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많은 비 내린날ㅣ문화현장 편집회의 본문
비가 참 시원하게 내린다고 생각한 하루였고, 마음이 들뜬 하루였지만, 부산에서는 폭우로 인해 서너 명이 목숨을 잃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내가 감상적으로 비를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 곳에서는 같은 비로 인해 사선을 넘나드는 아찔한 순간을 맞고 있었다. 공감지수가 부족한 사람처럼 장맛비를 바라보며 마냥 즐거워한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하지만 비를 맞는 순간마다 전국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며 그에 걸맞은 슬픈 포즈를 취하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비는 이미 내 머리 위에서 내리고 내가 앉은 창밖에서 내리고 이내 마음속까지 들어와 내리고 있을 때, 자연스레 고즈넉해지는 마음과 빗소리가 전하는 감흥을 제어하며 이웃의 슬픔을 생각하기에는 내가 너무 평범하고 속된 품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없던 약속도 잡아야 하는 날이다. 나에게는 잡지 편집회의가 ‘다행히’ 잡혀 있었다. 잡지는 논의하고 검토하고 역할 분담하여 추진하면 계획대로 원하는 시기에 발간될 것이다. 비는 내가 원한다고 만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늘처럼 장하게 장맛비 내리는 날은 여름 나무처럼 나도 비에 흠뻑 젖어 들어야 하는 날이다. 회의를 마치고 근처 연안부두에서 식사하는 후배와 함께 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 갈매기로 이동했다. 5시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술 마시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비 오는 날은 낮술이든 밤술이든 무조건 용서가 된다. 후배 진현이와 함께 갈매기에 도착했을 때, 내 예상대로 혁재가 이미 와서 앉아 있었다. 비 내리는 날, 혁재까지 만났으니 금상첨화, 진현이는 술값만 계산해 주고 먼저 귀가하고 (술도 안 마시는데 늘 술값을 계산해 준다. 고마운 후배다) 혁재와 둘이서 기분 좋게 마셨다. 혁재는 다른 날보다 무척 많은 말을 했다.
6시에 만나기로 한 후배는 서울에서 회의가 늦게 끝났다며 7시 20분쯤에야 합류했다. 9시쯤 일어나 근처 ‘경희네’로 2차를 갔다. 안주가 나올 때쯤 경인일보 우 선배와 정 모 후배가 합석을 했다. 일찍 시작했고 주종을 바꿨더니 취기가 느껴졌다. 다행히 나중에 합류한 세 사람끼리(경인일보 두 사람과 후배 한 사람)도 서로 아는 사이라서 취기를 핑계로 혁재와 먼저 술집을 빠져나왔다. 혁재는 택시를 잡아서 나를 태워준 후 다시 갈매기로 돌아갔다. 빗물을 쓸어내는 택시의 와이퍼 소리가 너무 좋았다. 현관 앞에서 심호흡한 후 마치 맨정신으로 귀가하듯 태연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엄마는 주무시지 않고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내가 목욕탕에 들어가자 그때 비로소 방으로 들어가셨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망설이는 마음의 정체 (0) | 2020.07.25 |
---|---|
더불어 사는 즐거음ㅣ작업 환경을 바꾸다 (0) | 2020.07.24 |
비는 내리고, 생각은 널을 뛰고 (0) | 2020.07.22 |
공모 서류 접수 (0) | 2020.07.21 |
바람의 내력, 혹은 불면의 이력 (0) | 2020.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