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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어제(토요일 5시~10시), 주점 갈매기 개업 17주년 기념 잔치가 열렸다. 사실 ‘잔치’라고 하기에는 다소 손님이 적었다. 내가 17년 동안 개업 기념회에 참석해 왔는데, 올해가 가장 참석자가 적었다. 요즘 윤 정권 탄핵 집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데, 갈매기 손님들이 대체로 진보적인 인물들인 걸 고려하면 아마도 각종 집회에 참석하느라 못 온 사람도 많을 듯싶다. 아무튼 사정이 그렇다 보니 참석자들은 다른 해보다 비교적 넉넉하게 안주를 챙겨 먹을 수 있었다. 떡, 두부보쌈, 김치찌개, 광어무침, 김치전, 각종 막걸리 등 안주와 술은 손님들이 맘껏 먹고 마시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올해도 역시 정웅이가 사회 봤고, 혁재, 성국이, 산이, 병걸이가 노래했다. 우재 형과 몇몇 손님들이 흥에 겨워 앞에 나와 춤..
누나들이 함께 저녁 먹자며 소고기 국거리를 사 들고 집에 왔다. 가지도 무치고 무채 볶음도 하고 소고기미역국을 끓여서 함께 저녁 먹었다. 공교롭게도 누나들도 나도 혼자 살다 보니 이렇게 자주 모인다. 물론 전부터 자주 만났던 거 아니다. 그전에는 할머니(누나들)들과 식사하는 게 싫고 귀찮아서 같이 밥 먹자고 해도 내가 싫다고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난 7월, 큰 매형이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는 자주 만나서 함께 식사하고 차도 마시고 있다. 물론 요즘처럼 자주 만나는 일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혼자 뭔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만나자는 연락이 오거나 오늘처럼 불쑥 밥 먹자고 찾아오면 솔직히 귀찮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들과 함께 식사하며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다 보면 귀찮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형제라는 끈..
날이 흐렸다. 출근할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으나 점점 하늘이 낮게 내려앉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공기청정기와 난방기를 켠 후, 공기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며 주식 시황을 살펴보기 위해 휴대전화 어플을 켰다. 오늘은 2025학년도 수능일이라서 평소보다 한 시간 늦은 오전 10시에 개장한다는 팝업이 떴다. 커피를 타 마시며 뉴스를 검색하다 이내 그만두었다. 민주당에서는 김건희 특검 안건을 세 번째로 다시 상정할 것이고 국민의힘에서는 표결에 참석하지 않을 거라는 뉴스가 메인이었다. 하이에나들이 썩은 먹이를 두고 다투듯 일 년 내내 민생을 팽개친 채 벌이는 그들의 개싸움이 너무 지겹다. 동색(同色)들끼리 벌이는 싸움이 처음에는 한심했고, 이후에는 짜증과 분노가 몰려왔으며 최근에는 기가 막혀 헛웃음만 나온다...
큰누나가 집에 왔다. 누나는 오는 길에 소고기와 무를 사와 뭇국을 끓였다. 누나는 속이 안 좋을 때면 다른 자극적인 음식은 겁나서 못 먹고, 아니 당기질 않고 오로지 소고기를 넣은 뭇국만 생각난다고 한다. 푹 끓여 고깃국물이 진해진 뭇국을 먹으면 탈 났던 속도 편안해지고 입맛도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런(속이 안 좋은) 날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도 속이 안 좋을 때나 입맛이 없을 때면 나에게 "아범, 나 다른 건 필요 없고 소고기 반 근만 사다가 뭇국 좀 끓여줘"라고 부탁하시곤 했다. 연세가 드실수록 소화 기능이 떨어져 소고기 뭇국을 끓이는 횟수가 많아졌다. 말년에는 뭇국의 물러진 무조차도 넘기지 못하시고 국물만 몇 수저 뜨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마음이..
성격이 명확하지 않은 모임에는 잘 나가지 않는 편이다. 이를테면 오늘 특보들과 전전 비서실장 에이치와의 만남이 그런 경우다. 일단 교육청 밖의 인물과 현 보좌관들이 자주 만나는 건,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오해 사기 십상이다. 사실 우리가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목을 다지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잖은가. 일단 나는 에이치와 친한 사이가 아니다. 그가 비서실장으로 청에서 근무할 때, 오며 가며 얼굴을 익힌 사람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는 내가 들어오고 이내 청을 나갔다. 그때 그와 함께 지내며 들었던 느낌은, 사람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정당에서 파견한 인물이라서 그런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런 목적성이 보이지 않을 ..
