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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너무 소중한 사진집이 도착했습니다. 이향지(시인) 선배님께서 직접 걷고 밟고 오르며 보신 금강산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는 사진집입니다. 시인의 땀과 열정이 밴 사진집 속에서 금강산은 사계절 내내 한결같이 아름다웠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명산을 지척에 두고도 쉽게 갈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실제 보는 풍광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 분단의 현실에서 사진집으로나마 ‘그리운 금강산’을 보고 읽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신 시인의 노고와 열정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요 며칠 금강산의 기슭과 골짜기, 아름다운 폭포와 신묘한 봉우리들에 머물렀을 시인의 발길과 섬세한 시선을 추체험하며 신비스러운 가을 여행을 다녀온 느낌입니다. 선배님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어제 일이다. 퇴근 무렵 혁재와 통화했다. 만석동에 있다가 로미, 성국과 함께 신포동으로 술 마시러 간다며 오라고 했다. 알고 보니 혁재의 생일이었다. 버스가 동인천역 삼거리에서 좌회전할 때 혁재는 다시 전화해 “형, 윤식당으로 오세요” 했다. 한창 손님이 몰릴 시간인데 요행히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윤 식당에 도착하니 성국, 혁재가 밖에 나와 있었고 시인 후배 산이가 반려견 ‘나무’와 함께 식당 앞에서 그들과 얘기하고 있었다. 윤 식당은 어제도 만원이었다. 그곳에서 모둠회와 새우튀김, 홍어 애(간) 등 서너 개의 개별 안주를 주문해서 먹었다. 사실 윤 식당은 그리 가성비가 높은 집은 아니다. 안주 하나의 가격은 비싼 편은 아니나 양이 적어서 소주 두어 병을 마시려면 어차피 안주도 두 개 이상은 주문..
최근 돌아다니질 않으니 꼭 챙겨야 할 일, 반드시 참석해야 할 행사들도 깜빡 잊곤 한다. 지난주 수요일에 인현동 참사 25주년 추모식이 있었는데, 예년과는 달리 오후에 행사가 열린 탓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 추모제 행사는(전시와 공연) 미경이가 기획하고 교육청과 시민연대가 함께 주관했는데, 추모제가 진행된 이래 처음으로 인천 시장이 참석해 추모사를 했다고 한다. 또 후배 소영이와 탈이는 행사에 맞춰 학생교육문화회관(가온 갤러리)에서 추모전시회를 열었고, 추모제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 (소영과 탈이의 전시회장에서) 무용가 혜경이는 공연도 했다는데, 정작 나는 이번 추모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사실 페이스북을 통해 전시와 공연 소식을 사전에 알고는 있었지만, 국민의힘 시의회 의원이 뜬금없이 요청한 교육청 5,..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지난달(10월) 25일, 40여 년 만에 만난 후배 광규와 신포동에서 술 마신 후 오늘까지 9일간 술 마시지 않았다. 작년 여름 의도적인 금주와 다이어트를 할 때를 제외하곤 술 없이 일주일 이상을 보낸 적이 많지 않다. (기억으로는 없다) 많으면 3번(물론 내 자의가 아니라 약속이 연거푸 잡히는 경우), 적어도 1번은 반드시 마셨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잦다. 혁재가 갈매기에 자주 오지 않고, 나도 예전처럼 혼자 술 마시는 일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쉬는 날에도 거의 집에 칩거하며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다만 은준이가 자주 동네에 찾아와 간단하게 한잔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의 방문도 예전보다는 뜸하다. 물론 잦았던 술자리가 줄어들면 건강에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남는 ..
생각보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나는 확실히 11월에 관해 선입관이 있는 게 분명해. 이를테면 11월은 가을보다는 겨울에 속한 달 같다는) 따듯했다. 한낮은 기온이 23도까지 올라갔으니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고 해야겠네. 산책하기 좋은 날이었지. 등산족들에게는 정말 좋은 날씨였어. 골프 라운딩하러 간 내 친구들에게도 좋은 날이고. 나 같이 며칠째 집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에게도 기분 좋은 날인 건 분명해. 하늘을 보면서 어디로든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막 솟아났거든. 아니면 대공원 호숫가를 산책하다가 아는 친구나 후배를 불러 소래산 입구의 만의골에 가서 파전에 막걸리라도 마실까도 생각했고. 물론 생각뿐이었어. 여행은 늘 생각뿐이고, 공원 산책도 입고 갈 옷이 없다는 핑계로 생각만 하다가 그만두기 일쑤지. ..
