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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적막한 병실에서 엄마를 구해오다 본문

일상

적막한 병실에서 엄마를 구해오다

달빛사랑 2020. 10. 11. 00:42

 

새벽녘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초저녁에 잠들었던 엄마는 새벽에 문득 깨어 내가 걱정했던 바로 그 쓸쓸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아들, 나 이곳에 있기 싫어. 빨리 와서 제발 데려가 줘.” 하며 절박하게 말했다. 일단 나는 “곧 모시고 나올 거예요. 근데 엄마가 지금 힘들잖아. 그러니 조금만 더 참아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이 지났을 다시 전화가 왔다. “왜 안 와? 내가 죽어야 올 거냐?”라고 말씀하시고 전화를 끊었다. 이미 멘탈이 상당히 심각한 상태로 무너져 있다는 게 느껴졌다. 마음이 너무도 불편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시 한 시간 후에 전화가 왔을 때는 목소리에 노기가 가득했다.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5시쯤 온 전화는 받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는 누나와 동생에게도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6시쯤 되었을 때 동생과 누나가 전화를 했다. 이럴 때는 장남인 내가 모종의 결정을 내려야 했다.

 

“엄마, 오늘 모시고 나올래. 몸 치료도 중요하지만 엄마가 저토록 애절하게 원하는데 방치할 수는 없을 거 같아.”라고 동생과 누나에게 말했다. 9시가 되길 기다려 원무과에 전화해 퇴원 의사를 밝혔다. 원무과에서는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담당 병실의 간호사에게 전화를 돌려줬다. 간호사는 또 담당이 아니라며 잠시 후 알아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한 시간 쯤 지난 후 담당 간호사실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엄마를 퇴원시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간호사는 “그건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주치의 선생님이 살펴보고 최종적으로 휴일이라 집에서 쉬고 계신 교수님이 컨펌을 해야 하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럴 것이다. 병원 같은 규모 있는 조직사회에는 그 나름의 규칙이 있을 테니까. 나는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며 퇴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다행히 엄마를 병원에 놔두는 것은 또 다른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병원 측에서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알겠어요. 보호자님. 일단 주치의 선생님께 말씀드려놨어요. 오전 중에 연락할게요.”라는 전화를 받고 다시 연락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정확하게 10시 30분쯤 주치의에게서 연락이 왔다. 앳된 목소리의 여의사였다. 주치의는 엄마 상태를 걱정하면서도 내 말에 수긍했다. 절차와 규칙을 내세우며 고집을 부렸다면 나 역시 큰소리를 냈을 텐데 그럴 일을 만들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병원 측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동생에게 연락한 후 11시쯤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는 이미 모든 링거를 떼어내고 침상에 앉아 계셨다. 안심하는 마음과 서운한 마음이 뒤섞인 묘한 표정이었다. 어제 가지고 갔던 모든 짐을 챙겨서 다시 돌아왔다. 동생은 “엄마, 그냥 병원에서 깨끗하게 치료받고 나오지 뭔 고집을 그리 부리세요.”라며 짜증도 아니고 타박도 아닌 톤으로 엄마에게 말했지만, 엄마는 멍하니 앞만 보고 계셨다. 원무과에 들러 가퇴원비 70만 원을 지불하고 병원을 나왔다. 휴일이라 보험심사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정확한 진료내용은 월요일 이후에나 알려줄 수 있으니 영수증을 가지고 다시 들르라고 했다. 심사 결과에 따라 병원비는 70만 원보다 많아질 수도 있고 적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적을 경우 차액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영수증을 가지고 오란 것이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줄곧 주무시기만 했다. 오늘 새벽부터 잠을 설치셨으니 피곤하셨을 것이다. 깨어나서는 미음을 달라고 하셔서 드렸더니 몇 모금 마시고 다시 토하셨다. 한참을 진정하고 나서는 다시 죽물을 드셨고 며칠간 먹지 않았던 신경과와 심장내과 약들을 드셨다. 그리고 다시 방에 들어가셔서는 지금껏 주무시고 있다. 엄마 방에 들러 살짝 들여다 봤더니 신음소리 내지 않고 주무시고 계셔서 일단 안심했다. 작은 어깨가 들숨과 날숨 때마다 크게 들썩이긴 했지만……. 저 깊고 곤한 잠에서 깨었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식탁에 앉아 나와 함께 식사를 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를 빌고 또 빌어보는 늦은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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