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엄마, 다시 응급실 行... 힘내요, 엄마 본문
며칠 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하고 게워내시기만 하던 엄마는 오늘 결국 길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당뇨와 혈압약을 타러 다니는 동네 병원 선린내과에 들러 수액을 맞아볼까 했는데, 엄마의 상태를 본 해당 병원에서는 빨리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근처 전병원에 들렀는데, 전병원에서도 주말에는 전문의가 없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결국 길병원 응급실에 들른 것이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이것저것 검사를 진행했는데, 결과를 확인한 어린 의사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엄마의 상태가 단순한 급체가 아니라 정밀 진단이 필요한 심각한 상태라는 것이다. 변에서도 혈액이 검출되었고, 위에서도 출혈이 의심된다고 했다. 그래서 혈액수치가 너무 낮은 게 아닌지 의심이 간다는 것이었다. 응급조치로 혈액 4팩을 수혈받아야 했다. 콧줄을 넣어 위에 혈흔이 있는지 검사를 했다. 콧줄이 들어갈 때 엄마는 너무 힘들어했다. 다행히 위에서는 피가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혈변을 누고 혈액수치가 낮다는 것은 몸의 어딘가에서 출혈이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입원을 해서 혈액수치를 높인 후 위장 내시경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결국 입원을 결정했다.
병상이 배정되지 않아 응급실에서 두어 시간을 기다렸다. 간신히 배정되어 올라간 본관 10층의 병실은 4인실로 요양보호자들이 환자를 케어하는 곳이었다. 입원비에 4만4천 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호자들은 오후 6시부터 8시까지만 면회를 할 수 있고 이후에는 퇴실해야 하는 구조였다. 나머지 침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은 대충만 봐도 거동을 전혀 못하는 중증 환자들이었다. 문득 걱정이 되었다. 입원수속을 마친 후 짐정리를 할 때까지도 "빨리 가서 밥먹고 쉬어라. 오늘 한 끼도 못 먹었잖아."라고 나를 걱정하는 엄마였지만, 예민하고 깔끔한 엄마가 가족보호자도 없는 병실에서 밤을 세우는 일이 결코 쉬워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을 제외한 모든 환자들이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감옥같은 병실에서 행여 주무시다 깨었을 때 찾아올 그 쓸쓸함을 견딜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검사를 위해 금식을 해야 해서 물조차 먹지 못한 엄마는 입이 마른다고 물 한 컵만 마실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했으나 간호사들은 완강했다. 나는 그것이 너무 안쓰러워 생수병 뚜껑에 물을 담아 몰래 드렸다. 틀니를 뺀 합죽이 같은 입으로 병아리 눈물 만큼의 물을 허겁지겁 마시는 엄마 때문에 눈물이 핑돌았다.
집에 와서 요양보호사들이 적어준 준비물들을 챙겨서 다시 병원에 들렀다. 며칠 입원하는데 가져오라는 물품이 거의 이삿짐 수준이었다. 변도 기저귀에 봐야 하고 소변도 소변줄을 삽입해서 침대에서 보게 했다. 깔끔한 엄마에게는 그 무엇보다 치욕스럽고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걸어서 화장실에 갈 수 있다고 말을 했지만, 병원에서는 막무가내였다. 규칙이 그렇다는 것이다. 엄마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보호사가 따라가야 하는데, 많은 환자를 두어 명의 보호사가 케어를 하기 때문에 엄마 한 명에게 케어를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뜩찮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만 결과가 나쁘게 나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
그렇게 엄마를 병원에 두고 집에 왔다. 마음이 너무도 쓸쓸하다. 노인들이 곡기를 몸에 들이지 못하는 것은 좋지 않은 징후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다만 2년 전, 중환자실에서도 건강하게 되돌아온 엄마니까 이번에도 꿋꿋하게 이겨내시리라 믿는다. 엄마는 강하니까. 엄마 곁에는 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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