11월의 가을은 완강할 것이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아니 떠날 수 없는 것들은 시간 앞에서 완강하다. 남은 가을이 거리와 들판, 산 중의 푸른 잎들을 노랗고 빨갛게 색칠하고 최후로 대지가 그 색들을 다시 불러 모을 때까지 11월의 입술은 토라진 아이처럼 굳게 다물어져 있을 것이다. 어느 새벽엔가 서리는 11월의 방심을 틈타 하얗게 이곳을 찾을 것이고, 풀풀 눈발 날리며 겨울은 손님처럼 우리 앞에 서게 되겠지. 하지만 여전히 가을은 이곳에 있고, 나는 이제 막 겨울의 척후를 옷자락에 품은 미틈달 11월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안녕!
어제 누나들과 점심 먹고 근처 큰누나댁에 들러 생전 매형이 입던 콤비와 청바지, 티셔츠, 신발 등을 받아왔다. 두어 달 전쯤에도 티와 양말을 잔뜩 받아왔는데 이번에도 커다란 쇼핑백에 가득 들어찰 만큼 많이 받아왔다. 같이 간 작은누나도 큰누나의 신발과 옷들을 받았다. 대개가 구매하고 보니 치수가 맞지 않아 방치했던 신발과 옷들이었다. 누나는 이것저것 옷을 입어보며 “이거 내가 입을게” 하고 골라놓는 나를 보며 “고마워. 매형 옷을 기분 좋게 입어줘서. 다른 사람들은 고인의 옷을 입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너 아니었으면 다 버렸을 거야.” 하며 아득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당연한 게 아니야? 멀쩡한 걸 왜 버려” 하며 웃긴 했지만, 큰누나의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오늘은 어제 가져온 옷과 8월..
‘늙음’과 예술의 관계성에 관한 지극히 주관적인 낙서 본래부터 명사로 사전에 등재된 ‘젊음’과는 달리 ‘늙음’은 ‘늙다’라는 동사 어간 ‘늙’에 명사형 전성어미 ‘음’이 붙어 만들어진 파생명사(전성명사)이다. 즉, 형태로는 명사지만 뿌리는 동사라는 말이다. 젊음과 늙음, 두 단어의 태생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늙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나이를 많이 먹다. 사람의 경우에는 흔히 중년이 지난 상태가 됨을 이른다’, ‘한창때를 지나 쇠퇴하다’ 등이다. 즉 젊음은 일정한 시기나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라면 늙음은 생명 있는 존재의 필연적 과정이자 늙어버린 상태다. 계절로 따지면 가을 겨울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젊음’의 반대말은 ‘늙음’이지만 ‘늙다’의 반대말은 형용사 ‘젊다’가..
새벽에 잠을 설쳤다. 뒤척이다가 5시쯤 다시 잠이 들었으나 깊은 잠은 아니어서 잠결에도 틀어놓은 유튜브 음악 소리가 귀에 들렸다. 깨어 있던 건 분명 아니었다. 꿈을 꾸었으니까. 다만 그 꿈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서 꿈을 꾸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구별할 수 없었다. 꿈속에서 꿈 밖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꿈 밖에서 꿈속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 이건 꿈속이군’ 하고 손을 더듬으면 머리맡에 있던 휴대전화가 손에 잡혔다. 꿈 밖에서 ‘이제 정말 잠이 들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면 돌아가신 엄마가 거실에 앉아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면서도 머리가 무척 무겁다고 느꼈다. 그렇게 가수면 상태로 잠을 자다가 7시 30분쯤 잠에서 깼다. 자리에 누운 채 매트 위에서 발끝 부딪치기 200회를 하고 두 손을 위로..
전형적인 가을날이었다. 구름은 있었으나 자주 얼굴을 내미는 가을 햇살이 좋았다. 특보들 셋이 오랜만에 구내식당에서 점심 먹고 시청 광장에 가서 운동 삼아 산책했다. 얼굴에 내리쬐는 가을볕이 뜨거웠다. 포장 커피를 들고 중앙공원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 들어왔다. 마음 같아선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산책하다 들어오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울리는 미세먼지 경고 울림에 어쩔 수 없이 일찍 들어와야 했다. 청사의 은행잎들도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머잖아 내가 걷는 길마다 노란 은행잎들이 황금 양탄자처럼 깔리기 시작할 것이다. 아름다운 10월도 이제 얼추 다 갔다. 오후에는 5, 6급 계약직 공무원들의 회의 참석 기록과 업무 성과 기록을 제출하라는 국민의힘 시의회의원의 요청이 있어 해당 자료를 준비하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