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비는 내리고, 생각은 널을 뛰고 본문
세상에 날 선 말들이 만연하고 의협심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속한 진영에서 살생부를 만들고 있다. 논쟁은 사라지고 잡설만 무성한 세상에서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본래의 정의는 훼손되고 편법과 술수만 난무한다. 바이러스의 창궐은 어쩌면 오염된 세상을 자정하려는 지구 생태계의 필연적 역공인지도 모르겠다. 뉴스를 보는 것이 두렵다. 각종 SNS에 올라오는 글들은 하나같이 짜증스럽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인간 상호 간의 불신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곳은 이미 디스토피아의 전조를 보여주는 중이다.
다만,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시계다. 더디고 빠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후가 뒤바뀐 적 없는 계절의 변화와 그에 따른 계절 본연의 얼굴만은 진짜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신록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곡식이 여물며 겨울이면 황량한 듯 쓸쓸한 듯 동면에 접어드는 대지의 모습만은 믿을 수 있는 진짜다.
문명의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려놓기 일쑤다. 한여름에 오소소 한기를 느끼고 한겨울에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지낼 수 있으며 겨울 식탁에서 수박은 물론이고 봄날에나 만날 수 있는 풋풋한 채소를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붙잡힌 시간, 뒤틀린 자연의 질서가 가져다주는 당의정 같은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지 않아 사람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생태계의 교란을 초래할 것이다. 한여름에 한기를 느끼고 한겨울에 싱싱한 채소를 먹기 위해서는 그만큼 에너지를 더욱 많이 소비하게 되고, 또 그만큼 자연은 망가지는 것이다. 제 살을 깎아 먹는 중인지도 모르고 살아갈 터전을 시나브로 훼손해가는 인간이란 종을 보며 지구 공동체의 또 다른 주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생각이 널을 뛴다.
여름 장맛비 내리는 날, 문득 마음이 격동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지극히 정상적인 정서적 반응이자 예의란 생각이다. 자연의 질서가 회복되고 다른 종들의 삶에 간섭하지 않을 수 있다면 계절마다 만나는 각양의 불편함을 나는 기꺼이 감수할 용의가 있다. 여름 더위와의 싸움은 만만하지 않겠지만, 그걸 견뎌야 하는 게 필연이라면 그걸 기꺼이 견디는 것이 진정한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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