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수상한 침묵 (3-23-일, 맑음) 본문
탄핵 재판이 시작된 지 벌써 삼 개월이 지나고 있다. 처음에는 며칠 내로 윤곽이 드러나리라 믿었다. 정의는 조금 더디더라도 오리라 믿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벌써 꽃망울이 맺히는 이즈음에도 헌법재판소는 너무 조용하다. ‘그곳’이 너무 조용하니 세상은 시끄럽다. 귀가 아프다. 나는 저 침묵이 낯설지 않다. 수상하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수없이 속아왔고, 수없이 꺾여왔다.
하지만 조용하다는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이런 믿음조차 없다면 나는 이 봄을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볕보다는 자꾸만 그림자를 향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힘겹게 견딜 수 있는 것은 꽃샘에도 불구하고 봄은 어김없이 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게 힘겹게 왔던 여러 번의 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매화는 피었고, 벚꽃은 기다림의 준비를 마쳤다. 어린잎은 연둣빛으로 피어나고, 냇물은 얼음을 깨고 흐르기 시작했다. 자연은 변함없이 순리대로 움직인다. 그러나 사람의 계절은, 그렇게 순리대로 흐르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정의와 퇴행의 문턱에서 오랜 시간을 견디고 있다.
독재자를 탄핵하는 행위는 단순한 정치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고, 어떤 삶을 허락할 것인지에 대한 선언이다. 그래서 이 침묵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싸움의 연장이다. 그러나 침묵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안이 자란다. 불안은 마음의 바닥을 긁는다. ‘혹시 이번에도 그냥 넘겨지는 건 아닐까, 혹시 또다시 모든 게 무너지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 간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봄은 꽃을 피우기 전, 가장 고요하다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속에서, 뿌리는 끊임없이 물을 끌어 올리고, 가지는 수없이 떨며 햇살을 품는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침묵도 그런 시간일지 모른다. 무너진 정의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숨 고르기의 순간 말이다. 이 순간은 반드시,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여는 전조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봄을 아름답게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곧 꽃은 피고, 아이들은 웃으며 거리로 나올 것이다. 그들이 살아갈 미래가 다시는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우리는 승리해야 한다. 이 침묵을 넘어설 힘은 바로 그 믿음에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봄은 단지 계절의 흐름이 아니라, 인간다움과 정의가 다시 피어나는 시간이어야 하니까.
그래서 불안할수록, 더 단단히 마음을 다잡는다.
침묵이 우리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우리가 이 봄을, 아름다움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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