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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폭설로 내린 첫눈 (11-27-수, 종일 대설주의보) 본문

일상

폭설로 내린 첫눈 (11-27-수, 종일 대설주의보)

달빛사랑 2024. 11. 27. 22:11

 

새벽부터 내린 눈은 종일 그치지 않고 늦은 밤까지 계속해서 내렸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 쌓인 눈을 보면서도 오늘 하루 이렇듯 많은 눈이 내릴 줄은 몰랐다. 눈 때문이었을까, 나는 오늘 새벽 다른 때보다 일찍 깼다. 가습기를 켜놓고 잤기 때문인지 호흡이 가빴다. 천식 발견 초기에 경험한 답답함이었다. 한동안 쓰지 않던 기관지 확장제를 찾아 흡입했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였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발이 제법 거셌다. 잠이 달아나 책상 앞에 앉아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가습기의 분무량이 너무 많아 방안의 습도가 너무 높으면 천식 환자들은 호흡 곤란이나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호흡이 힘들었던 게 실제로 가습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가습기를 끄고 확장제를 흡인했더니 이내 좋아졌다.

 

10시가 지나자 여기저기서 문자가 도착했다. 택배 도착 예정 알림 문자, 자동이체 알림 문자, 각종 일정 알림 문자, 눈 소식과 사진이 도착했다는 알림 문자 등 문자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오후가 되자 장은 첫눈 오는 날 그냥 집에 있기 뭐하다면 술 한잔하자고 전화했는데, 부드럽게 거절했다. 이번 주에 술 약속이 두 개나 예정되어 있고, 오늘처럼 날이 갑자기 추워지고 폭설이 끝도 없이 내리는 날에는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상수(上手)라고 생각한다. 누나들도 전화 걸어 오늘 비번이면 절대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신신당부했다. 타당한 당부라고 나 역시 생각했기 때문에 오늘은 방콕 했다.

 

창문을 열 때마다 여전히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예보에 의하면 서울 경기 지방에 최소 25cm의 눈이 더 내릴 거라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서서 오늘처럼 첫눈이 폭설로 내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래전, 금호아파트 살 때, 폭설을 뚫고 상훈, 혁재, 은준 등 후배들과 함께 우리 집에 와서 술 마신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건 첫눈이 아니었다. 눈(雪)이 항상 그렇지만, 내릴 때는 무척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지만, 그치고 나면 무척 지저분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고 각종 사고를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오늘 내린 폭설은 물기가 많은 습설인데, 밤사이에 기온이 떨어지면 세상은 온통 빙판이 될 게 뻔하다. 벌써부터 내일 벌어질 상황이 걱정된다.

 

첫눈이라서 처음에는 설렜고, 지금은 저 눈발의 기세가 조금 두렵다. 하지만 고립된 섬처럼 눈 속에 묻혀 가는, 내가 있는 이곳의 풍경과 시간이 아직은 나쁘지 않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기로 하자. 일단 눈 내리면 생각나는 시 두 편!!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꽃 속에 던져 주었다

 

​그리움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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