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무기력하게 보낸 주말 (11-23-토, 맑음) 본문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렸다. 전날 마신 막걸리 때문일 것이다. 어제 카페 '산'에서는 자리에 앉자마자 로미가 가져다준 하이볼을 한 잔 마신 이후, 줄곧 막거리만 마셨는데, 문제는 막걸리의 종류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는 것. 소성주는 기본이었고, 신미선 씨가 가져온 땅콩 막걸리, 혁재가 갈매기에서 가져온 해창막걸리와 송명섭막걸리, 연꽃 막걸리, 지평막걸리 등 하도 다양한 막걸리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었는데, 그 모든 종류의 막걸리를 섞어 마셨으니 오늘 아침 머리가 안 아팠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술 마신 다음날이 불안한 이유는 평소의 루틴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장을 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의지 박약자처럼 라면과 냉면을 먹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야말로 탄수화물과 설탕의 유혹에 자발적으로 풍덩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 힘들고 험한 일조차 참고 견뎌냈던 내가 어째서 속으로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유혹을 이겨내 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전처럼 자주 술 마시지 않는다는 것. 체중 증가가 모든 건강 지표를 나쁘게 한다는 건 명백하다. 아마도 어제오늘 체중이 2kg 이상은 늘었을 거다.
몸은 늘어지고 졸음은 쏟아지고 결국 오늘 오후 3시에 모처에서 진행하는 작가회의와 문인협회의 합동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후배들에게 미안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날 술 마셨다고 이튿날 행사를 펑크 내고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는 체력이 예전만 못하다 보니 전날 과음하면 이튿날 일정은 포기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행사 진행 사진이 단체 채팅방에 올라올 때마다 미안함은 더욱 증폭되었다. 한편으로는 '아니 사실 이게 내 책임만은 아니잖아. 일정이 그렇게 잡힌 걸 어떡해.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라는 치사한 변명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일정을 확인하고 그것에 맞춰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하는 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남 탓할 건 아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다소 피곤하게 하루를 시작했는데, 술도 깰 겸, 집안 청소도 할 겸해서 그동안 '숙원'이었던 옷장 과 신발장을 두어 시간 동안 정리했다. 버릴 옷과 신발들이 커다란 비닐봉지로 서너 자루가 나왔다. 속이 다 시원했다. 아깝지만 결코 입을 일 없는 점퍼와 재킷, 바지와 신발 등을 과감하게 덜어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오후가 되자 컨디션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복지포인트 소진을 위해 '할 수 없이 주문했던 물건들(프린터, 등산화, 갓김치, 탈모방지 샴푸, 어깨 뽕 자국 안 나는 옷걸이 등)이 속속 도착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밤이 되자 어제 카페에서 찍었던 사진을 여러 사람이 보내주었다. 내가 나온 사진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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