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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황석영, '오래된 정원', 창작과비평사

달빛사랑 2009. 11. 11. 01:59

  

 

 

"나는 언젠가 친구를 비판하면서, 우리는 그 시대에
 아무도 사랑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라고
 절망적으로 외쳤던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요새 와서 나는
 이 말을 수정할 작정입니다.
 지상에서 어느 때에나 사람들은 사랑을 했어요.
 세상에 드러나는 모양이 시대마다 다르기는 했어도...
 물살에 씻기어 닳아지고 부서지는 돌멩이처럼
 일상에 시달리는 벗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회한에 잠기지 않기를 바라요. 지금 그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풍요로운 인생의 깊이를 존중하라고. 그리고  더욱 성숙한 사랑으로

 지난날과 미래를 껴안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 윤희의 편지(기록), '오래된 정원'(하) 303쪽

 

"당신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살아있는 한 우리는 또 한 번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 윤희의 편지(기록), '오래된 정원'(하) 308쪽

 

  

  

내 마음 속, '오래된 정원'에는
잘 자란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고,

늘 맑은 물을 뿜어내던 펌푸가 있고,

미소짓는 젊은 엄마가 있고,
제법 눈이 맑은 소년이 있다.
마당에는 무지개를 품은 구슬들이 구르고,
괄호에 묶여진 시간들이
완강한 표정으로 말뚝처럼 박혀있다.
나는 그곳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온 것일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곳,
흑백의 풍경들을 마음의 인화지에 영사하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러본다.
"내 오랜 친구, 정서의 원천인 그리움들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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