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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나는 단독주택에서 3번, 아파트에서 2번, 5개의 집에서 얼추 50년을 살았는데, 내가 살던 그 집들은 행복하게도 모두 남향이었다. 심지어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 잠깐 (은밀하게) 거주하던 집조차 반지하였으나 방위는 분명 남향이었다. 그러다가 쉰 살 즈음에 지인에게 사기당해 여러 풍파를 겪은 후, 한동안 자주 이사 다녀야 했다. 그동안 살던 52평 아파트를 떠나 처음으로 이사한 곳은 살던 동네 근처 빌라였는데, 집은 동향이었지만 앞에 큰 건물과 나무들이 볕을 가려 종일 어두컴컴했다. 다행히 2년 후 이사한 집은 평수가 넓진 않았으나 아파트였고, 동북향이어서 계절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볕이 들었다. 이 아파트에서 2년을 살다가 현재의 집으로 이사했다. 현재 내가 사는 집은 동남향의 단독주택 2층..
환절기라서 그런지 10월 중순을 넘어서며 지인들의 부고가 일주일에 두어 개씩 도착한다. 부고를 받았을 때, 나와의 친소(親疏) 관계에 따라 부의(賻儀) 금액과 빈소 방문 여부를 마음속으로 결정한다. 물론 어떤 부고는 마음으로 애도할 뿐 부의도 빈소 방문도 하지 않는다. 대개 내가 속한 단체의 중앙조직에 보내는 부고에 그런 경우가 많다. 회원 조직에서는 각 회원의 경조사를 타 회원들에게 알리는 게 상사(常事)다. 내가 속한 한국작가회의도 마찬가지다. 인천지회야 자주 만나고 회원끼리 서로 알고 있으므로 경조사에 서로 부조하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전국의 모든 회원을 관리하는 본회에서 보내는 부고 중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낸 부고가 대부분이다. 내가 아무리 정이 많은 사람이더라도 본회에 가입한 모든 회원(2..
45년 만에 동네 후배를 만났다. 희한하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얼마 전 후배 은준이 신포동에서 사진작가인 내 친구 임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오늘 만난 후배 광규를 처음 보았던 모양이다. 은준은 며칠 후 "엊그제 술자리에서 형 후배를 만났어요. 나보다는 선배인데, 그분이 형을 잘 안다며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하며 광규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번호를 저장해 놨었는데, 오늘 오전 그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화면에 이름이 떠서 전화를 받자마자 "어, 광규야, 오랜만이다" 하고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와, 형님, 이게 몇 년 만입니까? 저 기억나세요?" 하며 감동하는 눈치였다. 사실 얼굴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내 친구 옥규의 친동생이어서 어릴 때 자주..
모처럼 청명했다. 하지만 아침에는 기온이 쑥 내려가서 외투를 걸쳤는데도 한기가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무실에 나와서도 실내가 썰렁해서 난방기를 켰다. 관공서이다 보니 적정 온도 이상에서는 난방하지 않는다. 난방을 해도 18도 이상으로 온도를 올리지 않는다. 그래서 늘 춥다. 게다가 우리 사무실은 북향이다. 남향인 사무실에는 종일 볕이 따듯하게 들어와 11월 말까지도 (한낮에는) 난방기를 가동하지 않아도 견딜 만하다. 하지만 북향 사무실은 처지가 다르다. 그래서 우리 특보실에는 중앙난방용 라디에이터 말고 개별로 통제할 수 있는 냉난방 겸용 에어컨과 선풍기 난로가 따로 있다. 중앙 냉난방이 가동된다 해도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특보들은 여름 26도, 겨울 18도인 관공서 적정 실내 온도로는 더위와 추위를 ..
혈압약과 고지혈 약이 떨어져 오전에 병원과 약국에 들렀다. 혈압은 이번에도 정상 수치(120-80)가 나왔다. 의사도 “혈압 좋네요” 하며 “지난번과 똑같이 처방해 드릴게요” 했다. 체중이 많이 늘었는데도 정상 수치가 나와서 일단 다행이었다. 진료실을 나올 때 의사는 “다음에 오실 때는 공복에 오세요. 혈액검사 한 번 해보게요” 했다. 그러겠다고 대답했으나 다음 달 즈음에 건강검진을 받을 예정이라서 혈액검사를 한 달 만에 또 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즉, 늘 두 달 치를 처방받아 왔으니, 다음 내원일(來院日)은 12월 22일 즈음인데, 의사 말로는 바로 그날 혈액검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11월에 받게 될 정기검진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검사라면 굳이 비슷한 검사를 한 달 사이에 연이어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
시 읽기 좋은 10월, 늘 삶과 시를 일치시키기 위해 분투 중인 목포의 최기종 선배(『만나자』)와 대전의 김희정 시인(『당산』), 그리고 이번에 첫 시집을 낸 정종숙 시인(『춥게 걸었다』) 등 세 분께서 소중한 시집을 보내주셨습니다.❚그동안 최기종 선배와 김희정 시인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민중의 신산한 삶, 그것을 극복해 온 민중의 생명력을 자신들의 시적 주제로 삼아 왔(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번 시집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두 시인의 문학적 고민과 실천에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특히 흔히 미신이라 치부되는 ‘당산’을 '진정한 어른'이 부재한 이 시대에, 우리가 편히 기댈 수 있는 존재로 형상화해 낸 김희정 시인의 이번 '이야기 시'는 흡사 엄마의 무릎 위에서 듣던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게 읽혔습..
