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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허수경 본문

일상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허수경

달빛사랑 2020. 1. 2. 16:47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허수경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 섬으로 들어갈 때 그대들이 챙긴 물건은

그 섬으로 들어갈 때 내가 챙긴 물건과 비슷하겠지만

단 하나 다른 것쯤은 있을 것이다

 

내가 챙긴 사랑의 편지지가

그대들이 챙긴 사랑의 편지지와 빛이 다른 것

그 차이가 누구는 빛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세기의 차이다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다

이것이 고독이다

 

섬에서 그대들은 나에게 아무 기별도 넣지 않을 것이며

섬에서 나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속에는 눈물이 없다

다만 짤막한 안부 인사만, 이렇게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부재(不在)란 한 존재의 가장 아픈 방식의 자기 증명이다. 없음을 통하여 있음을 웅변하는 존재의 역설이라니…… 얼마나 애잔한가, 라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애잔함이란 표현은 얼마나 주관적인가. 예고된 부재의 시점을 향해 차근차근 진행하는 천연덕스런 시간 속에서 한 번쯤은 스스로 애잔함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나는 함부로 추측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일 뿐 확인할 수 없는 일, 그것은 사라진 부재 혹은 한 때의 존재만이 알 수 있는 일, 아니 존재조차도 확실히 알 수 없는 일, 막 뒤집어놓은 모래시계의 모래들처럼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이거나 이별이거나 혹은 사라짐이거나 모멸이거나 그 모든 것이거나 아무 것도 아니거나 아무 것도 아니어서 다행이거나……라는 생각이 쌓여갈 때쯤 문득 찾아드는 바로 그것, 비애,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절망, 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무거운 침묵, 휘발하는 기억이 뿜어내는 거친 향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것, 예고된 부재, 이미 도달해 있는 당연한 슬픔을 그녀는 어떻게 견뎠을까. 나는 또 함부로 슬픔, 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 나의 슬픔은 부재의 시점에서 현기증처럼 그녀를 찾은 모종의 감정과 같은 색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고 그녀조차 모를지도 모르기 때문에 비로소 알 것 같은…… 그리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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