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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모임 스케치, 그리고 아들의 전화 본문

일상

가족모임 스케치, 그리고 아들의 전화

달빛사랑 2020. 5. 5. 20:18

어버이날을 며칠 앞두고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식사했다. 작은누나와 군산 지방법원에서 근무하는 아들은 참석하지 못했다. 동생과 제수(弟嫂)의 일상에는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았지만, 얼마 전 명절에 봤을 때보다 표정은 무척 밝아 보였다. 제수는 조만간 받게 될 국가재난지원금에 큰 관심을 보였다. 4식구니까 100만 원을 받게 될 것이다. 동생은 머리숱이 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았고 꾸준히 운동해서 그런지 몸피는 약간 슬림해 보였다. 카이스트 재학 중인 큰 조카 우현이는 산학협력 프로젝트의 일환(一環)으로 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가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2백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며 할머니(우리 엄마)께 두둑한(학생치고는) 용돈을 드렸다. 작은 조카 우진이는 올해 대학에 입학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나갈 수가 없어 아직까지 지도교수는 물론 동급생들의 얼굴조차 못 보고 있다. 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왔는데 무척 잘 어울렸다. 큰누나는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아 최근에도 병원에서 링거를 맞아야 했다. 목소리와 표정은 전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누나는 휴대폰을 꺼내 손자들의 재롱이 담긴 영상을 엄마에게 보여줬고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하, 고것들”과 “어디 다시 한번 보자”를 반복하셨다. 자형(姊兄)은 다시 흡연을 시작했고, 식사 자리에서는 가장 많은 말을 했다. 한 달 전쯤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동생은 제법 비싼 커피를 선물로 주었다. 엄마에게는 음식 자체보다도 이렇듯 가족들이 한데 모여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들로 왁자지껄하는 시간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손자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엄마는 많이 웃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업소(‘소래 버섯나라’)의 사장님은 엄마 드시라며 식혜를 큰 병에 따로 담아주셨다.


밤늦게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버이날을 맞아 용돈을 보내줄 테니 할머니와 더불어 맛있는 거 사드시란다. 부모 마음은 다 그렇겠지만 액수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아들의 그 말에 가슴이 환해졌다. 그냥 고마웠다. 용돈이 고마운 게 아니라 잘 커 줘서 고맙고 특별한 날에 아빠와 할머니를 기억해 줘서 고마웠다. 물론 별거(別居)하는 젊은 자식들이 대개 그렇듯이 용돈이나 선물로 마음을 대신하려는 의무감 혹은 면피의 심리가 없진 않았겠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그 세대 젊은이들의 평균치의 심리일뿐 내가 아들의 경우를 특화해서 더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할 일은 없는 것이다. 나도 옛날에 그랬으니까. 진실한 마음으로 하기보다는 다소의 의무감으로 마음을 표현할 때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 최소한의 의무감을 발현하는 것도 기실 부모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마운 것이다. 마음의 정체가 그 무엇이든 기억한다는 것,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 그것마저 안 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 그 기억함과 의무감과 불편함이 일종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고맙다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칙칙했던 일상이 가족들과 아들 때문에 잠시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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