종일 구름이 많고 흐렸으며 기온마저 뚝 떨어져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흐린 날, 이를테면 비를 기대하게 만드는 날이 좋다. 사실 더위 타는 나로서는 며칠 되지 않는 가을날에 대해 호불호를 따질 처지가 아니다. 한마디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까지는 가을의 모든 날을 나는 사랑한다. 인사위원회 회의차 전 비서실장 박이 청에 왔다가 회의가 다소 일찍 끝나서 우리 사무실에 들렀다. 그간의 근황을 묻고 대답하다가 다른 날보다 조금 빠르게(11시 40분쯤) 점심 먹으러 나갔다. 오랜만에 교육청 후문에 있는 두부 전문점 ‘삼만시(옛 정가네순두부)’에 갔는데, 어찌나 손님이 많은지 박 실장과 친한 후배 장학사 현기가 예약하지 않았으면 한참 기다리다 먹을 뻔했다. 나와 보운 형, 박 실장과 현기는..
교회에서 예배 보고 나온 누나들이 연락해 함께 점심 먹었다. 큰누나 입맛이 까다로운 탓에 (순댓국이나 추어탕을 안 먹는다) 갈 곳은 대개 정해져 있다. 오늘은 집 근처 감자탕집에 들러 뼈해장국을 먹었다. 전골로 먹지 않고 각자 한 그릇씩 탕으로 먹었다. 큰누나는 해장국에 담긴 돼지 뼈 대부분을 건져 나에게 주었다. 그래서 나는 얼추 2인분을 먹은 셈이다. 아침을 먹지 않은 까닭에 누나 몫의 고기까지 먹어 치우는 일이 버겁지는 않았다. 큰누나는 이제 어느 정도 매형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동생으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다 정리된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매형의 옷(바지와 티셔츠)들이 장롱 속에 많이 남아 있더라. 다 새것이야. 언제 시간 내서 가져가”라고 말할 때는 잠..
지난 금요일 취중에 몇몇 후배들에게 전화하고 문자 보냈다. 물론 함께 술 마시던 장(張)의 부추김도 한몫했지만, 모두가 여자 후배들이었다. 친한 후배들이니 전화하고 문자 보낸 게 큰 실례는 아니지만, 문제는 그녀들이 보낸 답 문자와 전화를 확인하지 못할 만큼 취해버렸다는 것이다. 하루가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확인한 문자도 두 통이었다. (내가 먼저) 잘 지내느냐는 문자를 보내 놓고, 정작 그녀들이 답장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었을 때는 받지 못하거나 무반응이었다. 때문에 그녀들은 하나 같이 “잘 지내시죠?”라든가, “뭔 일 있는 거 아니죠?”와 같은 문자를 재차 보냈던 것이다. 하루가 지난 다음 그 문자들을 확인하는 일은 자신에 대한 모멸을 축적하는 일이다. 한동안 이런 일이 없었는데 왜 그런 버릇이 생..
종일 비 내렸다. 비 내리는 날은 다른 날보다 일찍 잠에서 깬다. 8시 30분쯤 출근해서 할 일을 처리한 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작가 류재형 형의 전시를 보기 위해 10시쯤 청사를 나와 신포동으로 향했다. 청사를 나올 추적추적 내리던 가을 비는 신포동에 도착했을 때는 주룩주룩 내리는 장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람은 불지 않아, 작은 우산으로도 비를 막을 수 있었다. 전시장 안에는 재형 형 혼자 앉아 있었다. 형은 나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어서 와요, 아우님” 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의례적인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은 후, 방명록에 사인하고 형의 설명을 들으며 사진을 감상했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내가 아는) 사진작가 중 (디지털카메라가 아니라) 필름 사진만 고집하는 김건환 형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