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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맑은 날, 선후배 시인들과 오찬 (5-27-화, 맑음) 본문

일상

맑은 날, 선후배 시인들과 오찬 (5-27-화, 맑음)

달빛사랑 2025. 5. 27. 23:40

 

 

 

오랜만에 선배 시인인 권이 형이 영종도에서 나왔다. 최근 서너 차례 전화해 식사하자고 했지만, 그때마다 내가 일정이 있어서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엊저녁에 통화를 한 후 간신히 약속을 잡은 것이다. 모처럼 뭍에 나온 김에 후배 병걸이도 함께 보려고 했으나 그는 인터뷰가 잡혀 있어 함께하지 못했다. 11시 30분, 교육청 정문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그 시간에 권이 형이 인천터미널쯤 왔다고 해서 내가 예술회관 쪽으로 내려갔다. 12쯤 예술회관 광장 벤치에 앉아 있는 권이 형을 만났다. 얼추 1년 만이었다. 권이 형은 나이 어린 후배들에게도 항상 존대하는 무척 겸손하고 어진 성품을 지닌 문단 선배다. 특히 형이 시집이 나올 때마다 내가 해설을 써주거나 리뷰를 써서 잡지에 게재하기 했다. 평생 철도 노동자로 살다가 정년 퇴직하고는 현재 형수와 단 둘이서 영종도에 살고 있다. 

 

우리는 들어갈 만한 식당을 찾아 수협 사거리, 민예총 사무실 앞까지 갔다가 마땅한 곳이 없어 다시 밴댕이 골목 쪽으로 걸어와 '병천순대'에서 순댓국을 먹었다. 반주로 소주 한 병을 함께 주문했다. 식사 후 식당 근처에 있는 사진작가 류재형 선배의 '태양 스튜디오' 옆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혹시 류 선배가 스튜디오(작업실)에 있을까 하고 내려가 봤더니, 다행히 있었다. 깜짝 놀라며 "웬일이야" 하는 선배에게, "근처 카페에 왔다가 형 생각나서 내려와 봤어요. 시간 괜찮으면 커피 한잔해요" 하고는 류 선배를 모시고 올라와 권이 형에게 소개하고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했다. 카페에서 30분쯤 머물다가 류 선배와 헤어져 우리는 터미널 쪽으로 걸어와 영종도행 좌석버스를 함께 기다렸다. 기다린 지 5분쯤 지나 버스가 도착했다. 형을 보내고 청사까지 걸어갈까 생각하다가 그냥 터미널역에서 전철을 타고 돌아왔다. 

 

최근 권이 형은 협심증 때문에 두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그 말을 들어서 그런지, 얼굴을 다시 보니 이전보다 수척해진 것도 같았다. 형은 "그런데, '아, 이렇게 죽나보다' 하는 순간, 희한하게도 두렵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예요"라고 말하며 진짜 편안한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그러면서 형은 "그 후로 이걸 늘 챙겨 다니고 있어요" 하며, 내가 천식 앓을 때 쓰던 기관지 확장제와 비슷한 형태의 흡입 도구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표정은 웃고 있었으나 내 또래인 60대들과는 다른 70대만의 쓸쓸함이 느껴졌다. 늙는다는 일은 참 쓸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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