다. 그래서 8월을 보내는 마음이 크게 아쉽거나 불편하진 않다. 다만 8월은 내가 태어난 달이고, 아버지가 하늘에 올라가신 달이어서 8월과 헤어질 때는 다른 달보다는 조금 더 애틋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오전에는 작은누나와 함께 큰..

기호일보 주필의 전화를 받고 당분간 충전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서 칼럼을 송고하지 못할 것 같다고 선언한 것 빼고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주필은 적이 당황했고, “에이, 인천의 문필가께서 왜 이러실까?”라며 며칠간 시간을 더 줄 테니 이달 말까지만 보내달라고 사정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얼추 8년의 써온 것 같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주제로 참 많은 글을 써 보냈다. 그 긴 세월 동안 칼럼을 쓰면서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 잡지와 달리 일간 신문의 경우 마감일을 어기면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마감 준수를 엄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권 들어서며 정말 쉬고 싶단 생각이 자주 들었다. 시인인 내가 문화예술에 관한 정서적 글을 쓰기보다는 늘 부도덕한 권력의 전횡과 현실의 부조리..

어제 일이다. 막 안과 검사 마치고 병원 나왔을 때 후배 상훈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은 오랜만에 자신이 한잔 살 테니 신포동 '윤식당'으로 민어 먹으러 가자고 했다. 며칠 전 지인과 들렀을 때, 39,000원짜리 한 접시로 두 사람이 배불리 먹었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대단한 가성비가 아닐 수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름 제철 생선 민어가 그렇게 쌀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후배 자존감을 살려줄 생각으로 이것저것 묻지 않고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약속 장소 근처인 신포시장에 막 들어섰을 때, 상훈에게 전화 왔다. "형, 황당하게도 오늘 정기 휴일이라네요. 아까 서울에서 내려오며 전화했는데 그래서 안 받았나 봐요."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에서 당혹감이 느껴졌다. '뭔 가게가 수요일이 정기 휴일이야' ..

오전에는 작은누나가 오셔서 "언니(큰누나)가 쓸 만하면 갖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래." 하며 매형의 유품인 시계와 팔찌, 목걸이와 안경 등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중 낡은 가죽 팔찌를 제외하면 모두 쓸 만한 것이어서 "그래요. 내가 쓸게요" 하고 물건들을 챙겼다. 멋쟁이였던 매형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시계는 독일제 '앤드류&코' 모델로 30만 원 정도 하는 제품이었고, 목걸리와 팔찌도 은으로 된 제품 하나 빼고는 모두 시장 좌판 위에서 살 수 있을 듯한 저렴한 제품들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목걸이들 대부분은 중국 쇼핑몰 테무에서 하나에 1,500~2,000원 정도로 구매한 것들인데, 그것들과 매형의 목걸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경은 내가 선호하는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독서용 안경으로 쓰면 좋을 것..

술 마시고 잠든 탓에 새벽에 목이 말라 잠깐 잠이 깼다. 다행히 술을 섞어 마시면 나타나던 메슥거림은 없었다.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4시, 평소 같았으면 다시 잠들지 못하고 일어났을 텐데, 숙취 때문인지 이내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일어난 시각은 8시, 창밖이 어두컴컴했다. 날이 흐린 모양이었다. 빅스비에게 '오늘의 날씨'를 물었더니 흐리기만 할 뿐 비 소식은 없었다. 서운하진 않았다. 빅스비 예보는 종종 틀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특히 소나기 예보는 자주 틀린다. AI인 빅스비조차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내리다가 그치는 올여름 소나기의 '자유분방함'은 예측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경험을 바탕으로 대충 가늠해 본다. 빅스비는 한 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가 아니면 '강우'라고 예측하지..

놀랍고도 고맙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땀나지 않는 날씨였다. 공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여름의 몸피도 얇아졌다. 출근길에서도 평소보다 땀을 적게 흘렸다. 오전 9시가 넘으면 인천시청역은 썰렁해진다. 시청과 교육청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모두 출근을 마쳤기 때문이다. 나는 9시 10분쯤에 시청역을 나왔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에스컬레이터가 썰렁했다. 맞은편에서 내려오던 사람 두 명이 나와 교차될 때까지 내 뒤로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출구를 빠져나와 청사까지 걸을 때도 나 혼자였다. 전철역이 뱉어낸 그 많은 사람들이 특정 시각 이후로 어디론가 일제히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는 일이 나는 매번 재미있다. 오늘처럼 썰렁한 역사를 빠져나올 때는 마치 숨바꼭질 놀이의 술래가 된 듯한 기..

믹스팝(mix-pop)의 소녀 전사들인 엔믹스(NMIXX)가 새로운 곡 '별별별'로 7개월 만에 컴백했다. 걸그룹 명가 JYP가 만든 평균 연령 21세인 이 손녀뻘의 소녀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귀여움이나 어설픈 섹시어필로 대중의 호감을 사려는 보통의 걸그룹과는 달리 엔믹스는 오직 실력으로 승부하는 걸그룹이기 때문이다. 이 소녀들은 무대에서 단 한 번도 립싱크를 해본 적이 없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1등 했을 때도 형식적으로 앙코르곡을 부르는 (즉, 부르는 시늉만 하며 자신의 팬덤을 향해 손이나 흔들어주는)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CD를 틀어놓은 것 같은 라이브를 선 보여 현장의 관객은 물론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심지어 어떤 때는 MR(반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제작되어 있는 음원)도 없이 부르기도..

정말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건강이 변수겠지만요. 아, 물론 돈도 있어야겠지요. 돈은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니 그렇다 치고, 건강은 내 노력으로 가꿔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또래의 평균치만큼은 열심히 건강을 관리해 왔다고 자부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50대까지는 확실히 내가 (평균보다) 관리를 잘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또래들의 관리 수준이나 의지가 장난이 아닌 거예요. 현직에서 은퇴한 후 경제적 여유는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는 친구들이 아주 공격적으로 몸 관리를 하기 시작한 거지요. 좋은 약과 보양식들을 챙겨 먹는 거야 당연지사고 등산과 탁구, 골프와 헬스 등 다양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생계에 얽매이지 않고 제 몸을 돌보기 위해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건..

왜 그런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를테면 내 생활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잘못되었고 그 잘못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는데, 생활은 여전히 거기서 거기다. 김수영이 시 ‘폭포’에서 경계했던 ‘나타와 안정’의 유혹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독서보다는 영상을 좋아하고, 의미 있는 정보를 노력해서 어렵게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쉽사리 얻으려 한다. 또 정제 탄수화물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라면과 냉면, 국수를 여전히 끊지 못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은 일주일째 삼가고 있지만 언제 다시 손이 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나이에는 식생활 관리가 필수적이다. 이제껏 지녀왔던 식습관을 고수하면 지병과 병상의 삶을 향해 질주하는 꼴이다. 요즘 접하는 정보들은 하나같이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