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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후배들을 만나다 (12-20-금, 흐리고 저녁에 눈, 비) 본문

일상

후배들을 만나다 (12-20-금, 흐리고 저녁에 눈, 비)

달빛사랑 2024. 12. 20. 23:48

 

후배 시인 K와 L(평론가이자 시인)을 구월동에서 만났다. 오늘 만남은 경기도 남양주에 살고 있는 K가 이미 한 달 전부터 "형이 너무 보고 싶어요"라며 수차례 전화해 잡은 약속이었다. 원래는 경기도와 인천의 중간 지점인 서울 종로쯤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인데, K는 다시 전화해 "형, 내가 인천으로 갈게요" 해서 약속 장소를 구월동으로 바꿨다. 그리고 인천에 온 김에 인하대 대학원 동문이자 (그녀의 학부는 이화여대)  문우(文友)인 L도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내가 L에게도 연락했다. 두 사람 모두 최근 문단에서 촉망받는 시인들이다. 물론 K는 나이가 중견 시인만큼이나 많지만 그동안 창작보다는 연구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불과 5년 전쯤에 뒤늦게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등단하자마자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렇듯 명민한 후배들이 때가 되면 연락해 안부를 물어주고 오늘처럼 직접 내 거처 지근으로 찾아와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K가 먼 곳에 살기 때문에 일찍 (4시 예술회관역에서) 만났다. 약속 시간보다 5분 전쯤 예술회관역에 도착했을 때 먼저 와 있던 L이 개찰구를 나오는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K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은 4시 10분쯤에 도착했다. 오래전에 보았을 때보다 몸이 좀 나 있었다. 예술회역 6번 출구로 나와 광장을 걸어가며 K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얼마 전 근대문학관에서 만난 L이 소고기보다 회가 좋다고 해서 일단 횟집을 예약했는데, 자기는 어때? 회 좋아해?” 했더니, K는 “아, 잘하셨어요. 나도 회가 좋아요. 빨리 가요.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아 무척 배가 고파요” 했다. 다행이었다. 셋은 단골 식당 용궁정으로 방향을 잡았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내가 예약한 창가 테이블 위에는 수저와 기본 반찬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우리는 민어와 방어 모둠회를 주문해서 먹다가 회가 모자라 다시 작은 모둠회 하나를 더 주문했다. 그리고 연평도 굴과 민어탕도 추가했다. 몰라도 회와 술값으로 20만 원은 나왔을 것이다. 물론 모든 음식값은 애초 약속대로 K가 계산했다. 문학상 받을 때마다 부상으로 받은 상금을 모았더니 제법 큰 돈이 되었다며 그녀는 극구 자신이 음식값과 술값을 내겠노라고 약속할 때부터 선언해 놓은 터였다.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시간이 갈수록 우리 이외의 예약자들과 단골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6시를 넘어가사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들어찼다. 사장인 종화 형은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K와 L은 “와, 이 집이 맛집인가 봐요. 손님들이 많네요.” 했다. 이곳에 오자고 한 내가 괜히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횟값이 그리 싼 집이 아닌데도 손님들이 많다는 건 회가 싱싱하고, 곁들이는 반찬과 음식들이 정갈하고 맛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과 긴 시간 대화를 나누며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다. 특히 아버지가 중앙대 교수였던 K가 생계 때문에 요양보호사 일을 하기도 했고, 그녀의 동생이 심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성격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그토록 집요하게 문학상에 도전했던 것도 사실은 상금을 타기 위한 수단이었다고도 고백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K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유한 교수 딸로 공주처럼 살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조만간 시집을 묶을 계획인데, 그 해설을 L에게 부탁하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들은 L은 “언제든지 부탁하시면 써 줄게요”라고 짧게 대답하며 살짝 웃었다.

 

8시 40분쯤 용궁정을 나와 2차를 가려다가 남양주에 사는 K가 용산역에서 타야 하는 고속열차 예매 시간이 10시 20이어서 아슬아슬하기도 했고, L은 내일 한국작가회의 50주년 행사에서 진행을 맡았기 때문에 아쉽지만 헤어지기로 했다. 함께 전철을 타기 위해 예술회관 광장을 지날 때,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옷이 심하게 젖을 정도는 아니었다. 개찰구 앞에서 L은 우리와 헤어져 버스 타러 갔고 나와 K는 전철 타고 가다가 시청역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조금 전 11시쯤 30분쯤 집에 잘 도착했다는 K의 문자를 받았다. 아마도 오늘밤 잠들어 꿈을 꾼다면 그 꿈속에서 우리들은 분명 한신우동에 들어가 2차를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나는 지금 막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먹어버렸다. 유혹 앞에서 스스로 무릎을 꿇은 그런 날이다. 그나저나 부디 K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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