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안경을 잃어버렸다 본문
맞춘 지 오래되긴 했지만, 잘 맞고 편안했던 안경을 잃어버렸다. 최근에 새로 맞춘 다초점 안경이 오히려 불편해서 그 안경을 자주 쓰고 다녔는데, 아쉽다. 술이 많이 취해 택시에서 내리다 넘어졌는데 그때 잃어버린 모양이다. 머리 옆 부분도 부어서 아프고 허벅지는 멍이 들었다. 코드 앞부분도 흙투성이였다. 택시비도 이중으로 지불했다. 물론 이 부분은 택시 기사가 파렴치했다고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원인은 술 때문이니 남을 탓할 일은 아니다. 후배가 택시를 태워주며 기사에게 2만 원을 미리 주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또 택시비를 현금으로 지불한 것이다. 매번 카드로 계산하다가 왜 하필이면 술 취한 날 현금으로 계산했는지…… 카드로 계산했으면 승차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튼 후배도 아침나절 전화해서 안부를 물었지만, 술 마신 이래 어제처럼 취해 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체력이 약해진 줄도 모르고 평소 먹던 주량대로 마셔서 그랬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근까지 주로 막걸리를 마셨는데 어제는 소주, 막걸리, 맥주를 섞어 마셔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몸도 맘도 말이 아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이런 일을 또 경험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나저나 머리는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정말 비싸게 술 마셨다. 안경이야 또 맞추면 되고 돈이야 기부한 셈 치면 되지만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다. 많이 피폐해졌다.
바바리는 물론 바지까지 모든 것을 세탁했다. 최근에 새로 맞춘 안경을 서랍 속에서 꺼내놨다. 머리가 띵하다. 약국에 가서 소염제를 사왔다. 이태원 클럽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며칠 동안 운동을 하지 못했다. 체력이 더 떨어진 이유일 수 있다. 뭔가 내 예상과는 다르게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함, 그렇다. 불안하다. 이 불안한 기시감, 익숙하다. 익숙해서 더욱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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