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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맙소사, 비록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어젯밤 늦게까지 맹렬하던 눈발이 오늘 아침까지 이어질 줄 몰랐다. 담장에 쌓인 눈은 얼핏 봐도 20센티는 넘어 보였다. 계단에 눈 쌓였을 걱정되어 나가 봤더니 다행히 한쪽에만 쌓인 채 녹아가고 있었다. 옷을 챙겨 입고 본격적으로 눈 치우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눈은 물을 먹고 있어 무척 무거웠다. 워낙 많은 눈이 내린 데다가 물까지 먹고 있어 넉가래로 밀 때는 힘이 들었다. 계단은 작은 청소용 부삽으로 눈을 치웠고 정원의 눈과 대문 앞의 눈은 넉가래로 밀었다. 방한용 누비바지와 오리털 파카를 입고 얼추 40분가량 눈을 치웠더니 속에 땀이 났다. 눈을 치우는 동안에도 가루눈이 펄펄 내렸지만, 바닥에 쌓이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오늘 아침 날씨가 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겨..
새벽부터 내린 눈은 종일 그치지 않고 늦은 밤까지 계속해서 내렸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 쌓인 눈을 보면서도 오늘 하루 이렇듯 많은 눈이 내릴 줄은 몰랐다. 눈 때문이었을까, 나는 오늘 새벽 다른 때보다 일찍 깼다. 가습기를 켜놓고 잤기 때문인지 호흡이 가빴다. 천식 발견 초기에 경험한 답답함이었다. 한동안 쓰지 않던 기관지 확장제를 찾아 흡입했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였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발이 제법 거셌다. 잠이 달아나 책상 앞에 앉아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가습기의 분무량이 너무 많아 방안의 습도가 너무 높으면 천식 환자들은 호흡 곤란이나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호흡이 힘들었던 게 실제로 가습기 때문인..
박 전 비서실장과 난정평화교육원 김 원장, 어제에 이어 오늘도 시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장온 임 교육장, 그리고 나와 보운 형, 이렇게 다섯 명이 함께 식사했다. 양평해장국 먹으로 식당에 들어가자 박 실장은 "야, 여기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와 보네요" 하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그곳은 그가 청에 근무할 때 보운 형, 나와 더불어 자주 들렀던 곳이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두 사람은 현직에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박 실장은 30년 이상 교육계에 몸담았던 탓인지 퇴임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는데도 한결같이 청과 교육감, 인천 교육에 관한 걱정뿐이다. 참 선한 사람이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사람 말이다. 어제 술 마신 탓인지 다른 날보다 늦게..
오늘은 비번이었지만, 출근했다. 어제 오후, 다인아트 윤 대표가 급하게 전화해 교육청에 납품할 (인천지역 직업계 고등학교를 탐방한) 책의 교정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윤 대표에게 필자가 기자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글쓰기의 기본은 하겠다 싶어 내심 안심했으나, (정말 대충 훑어보면 될 줄 알았다), 원고를 넘기다 보니, 웬걸, 수정할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신문에 게재했던 기사 모음이라고 하던데, 그래서일까 신문에 게재됐던 원래 기사 원고와 후일에 첨가한 원고 간 편차가 무척 심했다. 전자(기사 원고)는 손 볼 게 별로 없었고, (학생, 학부모, 교사의 인터뷰를 모아 놓은) 후자는 종결어미도 일관되지 않았고, (해라체와 합쇼체가 섞여 있었고) 호응이 깨진 문장도 적지 않았다. 아마도 촉박한 ..
어제 도착한 블랙야크 등산화(22만 원, 이런 고가의 등산화는 처음 사 봤다)를 신고 시장 다녀왔다. 당연히 신고 갈 신발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고 새 등산화를 길들이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굽이 높고 신발 자체가 마치 갑옷처럼 단단한, 그래서 발을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등산화는 처음 신으면 무척 어색하다. 자기 보폭이나 걷는 습관을 신발에 각인시켜 줘야만 신기가 편해진다. 등산화를 신고 처음 집을 나섰을 때는 뭔가 어색했다. 발이 신발에 반응하는 느낌이 강렬했다. 단골 채소가게에 도착해 장을 보고 돌아올 때, 비로소 발과 신발이 조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나니 신발이 (정확히 말하면 신발 안의 발이) 너무 편했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이었다. 돈 값을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렸다. 전날 마신 막걸리 때문일 것이다. 어제 카페 '산'에서는 자리에 앉자마자 로미가 가져다준 하이볼을 한 잔 마신 이후, 줄곧 막거리만 마셨는데, 문제는 막걸리의 종류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는 것. 소성주는 기본이었고, 신미선 씨가 가져온 땅콩 막걸리, 혁재가 갈매기에서 가져온 해창막걸리와 송명섭막걸리, 연꽃 막걸리, 지평막걸리 등 하도 다양한 막걸리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었는데, 그 모든 종류의 막걸리를 섞어 마셨으니 오늘 아침 머리가 안 아팠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술 마신 다음날이 불안한 이유는 평소의 루틴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장을 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의지 박약자처럼 라면과 냉면을 먹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혁재와 성국, 시인 후배 산이가 카페 '산'에서 공연한다. 늦가을 밤의 을씨년스러움을 몽글몽글하고 로맨틱하게 만들어줄 그들의 목소리와 기타의 선율, 기대된다. 분명 선물 같은 밤이 될 것이다. [카페에 가기 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바람, 근직, 창호, 선아 그리고 자운 누나, 신미선 선생 등 한 동안 못 봤던 선후배들을 혁재와 산이의 공연 덕분에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첫 번째로 공연한 산이는 노래를 부르기 전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은 뒤, 자작곡 노래들을 3곡 불렀다. 세 노래 모두가 죽은 애인과 후배 시인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해서 놀라웠다. 바로 이어서 혁재가 꽃을 들고 나와 무반주로 자작곡 한 노래를 대화하듯 불렀는데, 최근에 만든 노래인지 처음 듣는 ..
나 말고는 아무도 출근하지 않아서 혼자 고즈넉하게 일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었다. 김 목사가 우리 방에 합류하고 나서부터 방문객이 많아진 탓에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보운 형은 어차피 일주일에 두 번만 나오기 때문에 자주 맞닥뜨릴 일이 없지만 김 목사는 5일 내내 나오므로, 이전처럼 조용한 사무실에서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시청하며 나 혼자 일하는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가끔 오늘처럼 혼자 사무실을 지키며 일할 때가 너무도 좋다. 다만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있다면 점심을 혼자 먹어야 한다는 것 정도. 오전에는 신한은행에 들러 수표를 입금한 후 내가 현재 사무실에서 키우고 있는 화초들에 물을 주었다. 그리고 중앙교육연수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무원들이 1년 안에 ..
어젯밤 유튜브를 보다가 '위키드' 개봉 소식을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개그우먼 송은이, 김숙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비보 TV'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해당 채널에서는 영화 '위키드'의 한국어 더빙판에 참여한 뮤지컬 배우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엘파바 역의 박혜나, 글리다 역의 정선아, 모블리 역의 정영주 등 익숙한 배우들이었다. 사실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유명한 이 작품은 그전부터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 이 작품이 처음 소개된 것은 오리지널 팀이 내한 공연을 한 2012년이다. 이듬해인 2013년 한국 라이선스 초연이 이루어졌고, 2021년에는 삼연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오즈의 마법사'와 세계관이 연결되는, 다시 말해 '오즈의 마법사' 프리퀄 같은 작품이라서 판타지를 좋아하는 나는 이 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