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태인 씨 하늘에 들다 (2021-01-8, 금요일) 본문
지난밤 엄마는 속이 허하시다며 흰죽을 달라셨다. 사흘 동안 음식을 받지 못한 몸에 허기가 느껴진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낮에 쑤어놓은 흰죽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갈매기 형수가 전해준 동치미 국물을 식탁에 놓아드렸다. 엄마는 죽 서너 숟가락을 드시고 동치미 국물을 마신 후 자리에 누우셨다. 손발이 얼음처럼 찼다. 등과 배를 쓸어드리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요 며칠 누우면 숨이 가쁘시다며 앉아서 지내셨다. 잠도 앉은 채 소파에 기대에 쪽잠을 주무셨다. 그러던 엄마가 스스로 자리에 누우신 것이다. 불안과 안도가 교차했다. “이제 괜찮으니 너도 들어가 자. 피곤한데……”라는 말을 듣고 나도 내 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거실 불은 켜놓고 내 방문은 열어놓은 채였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다. 잠결에 엄마의 신음이 들리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그러다 퍼뜩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보니 엄마가 편안한 표정으로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이불 끝으로 두 발이 나와 있었다. “아이고 우리 엄마 감기 들면 어쩌려고 발을 내놓고 주무셔요.” 하며 이불을 정리해 드리는데,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었다. 얼굴을 만져보니 차가웠다. “엄마, 엄마!” 부르며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손과 발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울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가실 때 나를 부르기라도 하시지. 혼자 가신 거야?” 하며 몸을 주물렀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엄마가 가엽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나는 엄마의 머리를 빗으로 비껴드린 후 목욕탕으로 가서 머리를 감고 면도를 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머리를 감고 면도를 하며 해야 할 일들의 순번을 정했다. 일단 동생에게 연락하고, 엄마가 다니시던 길병원 장례식장에 연락했다. 그리고 누나들에게 연락하고 군산에 있는 아들에게 연락했다. 아들은 전화를 받자마자 “할머니 장례식 꿈을 꾸다 막 깼어. 꿈이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하며 울먹였다. 하늘에 들기 전 몸을 빠져나간 할머니의 영혼은 같은 시간 손자의 꿈속으로 찾아갔던 것이다. 먹먹한 감동과 신비로움을 느꼈다.
시신 검안을 위해 길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접수를 마쳤을 때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최종 사인은 심장마비, 코로나 검사까지 마치고 음성 판정을 받은 후 장례식장으로 가기까지 엄마는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응급실 들것에 누워계셨다. 119구급대에 연락했으면 훨씬 빠른 일 처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장례식장으로 연락을 해 처리해야 할 절차가 몇 가지 추가되었다. 유해 운구비 10만 원 역시 지출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장례식장에서는 일사천리로 모든 일정이 진행되었다. 1시쯤 빈소를 계약하고 1시 30분쯤 빈소가 꾸며졌다. 동생이 가져온 영정 속에서 엄마는 가족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부고를 띄우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화환과 조기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긴 삼일장이기 때문에 조문객을 나눠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그래도 올 사람들은 모두 다녀갔다. 사회생활을 허투루 하지 않았는지, 엄마의 빈소는 코로나 상황임에도 북적였다. 조문객들이 알아서 일찍 자리를 비워 준 덕택에 많은 분이 들렀다 갔는데도 좌석이 모자라거나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종일 굶었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한파는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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