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겨울의 공감 능력 (12-8-일, 맑음) 본문
한낮은 햇볕은 물론 한밤중의 바람조차 예년보다 순하다. 사람들의 가슴에 숭숭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통과했다. 기다림을 견딘 사람들이 다시 또 긴긴 기다림을 준비하는 동안 겨울은 신중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지켜보다가 문득 순해지기로 결심했던 것인데, 그건 일종의 연민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충분히 모질어질 수도 있는 겨울이었다. 바람의 등짝을 내려치며 더욱 차가워지라고 부추길 수도 있었고, 늦가을에 두고 온 사람들의 미련을 꽝꽝 얼려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겨울은 그러지 않았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힘겹게 한 계절을 견디고 있음을 알게 되었던 걸까?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이 허다한 이곳에, 여느 사람보다 더 사람의 표정을 읽고 마음을 헤아리는 계절이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 계절에 잃은 것이 많은 사람들, 이 계절에 지킬 것이 많은 사람들, 이 계절에 위로할 것이 많은 사람들, 그들을 연민하는 계절이라니, 겨울은 얼마나 겸손하고 속 깊은가?
가슴에 뻥 뚫린 구멍으로 절망과 비탄만이 집요하고 맹렬하게 들어차는 요즘, 순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겨울은 나에게 든든한 우군이다. 위로가 된다. 그리하여 겨울이 어느 날, 본래의 성정대로 매운바람을 이곳에 풀어놓는다고 해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겨울이 겨울이어서 겨울다운 거니까. 그게 본래 겨울의 모습이니까.
종일 영화만 보았다. 일부러 시사 뉴스나 유튜브를 보지 않았다.
이런 회피적인 태도는 건강하지 않다. 그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한다.
나는 유혹에 약하다. 평생을 유혹과 싸워왔지만, 자주 패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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