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선배의 전시회를 다녀오다 (5-28-수, 맑음) 본문
오후에 장명규 선배 전시를 보기 위해 신포동 인천아트플랫폼을 다녀왔다. 지인들의 전시장이나 공연장은 품앗이하는 마음으로 들르곤 하지만, 다시 말해 다소 의무감에 방문하는 편이지만, 그전부터 장 선배의 전시는 꼭 보고 싶었다. 그의 그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가 지닌 작가로서의 철학과 현실 인식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선배는 몇 년 전에 대장암 진단을 받고 재작년까지 치열하게 투병했다. 본래 말이 없고 조용한 양반이라 암에 걸린 것도, 투병 중인 것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다행히 암세포가 잡히고 현재는 건강을 되찾아 다시 창작에 매진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 상당수가 최근에 창작된 작품들이었다. 그가 투병이 끝나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얼마나 치열하게 작업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이복행 작가가 선착해서 선배와 대화하고 있었다. 교단에 있는 교사라면 오기 어려운 시간이라서 “어떻게 이 시간에 오셨어요?” 했더니 작년에 정년퇴직했다고 한다. 원래 이 작가도 장 선배를 무척 좋아해서 전시 소식을 듣자마자 갤러리로 달려왔던 모양이다.
장 선배는 내가 전시장을 돌며 작품을 감상할 때, 한 걸음 뒤에서 나를 따라오다가 내가 그림 앞에 한참 서 있으면 슬며시 다가와 작품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나도 추임새 넣듯 간간이 그림에 대한 느낌을 말했고, 혹시 내가 놓친 감상 포인트가 있는지 장 선배에게 물었다. 그때마다 장 선배는 진지한 표정으로 (하긴 그는 늘 진지하다) 작품에 관해 세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작품은 특이하게도 작품 제목이나 창작 동기가 그림 위에 텍스트로 쓰여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러한 창작 포인트가 다소 낯설었다. 추상화 작가로서 관람객들이 자신의 작품 주제와 창작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던 걸까, 그건 확실히 감상자들에게는 친절한 텍스트였다.
감상을 마치고 방명록에 서명할 때, 동료 화백들인지 장 선배에게 아는 체하며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선배, 그럼 이만 난 청으로 들어갈게요” 했더니, “술 한잔하고 가지, 왜요?” 하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미술계 동료들하고 한잔하세요. 나와는 나중에 동네에서 하면 되지요, 뭐” 대답하고는 전시장을 나왔다. 전시장 오른쪽에 있는 야외무대에서 청소년들 대상으로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전시장 안에까지 들려서 무척 거슬렸는데, 막상 천진한 표정들을 보니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오랜만에 들른 신포동이었다.
공직자 신분이다 보니 그간 정치적 발언을 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제 대통령 후보 정책토론회에서 토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던 무차별적 언어폭력과 유체이탈식 내로남불 폭로에 깜짝 놀랐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후보들의 수준이 저 정도밖에 안 되다니…… 초등학교 반장 후보들만도 못한 일부 함량 미달 후보들이 시전 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국민이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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