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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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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폭설, 그리고 아픈 엄마

달빛사랑 2021. 1. 6. 21:53

 

퇴근 무렵부터 눈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내리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단 10여 분 만에 거리는 온통 눈밭이었다. 갈매기에 들러, 엄마에게 가져다주라며 형수가 챙겨준 동치미를 받아 들고 차를 타러 갈 때쯤에는 모든 거리가 눈으로 완전히 점령당한 상태였다. 도로에도 차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이 쌓여 있어서 차들은 거북이걸음으로 간신히 도로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눈을 기다렸지만, 무서운 기세로 내리는 눈을 보니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도 엄마의 상태를 잠깐 살펴보고, 바로 빗자루를 들고 계단과 마당의 눈을 쓸기 시작했다. 쓸면 쌓이고 쓸면 쌓이고를 반복했다. 내일은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가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될 거라고 한다. 빙판길 사고가 무척 걱정된다. 정말 대단한 눈이다. 근래 들어 이렇듯 맹렬하게 내리는 눈은 본 적이 없다.


엄마는 여전히 음식을 넘기지 못하신다. 억지로 서너 숟가락 떠먹으면 이내 토하신다. 서너 달 전쯤 응급실에 실려 가셨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증상은 그때와 너무나 비슷하다. 노인의 몸이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무척 안 좋은 징후다.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하고 기운이 없어 눈빛은 퀭하다. 자기 전에 죽을 쑤어 놓고, 쌀 끓인 물을 따로 대접에 담아 준비해 두었다. 속이 거북할 때나 목이 마르실 때 쌀 끓인 물을 찾곤 하시기 때문이다. 아픈 와중에도 주무시기 전에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는 일은 계속하신다. 그건 정말 다행이다. 총기만이라도 잃지 않아야 수발과 이후 정양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체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게 아닌 것 같은 예감이 자꾸 들어 맘이 불편하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이건 기우에 불과할 것이고 엄마는 다시 기운을 차릴 것을 믿는다. 그 믿음은 이제껏 배반당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몸보다 의지가 더욱 건강하신 엄마는 늘 오뚝이처럼 회복하곤 하셨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겪어야 하는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안쓰러운 것이다. 힘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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