공기는 좋지 않았지만 오늘은 가을 해가 내뿜는 살과 빛과 볕 모두 좋았다. 다만 요즘은 일교차가 심해서 아침마다 어떤 옷차림으로 출근해야 할지 매번 고민한다. 오늘은 긴소매 티셔츠 위에 기모 후드티를 입고 나왔는데, 오전 10시 전까지는 딱 좋았지만 한낮에는 다소 더웠다. 점심 먹을 때 후드티를 벗어놓은 채 먹었다. 일교차가 심하면 감기 걸리기 십상이라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특히 나처럼 땀이 많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내일 출근할 때는 카디건을 가지고 나와야겠다. 그나저나 기온이 이렇듯 조변석개인 게 마치 요즘 세태 같다. 진득하지 못하고 일관성도 깊이도 없는 작금의 정치 현실과 부박한 온갖 관계들처럼. 그렇게 따지면 '기온 변화'에 그때그때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매번 당혹스러워하는 나는 사..
어젯밤부터 오늘 저녁까지 '반지의 제왕'을 다시 시청했다. 감독 확장판은 개봉 당시보다 상영 시간이 늘어 한 편당 4시간에 육박했다. 1편인 '반지 원정대'부터 3편 '왕의 귀환'까지 보려면 거의 12시간이 소요된다. 줄거리와 결말을 알고 봤는데도 지루한 줄 모르고 집중해서 봤다. 20여 년 전에 나온 영화지만 완성도나 재미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영화다. 며칠 전 감상한 '힘의 반지' 시리즈도 그렇고 요즘 톨킨의 세계관에 푹 빠져서 살았다.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를 즐기는 것 자체를 나무랄 필요는 없겠지만, 나처럼 현실의 골칫거리를 잊기 위해 판타지 영화에 탐닉하는 건 건강한 일은 아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변명을 해도 이건 현실도피의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다시 침구의 방향을 바꿨다. 그간 동향이..
신포동 '도든 아트 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는 고제민 화백의 전시 '도시, 푸른 빛 너머'를 관람하고 왔다. 인천 출신으로 오랫동안 인천의 풍경을 그려온 고 작가의 작품들은 이전부터 많이 만나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나에게 특별했던 이유는 출품작 대부분이 과거에 내가 좋아해서 자주 들렀던 만석부두와 북성포구의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물이 들어오면 마치 바닷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포구의 횟집들, 창문 밖에서 내 눈높이로 날아가던 갈매기들, 그리고 낮술 마시던 술꾼들의 고함소리 등, 포구에 얽힌 추억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2020년 전후로 북성포구의 횟집들은 모두 철거되고 포구 인근 갯벌은 매립이 시작되어 옛날 내가 찾던 시절의 풍광은 볼 수 없게 되었다. 오늘 고제민 작가의..
미국 대선에서도 막무가내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우리나라의 '막무가내'도 어제 대 국민 사과를 위해 기자들 앞에 섰다. 물론 예상했듯이 그는 최근 불거진 아내의 일탈과 전횡, 그리고 국정의 난맥을 초래한 무개념, 막무가내식 통치 방식에 관해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는커녕 지극히 있을 법한 '실수'를 야당과 일부 국민들이 침소봉대해서 정치 쟁점으로 삼는다며 (그에게는 일부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80%의 국민들이다) 책임을 그들(야당과 국민)에게 전가하는 파렴치의 끝을 보여주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막무가내'의 기자회견을 시청하던 국민들은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그를 선택했던 일부 국민들은 보수언론인 조중동조차 '굥'의 실덕과 무지를 지적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보며 '막무가..
어제 이틀 만에 또 술을 마셨다. 퇴근 무렵 상훈이가 전화해서는 말을 빙빙 돌리기에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술 사달라는 거야, 아니면 술을 사겠다는 거야? 만약 후자라면 다음에 만나고 싶고, 전자라면 오늘 만나줄게" 했더니, "역시 멋지셔. 당연히 전자죠" 하며 웃었다. 후배들이 술 사달라고 어렵게(아닌가?) 전화할 때마다 거절하지 못한다. 마시고 싶진 않았지만 할 수 없이 구월동 용궁정에서 6시에 만났다. 며칠 전, 싱싱한 꼴뚜기가 들어왔다고 사장인 종화 형이 문자를 보냈던 터다. 그래서 오랜만에 용궁정에 들른 거다. 용궁정은 원래 민어 전문점이었는데, 요즘에는 다양한 안주를 파는 회 포장마차로 변했다. 안주는 여전히 맛있고 밑반찬들도 깔끔했다. 하지만 매상이 예전 같지 않아 얼마 전부터 점심에 식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