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망설이는 마음의 정체 본문

일상

망설이는 마음의 정체

달빛사랑 2020. 7. 25. 15:11

 

아침 운동을 하고 나오면서 결국은 민예총 사무처장 창훈이에게 전화했다. 러닝머신 위에서도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생각할수록 불편했다. 오늘은 정세훈 선배가 홍성에 노동문학관을 개관하는 날이다. 며칠 전 창훈이가 전화를 걸어 토요일 홍성 행사에 같이 갈 수 있느냐고 물어왔을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못 갈 거 같아.”라고 대답을 했다.

 

정 선배가 사비를 들여 (사실 주변 동료와 문우들로부터 성금을 받긴 했지만) 노동문학관을 짓겠다고 했을 때 그분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나는 조금 의아했다. 노동문학이 갖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위치 선정도 그렇고 건립 과정이나 방식도 그렇고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뜻 있는 사람이 의미를 선점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막을 수야 없겠지만 특정 성격의 문학관은 좀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차근차근 만들어가야만 형식과 내용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성과가 나는 법이다. 만약 선배처럼 서둘러 일을 진행하게 되면, 많은 선행 연구자들이나 문학 동료들로부터 노동문학의 역사와 성과를 개인이 사유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오해받기 십상이다.

 

실제로 몇몇 선배들은 그러한 점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적극적인 동참을 망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많지는 않지만, 성금을 보내준 것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정 선배는 문우이자 조직의 선배이다. 누구보다 먼저 팔 걷고 나서서 도와줘야 했을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런데도 망설이고만 있었으니 정 선배 입장에서는 내 모습이 얼마나 서운했겠는가. 논리와 타당성만으로 처신하기 어려운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다.

 

그래서 불편했다. 나는 그렇다 치고 명색이 이사장의 개관식에 혹시 한두 사람만 참석하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했던 것이다. 다행히 창훈이로부터 공연팀 포함 인천 민예총에서 9명이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내 망설임의 정체에 대해서 내내 생각했다. 미안한 마음 한 편으로 스스로 납득할 만한 명쾌한 대답은 내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분의 진정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모쪼록 힘겹게 개관한 노동문학관이 의미 있는 공간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마음으로 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힘을 보탤 일이 있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 할 생각이다. "형, 수고 많았어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어를 먹다  (0) 2020.07.27
산우회 복날 모임  (0) 2020.07.26
더불어 사는 즐거음ㅣ작업 환경을 바꾸다  (0) 2020.07.24
많은 비 내린날ㅣ문화현장 편집회의  (0) 2020.07.23
비는 내리고, 생각은 널을 뛰고  (0) 2020.07.2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